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인터뷰] 권은희 “안철수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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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인터뷰] 권은희 “안철수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겠다”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3.17 16:55
  •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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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국회의원 (국민의당)
“安, 제3지대 소멸 막고 죽겠다는 절박함으로 국민의당 재창당”
“국민의당, 광주의 첫 선택지…바른미래 실패가 제3지대 실패 아냐”
“安·劉 득표율, 양당제 회귀로 공중분해…孫, 양당제 사고 젖은 사람”
“호남, 민주당 아닌 文 지지…호남의 조국 찬성, 민주당이 부추긴 것”
“안철수 현상, 정치에 대한 희망으로 국민 가슴 속에 아직 살아있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시사오늘〉은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을 거쳐, 다시 국민의당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권은희 의원을 지난 11일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시사오늘〉은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을 거쳐, 다시 국민의당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권은희 의원을 지난 11일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2018년 2월 13일, 호남을 지역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과 영남을 기반으로 한 바른정당이 만나 바른미래당이 탄생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호남과 영남의 간극만큼이나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진보’를 포기할 수 없는 호남과 ‘보수’를 양보할 수 없는 영남. 이들의 이념 노선은 계속해서 소모적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의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병국 의원이 호남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경제정책 분야에선 오히려 국민의당이 바른정당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대체 왜 보수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는 건가.” 불편한 침묵이 길어지던 차, 권은희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맞습니다. 저 보수입니다. 그런데도 보수라는 단어 자체를 금기시하는 이유는, 현실적으론 호남에선 보수를 거론하는 순간 ‘너는 자유한국당의 아류’라고 규정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지난 11일 권 의원을 만나 “이제까지 보수 계열과 뜻을 같이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젠 본인을 보수라고 칭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 아니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이에 권 의원은 “사전적 의미에서 보자면 저는 보수가 맞다”고 답했다.

“사회 변화 측면에서 진보가 사회의 기존 질서를 깨부숴 변화를 이끌어가려고 한다면, 보수는 기존 법질서 안에서 이를 보완해가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죠. 저는 사시를 통과하고 경찰 수사과장까지 했던, 법을 깊게 공부했던 사람이잖아요. 기본적으론 법질서를 수호하면서 그 안에서 불합리와 부당함을 보완해가야 한다는 정체성을 갖고 있죠.”

사전적 의미의 보수 가치를 지향하는 권 의원은 ‘광주의 딸’로 자랐고, 자연스럽게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 역시 국민의당 출범 전까진 선거철마다 매번 민주당만 찍었던 사람이다. 호남에는 선택지가 민주당 하나뿐이었다.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아야했던 경험은 불쾌했고, 정치에 대해 무관심과 냉소만 갖게 만들었다. 권 의원은 이 같은 경험이 쌓여 그를 ‘제3의 길’로 이끌었다고 했다. ‘호남 정치인’ 권은희는 구보수 세력을 떨쳐내지 못한 보수와 함께 걷지 않아도, 얼마든지 민주당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꿈꾼다.

〈시사오늘〉은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을 거쳐, 다시 국민의당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권은희 의원을 지난 11일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권 의원과의 일문일답.

 

“安, 제3지대 소멸 막기 위해 ‘여기서 죽겠다’는 절박함으로 창당”

-결국, 다시 안철수다. 두 번째 버전의 국민의당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지만, 안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만 내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광주 출마도 못하게 됐다.

“맞다. 원래는 광주 광산을에 다시 출마하려고 했다. 그게 책임정치 아니겠는가. 광주 광산을 지역민들에게 제 의정을 심판할 기회를 드리는 게 책임을 다하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2월 26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면서 지역 언론을 통해 출마 의사를 밝혔는데, 다음날 27일 아침 안철수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밤새 한 숨도 못 잤다고 하더라. 그리고는 고민을 엄청나게 했다면서, 비례정당으로 당을 운영하겠다는 거다.”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지난 11일 "처음 국민의당 비례대표정당 소식을 듣고 절대 안 된다고 길길이 날뛰었다"며 "안 대표가 제3지대와 다당제를 지키려고 하는 절박함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당연히 절대 안 된다고 길길이 날뛰었지. 이해관계를 다 떠나서, 지역후보자가 없는 당의 현실이 얼마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다. 안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이건 국민의당의 현실에 좋지 않은 선택이고, 그런 선택은 결국 정치인 안철수에게도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당제를 지키려고 하는 그 절박한 심정은 충분히 알겠지만, 그 때문에 당신이 더 어려워질 수가 있다고. 그러니 지역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할 게 아니라,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내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라는 선까지 제발 타협을 하라고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다.”

