[칼럼] 2% 부족한 ‘광청종주’
[칼럼] 2% 부족한 ‘광청종주’
  • 강응민 피알비즈 대리
  • 승인 2020.03.09 11:3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기영의 山戰酒戰〉 번외편: 강응민의 산전주전 “길이 곧 목표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강응민 피알비즈 대리)

올겨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출퇴근길이 무척 고달팠다. 입춘을 앞두고 비염 증세가 부쩍 심해져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나왔기 때문이다. 미처 기침을 삼키지 못하고 지하철 전동칸의 적막을 깨뜨릴 때 일제히 쏟아지는 날카로운 시선들…. 나는 얼굴을 붉히는 대신 스쿠터를 타고 한파 속에서 집과 회사를 오갔다.

주말에도 비염으로 인한 기침은 여전해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직 출퇴근의 자유(?)만 허락되는 무력한 나날. 이대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며 경칩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던 중, 때마침 최기영 본부장이 '광청종주'를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본부장은 평소 등산은커녕 걷기조차 힘겨워하는 후배가 종주를 끝마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나는 "기어서라도 가겠다"며 완주를 호언장담했다.

광청종주는 광교산 시루봉(582m)부터 백운산(564m), 바라산(428m), 우담산(425m), 청계산(618m)까지 이어지는 약 24km 거리 종주 산행을 뜻한다. 종주 코스의 고도는 높지 않지만 약 10여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하는 까닭에 산행 초심자에게 완주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광청종주의 첫 봉우리인 형제봉. 노송 뒤편에서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도시의 소음이 들려왔다. ⓒ 최기영
광청종주의 첫 봉우리인 형제봉. 노송 뒤편에서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도시의 소음이 들려왔다. ⓒ 최기영

지난 주말 나는 완주를 다짐하며 본부장과 함께 광청종주 코스의 첫 정상인 광교산 시루봉으로 향했다. 전날 비가 내린 탓에 노송 사이로 이어지는 산길은 청량한 공기로 가득했으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로 겹겹이 둘러싸인 시루봉에서, 본부장은 건질 사진이 없다며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깔딱고개를 힘겹게 넘어온 나로서는 중도 포기가 유일한 걱정이었다. 본부장은 청계산까지는 평탄한 산길이 이어진다며 다독였다. 마음을 다잡고 언젠가 쾌청한 하늘 아래서 시루봉과 재회하길 바라며 산행을 계속했다. 그 바람이 곧 이뤄진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

시루봉을 지나자 완만한 산길이 펼쳐졌다. 더욱이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노송 사이로 이른 아침의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산행을 계속한다면 청계산 국사봉, 이수봉으로 향하는 가파른 산길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짙은 안개 속, 광교산 시루봉과의 ‘첫 번째’ 만남 ⓒ 최기영
짙은 안개 속, 광교산 시루봉과의 ‘첫 번째’ 만남 ⓒ 최기영

들뜬 마음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쭉 이어진 내리막길을 따라서 수지성당 쪽으로 향하던 본부장은 불현듯 산행을 멈추고 종주 코스를 점검했다. 그리고 곧 종주 코스에서 이탈해 도심 쪽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욱이 백운산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시루봉에 올라야 한다는 것도.

마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우리네 인생처럼, 종주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리는 힘이 풀려 후들거렸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대로 포기한다면 다시는 '광청종주'에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부장의 격려를 받으며 또다시 힘겹게 시루봉에 올랐다.

본부장은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나에게 하산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호기롭게 다시 한번 "기어서라도 가겠다"며 허세를 부렸다. 본부장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백운산으로 향했다.

쾌청한 정오의 하늘 아래서 백운산으로 향하며 우리는 광청종주를 재개했다. ⓒ 최기영
쾌청한 정오의 하늘 아래서 백운산으로 향하며 우리는 광청종주를 재개했다. ⓒ 최기영

백운산과 바라산, 우담산, 하오고개로 이어지는 약 6km의 구간을 지나며 비로소 나는 종주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로 오랜 시간, 평탄한 산길을 걷다보니 시간 감각이 사라지고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이제 광청종주를 끝마치고 축배를 들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었다.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만가지 잡념으로 머리를 가득 채운 상태에서 무거운 다리를 이끌 뿐이었다.

그러나 본부장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종주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바라 365 희망계단'을 내려와 우담산, 하오고개를 넘어 마침내 청계산을 목전에 두었을 때는 일몰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청계산 국사봉, 이수봉만 오르면 된다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깐 채 하염없이 산길을 올랐다. "기어서라도 가겠다"고 몇 번이나 호언장담했건만…. 마침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기다시피 산길을 오르는 동안 해는 산 너머로 떨어지고 말았다. 본부장은 일몰시간과 나의 체력을 고려해 국사봉에서 하산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지는 해를 뒤로한 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청계산 국사봉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 최기영
지는 해를 뒤로한 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청계산 국사봉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 최기영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청계산 국사봉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 본부장은 국사봉에는 올랐으니 '2%' 부족할지언정, 광청종주는 해낸 것이라며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 언제든 다시 오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나의 첫 광청종주는 2월의 마지막 석양과 함께 막을 내렸다. 덤으로 국사봉으로 향하는 산길에서 본부장님이 습득한 핸드폰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까지 마치며….

국사봉 너머로 2월의 마지막 태양이 지고 있었다. 나의 첫 광청종주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 최기영
국사봉 너머로 2월의 마지막 태양이 지고 있었다. 나의 첫 광청종주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 최기영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로 인해 수재민이 된 기택(송강호 분)은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는 기우(최우식 분)에게 이렇게 답한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종주 코스를 이탈하고 완주에 실패한 나의 첫 광청종주처럼, 우리네 인생 또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무계획'에는 광청종주 완주를 목표로 흘리는 땀이 없고, 함께 산을 타는 사람의 격려와 응원도 없다. 더욱이 핸드폰을 잃어버려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도 없고,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을 한가득 입에 넣는 꿀맛 같은 저녁도 없다. 

그러므로 무계획은 나의 계획에 없다. 그저 종주하듯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고승 틱낫한의 "길이 곧 목표다"라는 한 마디를 마음에 새기면서.


강응민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現 피알비즈 대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본부장 2020-03-10 09:19:46
고생했다. 앞으로 건강하게 체력도 키우고 그리고 산을 더욱 좋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산 다시 한번 가자~~

본부장친구 2020-03-09 20:36:37
하하하핫!ㅋㅋㅋ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대리님 멋지시넹..ㅎㅎ #멈지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