-그랬더니 안 대표가 뭐라고 하던가.

“제3지대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더라. 절박함이 커 보였다. (안철수계) 비례대표 의원들이 하루 이틀 만에 전부 통합당에 가겠다고 떠났고, 이러다간 국민의당마저 양당에 휩쓸려 소멸되겠다는 위기의식으로 안 대표의 고민이 깊은 상황이었다.”

 

-김관영 의원처럼 무소속 지역구 출마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건 제게 선택지가 아니었다. 저는 현실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헌법을 통해 정치를 배웠다. 제헌정치에 따르면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의민주주의와 정당민주주의다. 무소속이라는 선택지는 정당민주주의에 비춰서는 절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의당이 비례용 정당인 미래한국당이나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과 비교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나.

“국민의당이 경쟁력 갖추기 쉬운 조건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구도적으로도 쉽지 않다. 위성정당으로 인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전부 훼손되면서, 선거제 변화의 이익도 얻을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지금 구도는 양당 기득권이 오히려 공고해지고, 더 결집되는 상황이다. 국민의당의 진정성을 전달하기에 선거 공간 자체도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도 지금은 ‘여기서 죽겠다’는 생각뿐이다. 다른 무언가를 경쟁력으로 제시하고 보여주기엔 물리적, 현실적 한계가 너무 많다. 안철수 대표처럼 여기서 죽겠다는 절박함 하나로 버텨야 할 것 같다.”

-미래한국당 한선교 대표가 이날(11일) 조만간 대구로 내려가 안철수 대표와의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하던데.

“뭘 잘못 먹으면 그런 소리를 하게 되나. 대체 어떤 음식물을 섭취하면 저렇게 될 수 있나 싶다. 혼자만의 주장이다.”

권 의원은 "바른미래당이 국민의당보다도 발전적인 가치를 지향했다는 생각에는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국민께 정서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만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권 의원은 "바른미래당이 국민의당보다도 발전적인 가치를 지향했다는 생각에는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국민께 정서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만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국민의당, 광주의 첫 선택지…바른미래 분열, 제3지대의 실패는 아냐”

서울지역 경찰서 최초의 여성 수사과장이던 권 의원은 2013년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수사 축소은폐 지시’를 폭로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사표를 제출한 후 새민련에 입당, 2014년 광주 광산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정치를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청문회 폭로’ 이후 야당 후보로 출마한다는 것은 폭로의 진정성을 해칠 수도 있었다.

“저도 당시 상황 때문에 정치를 ‘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인적인 압박, 핍박이 들어왔다. 수사과장 보직에서 여성청소년과장으로 보직변경이 이뤄졌고, 정부 차원에선 남편에 대한 내사가 시작됐다. 게다가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총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제가 공적인 영역에 있으면서 공적인 주장과 활동을 연장해야 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하게 된 거다.” 

-2015년 12월 호남계와 함께 새민련을 탈당해 국민의당에 입당했지만, 2018년엔 대부분의 호남계(민주평화당)와 갈라져 바른미래당을 선택했다. 정당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제가 한국정치에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에는 양당 기득권의 진영논리와 지역주의에 대한 염증이 컸다. 그래서 국민의당이 탄생했을 때 너무나 순수하게 기뻤다. ‘아, 광주가 처음으로 맞이해보는 제3의 선택지라니!’

바른미래당은 국민의당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진영을 뛰어넘고 지역주의까지 뛰어넘겠다고 하지 않았나. 여기에 동참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바른미래당이 국민의당보다도 발전적인 가치를 지향했다는 생각에는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다만 국민께 정서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만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사과드리는 바다. 그래도 바른미래당의 탄생에 기여했던 사람들의 진정성과 방향성을 의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바른미래당은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다 결국 갈라섰다. 바른미래를 탈당하고 통합당에 들어간 정치인들은 ‘제3지대 시도는 실패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제3지대의 실패가 아니라 본인들이 실패한 거겠지. 제3지대는 지키고자 하는 사람만 있다면 계속 굴러갈 수 있다. 물론 양당제는 선거 기간이 되면 그 구심력이 더욱 강력해지기에, 현재 그 영역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바른미래당이 왜 양당제 구도를 이기지 못했다고 보나.

“일단 양당제는 오랜 세월동안 형성된 한국 정치 문화다. 오랫동안 한국 정치는 ‘찬성 아니면 반대’였다. 그리고 찬성 쪽과 반대 쪽에 먼저 자리잡은 사람들이 각각의 프레임을 걸어놓는다. 그렇게 되면 선거용 프레임과 흑백 논리만 남게 되는데, 국민들도 이런 타성에 젖어있는 상황이다. 국민 입장에선 당론이 찬성 또는 반대,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좀 더 보완해야 된다’, ‘여기엔 이런 사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식으로 부분적인 지적만 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거다. 지금은 진정한 다당제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安·劉 득표율, 양당제 회귀로 공중분해…孫, 양당제 사고 젖은 사람”

양당에 매몰되지 않았던 중도 표심은 늘 주인을 기다려왔다.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이인제 후보가 약 20%에 육박하는 ‘의외의 선전’을 한 것도 중도표의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중도표는 2017년 제19대 대선에선 안철수 후보의 21.41%, 유승민 후보의 6.76%로 나타났다. 두 사람의 득표율을 합치면 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24.03%를 뛰어넘는 수치다. 결국 제3당이 중도층을 잘 흡수했더라면, 지난 지방선거나 이번 총선에서 제1야당이 될 수 있을 만큼의 여력도 충분했다는 뜻이다.

-역대 대선 득표율과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유승민 후보가 얻은 표를 따져보면, 중도층 표심은 바른미래당으로 갈 수도 있었다. 왜 정당 지지율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국민도 제3지대를 선택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지만, 제3지대에 있던 정치인들도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과도기를 겪는 과정에서 자꾸만 제3지대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본인들이 불안해서 다시 양당으로 회귀해 버린 거다.”

권 의원은 바른미래를 탈당해 미래통합당으로 간 정치인들을 향해
권 의원은 바른미래를 탈당해 미래통합당으로 간 정치인들을 향해 "제3지대의 실패가 아니라 본인들이 실패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제3지대는 지키고자 하는 사람만 있다면 계속 굴러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한편으론 손학규 대표의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우선 손학규 대표는 제3지대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리더가 아니었다. 손 대표는 양당제에서 정치적인 성장을 한 사람이다. 양당제에서 정치적인 수해(受害)와 수혜(受惠)를 입은, 양당제식 사고에 깊게 젖어있는 사람이다.”

-손 대표가 갖추지 못한 ‘제3지대의 리더십’이라는 게 뭔가.

“제3지대 리더십은 ‘양당 기득권 심판’과 ‘제3지대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득권 양당은 이념과 지역이라는 공고한 기반이 있지만, 제3지대에는 그런 게 없다. 그저 실용적인 해법을 찾겠다는 지향점만 가진 세력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적 리더십, 다양성을 존중하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제3지대는 보수와 진보 상관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되고, 넓은 스펙트럼을 수용해야 한다. 

그런데 제3지대의 리더라고 들어온 사람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유승민계를 향해) ‘너넨 보수하고 통합할 애들이야’라는 식의 ‘갈라치기 정치’였다. 덕분에 제3지대에 있던 좋은 자원들은 양당으로 다시 돌아갔다. 손 대표의 리더십은 분열시키고 쪼개는 악순환의 리더십이었다. 지금도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또 어떤 잘못된 리더십을 가졌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호남, 민주당 아닌 文 지지…조국 찬성 여론, 민주당이 이용한 선거구도”

대표적인 호남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그의 자서전 〈행동하는 양심으로〉에서 우리 민족, 특히 호남인을 ‘한(恨)의 민족’으로 규정했다. DJ가 말한 ‘민족의 한’이란 ‘호남 정서’를 의미한다. 호남 내 저명한 학자이자 영남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책 〈아주 낯선 상식〉의 저자 김욱 서남대 교수는 2018년 국민의당 분당 사태에서 “안철수와 유승민 대표가 하는 것은 영남패권주의 야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호남에겐 과거로부터 이어진 ‘반(反)호남 지역주의’ 속에서 쌓인 한이, 선거철마다 등장한 ‘호남홀대론’ 속에서 좌절된 소망이 있었다. 권 의원은 2020년 ‘호남의 한’의 향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본의 아니게 광주 출마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인데, 두 번이나 권은희를 선택해준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사실 제3당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동료 의원들이 지역구를 옮기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보다 정당의 정서에 맞는 곳, 예를 들면 수도권 같은 곳으로 변경하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도 광주 시민들께서 저를 ‘우리와 정서적으로 맞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인재’ 정도로 생각해주신다면,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했던 제 역할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지역구를 다니면서 느낀 호남 민심은 어땠나. 여론조사를 보면 2016년의 국민의당 지지율이 도로 민주당에게 흡수된 모양새다.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호남은 민주당 자체에 대해선 상당히 비판적이다. 오히려 연령이 높을수록 그렇다. 지금 호남의 높은 여당 지지율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다. 호남은 문 대통령에 대한 정서적 일치감이 상당히 높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도 있지만, 차기 대권주자인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문재인 생각해서 참는다’는 게 현재 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해 가장 강하게 비판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당시 조국 장관 임명 찬성 여론이 호남 지역만 압도적으로 높았던 현상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정서가 모든 것을 압도한 상황이다. 이건 민주당이 호남에서 유용하게 쓰는 선거 전략 때문이다. ‘우리가 1당이 안 되면 통합당이 1당이 된다’는 일종의 협박 같은 거다. 통합당과 민주당의 일대일 대립구도 속에서 ‘우리를 지지해야만 적폐를 막을 수 있다’는 프레임이 호남에선 아직도 유효한 상태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이 이런 전략을 써서 일주일 만에 안 대표의 지지세가 문 대통령에게 가버렸다. 그때 광주 시민들에게 회자됐던 말이 ‘안찍홍’, 안철수 찍으면 홍준표 된다는 말이었다. 

이런 협박 구도를 깨고 싶어서 지금까지 노력해왔다. 그런데 제가 민주당과 정부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낼 때마다, 제가 무엇을 비판하는지,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지는 보지 않고 ‘너 한국당이냐?’식의 프레임부터 나온다. 저는 한국당과 함께 하지 않아도 이런 비판과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또 이런 중간의 정치 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호남에게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어느 정도 증명된 것 같나.

“기사에 달리는 ‘저건 자유한국당의 아류냐’는 댓글 보면 아직 멀었다 싶다.”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 특히 경찰 출신 의원으로서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권은희안’이 아직 살아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이 이를 본회의에 상정시켜야 하는데, 문희상 의장이 지금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지금 문 의장에게 어떻게 법적으로 압박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공수처법이든 검경 수사권 조정이든, 사실 사법 영역에 있어 권력자의 의도가 조금이라도 개입되면 안 된다. 또 당장은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차후 의도를 가진 세력들로 인해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는, 그런 허술한 제도를 설계해서도 안 된다. 정부여당의 공수처법은 세세한 논의를 하기도 전에 기본적으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고,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을 만큼 허술한 제도로도 설계됐다. 이 내용은 21대 국회에서 다시 쟁점화 될 거다.”

권 의원은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공수처가 거의 수사권 전권을 행사하도록 일임하는 법이 정부여당의 공수처법"이라면서 "공수처는 역량의 한계, 조직의 한계 속에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적으로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결국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빠질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권 의원은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공수처가 거의 수사권 전권을 행사하도록 일임하는 법이 정부여당의 공수처법"이라면서 "공수처는 역량의 한계, 조직의 한계 속에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적으로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결국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빠질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수정안인 ‘권은희안’은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시키고, 수사를 비위 범죄에 한정해 병렬적 수사가 가능하도록 한 수정안이다. 기존 ‘4+1 합의안’은 판사·검사·경무관 이상 경찰의 경우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도록 했지만 권 의원의 안건에선 공수처는 수사권을 갖고 기소권은 검찰이 갖도록 했다. 단,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하고 공수처가 이에 불복하면 기소심의위원회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 범죄도 합의안은 직무상 모든 범죄를 수사하도록 했지만, 수정안은 부패범죄와 직무범죄로 대상을 한정했다. 

-정부의 사법개혁에 어떤 의도가 있다는 건가.

“공수처와 관련해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무력화한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저는 사실 경찰 출신이기 때문에 다른 의원들과 관점이 다르다. 범죄수사의 효율성을 가장 먼저 본다. 수사의 효율에 국민의 안전과 재산이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안에 부패의 총량이 있다고 치자. 그 모든 것을 총괄할 능력이 검증되지도 않은 공수처가 거의 수사권 전권을 행사하도록 일임하는 법이 정부여당의 공수처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공수처는 역량의 한계, 조직의 한계 등 여러 문제점 속에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적으로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에서 무엇이 가장 먼저 빠지겠는가. 결국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빠질 것이고,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는 곳’에 대한 수사만 이뤄질 거다.”

-21대 국회에 입성한다면 공수처 관련 사안을 중점으로 의정활동을 펼치게 되겠다.

“21대 국회 진출까지는 생각도 못 하고 있다. 솔직한 말로, 지금 제3지대를 위해 장렬히 전사할 상황만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너무 비관적이다.

“그게 현실이다. 이 희생을 기쁘게 받아 들여야지, 뭐 어떡하겠나.”

인터뷰를 마치며, 권 의원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정치인으로서의 포부도 좋고, 정치철학이나 유권자들에 표를 호소하는 말이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대답은 금방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허공을 보고 머뭇거리던 권 의원이 느릿하게 10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왜 이런 정치역경의 길을 선택했나,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전 워낙 정치에 대해선 냉소적인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2011년쯤에 정치라는 것에 처음 희망을 가져봤어요. 그때 미디어를 통해 ‘안철수 현상’을 처음 접했거든요. 그리고 지금 2020년, 안철수 대표가 정치를 하면서 그 현상이 우롱당하고, 조롱당하고, 때론 하찮게 여겨지는 시간을 그와 함께 지나왔네요.

요즘 대구에서 땀흘리며 봉사하는 안 대표를 보고 있자니, 그때를 다시 불현듯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내가 왜 안철수에게 희망을 가졌었지?’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우리 각자가 갖고 있던 더 나은 정치에 대한 희망, 안철수로 대표되던 그 희망이 어쩌면 국민 여러분 가슴 속에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이 희망을 꺼내 실현시키고자 실천할 때에서야 비로소 희망이 펼쳐질 수 있다고…. 그런 당부를 국민 여러분께 드리고 싶어요.”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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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진 2020-04-15 23:04:53
와 권은희 의원 이런 분이셨구나...정말 DJ이후 호남이 배출한 인재 중의 인재...같은 호남사람으로 자부심이...대부분의 말씀에 다 동감해요..제3지대의 필요성까지...자료와 근거에 기초한 설명까지도... DJ랑 정말 닮았네요..앞으로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박승옥 2020-03-18 23:07:28
나도 제 3지대를 위해 부끄럽지 않은 한표 국민의당에 행사한다,,,
나머지 두 당은 죽어도 못뽑겠다~~투표하는것도 자존심이 상해서,,,권은희 말대로 투표하고도기분좋지않을것 같아,,,안철수에게서 예전부터,지금도 희망을 본다!!!

응원 2020-03-18 16:05:25
이번에 꼭 재기해서 새로운 보수의 큰 뜻을 이루시기를 소망합니다.

이기원 2020-03-18 14:02:50
안철수 곁에 홀로 남아
그의 곁을 지키고 계신 유일한 분,
홀로 장비 관우 역할을 다 해 내고 계시는 분,
권은희 의원님을 존경합니다.

"안철수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겠다" 는 권은희 의원님의 말씀이 내 가슴을 휩쓸어 꿰뚫고 들어옵니다.

박지원 2020-03-18 13:04:43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