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딸아이와 산책처럼 올랐던 춘천 금병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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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딸아이와 산책처럼 올랐던 춘천 금병산에서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0.03.23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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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노란 동백꽃은 늦은 봄 핀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금병산 정상 표지석 ⓒ 최기영
금병산 정상 표지석 ⓒ 최기영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봄이 와 있는데도 마음은 봄 같지 않다.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증가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보편화됐고, 우리의 마음과 일상은 정말 엉망이 됐다. 

올해 고2가 되는 딸아이도 아직 새 학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3월이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분주한 시간을 보내야 할 아이는 홀로 독서실을 오가기도 하며 개학을 기다리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일상이 몹시 답답하다. 나 역시 한창 피어올랐을 매화를 보러 가고 싶었지만, 버스를 대절해서 단체로 이동을 해야 하는 산악회의 산행도 잇따라 취소되면서 허탈하기만 했다. 

나는 딸아이에게 춘천 금병산으로 가자고 했다. 산행도 쉽고 김유정 문학촌 등 근처에 볼거리도 많으니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 부녀는 지하철 경춘선을 타고 봄볕 가득했던 춘천으로 향했다. 

‘김유정 문학촌’을 지나 금병산으로 가는 길, ‘실레길’이다. 김유정의 고향마을이기도 하다.  우리네 시골 고향 마을 길처럼 따뜻하고 정겹다 ⓒ 최기영
‘김유정 문학촌’을 지나 금병산으로 가는 길, ‘실레길’이다. 김유정의 고향마을이기도 하다. 우리네 시골 고향 마을 길처럼 따뜻하고 정겹다 ⓒ 최기영

나에게 춘천 가는 길은 늘 젊은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게 한다. 딸아이와 함께 그 길을 함께 했던 이 날도 그 시절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대성리와 강촌은 아빠가 대학을 다닐 때 학교 MT를 갔던 곳이었다고 말하며 그때는 지하철이 아닌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곳에 왔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그런데 가서 맨날 술 많이 먹고 후배들 괴롭혔지?"라고 묻는 것이다. 술 좋아하고 오지랖 넓은 나의 학창 시절을 딸아이는 정확히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이날 목적지인 김유정역에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춘천 신동면에 위치한 '김유정역'은 우리나라 최초로 역명에 사람 이름을 사용했다. 근처를 걷다 보면 우체국도 하나 있는데 '김유정 우체국'이다. 역시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전국 최초의 우체국이다. 이곳이 바로 <동백꽃>, <봄봄> 등으로 유명한 천재적인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마을이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생을 살다 29세를 일기로 요절했지만, 김유정이 우리 현대 문학사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레길을 지나 금병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울창한 잣나무 숲사이로 정겨운 흙길이 나 있다 ⓒ 최기영
실레길을 지나 금병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울창한 잣나무 숲사이로 정겨운 흙길이 나 있다 ⓒ 최기영

산에 오르기 전 '김유정 문학촌'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의 생가도 복원돼 있었고, 소설 속 재밌는 장면을 조형물로 만들어놓았던 것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유정 문학촌은 아쉽게도 폐쇄돼 있었다. 이 역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딸아이는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왔다며 나에게 핀잔을 줬다. 그렇게 난 스타일을 구긴 채 산이나 오르자며 김유정의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실레마을 길을 걸으며 금병산으로 향했다. 

금병산은 어느 코스로 오르고 내려오더라도 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편안한 숲과 흙길이 정겹기만 하다. 실레길을 벗어나면 빼곡한 잣나무 숲 사이로 걷는 길이 상쾌하다. 그 숲길을 지나면 오르막이 몇 차례 나오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양지바른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원 없이 맑은 산 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딸아이의 생일은 3월이다. 지난해 생일, 기숙사에서 자신의 생일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와 아침부터 정말 많은 친구로부터 생일축하를 받았는데 올해는 학교에도 기숙사에도 갈 수 없어 그렇지 못했다며 아이는 몹시도 아쉬워했다. 

정상에서 본 춘천시.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춘천 최고봉인 대룡산이다. 그리고 대룡산에서 왼쪽으로 사명산, 구봉산, 오봉산, 용화산, 삿갓봉, 가덕산 등이 이어지며 끝없는 산세가 춘천을 에워싸고 있다 ⓒ 최기영
정상에서 본 춘천시.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춘천 최고봉인 대룡산이다. 그리고 대룡산에서 왼쪽으로 사명산, 구봉산, 오봉산, 용화산, 삿갓봉, 가덕산 등이 이어지며 끝없는 산세가 춘천을 에워싸고 있다 ⓒ 최기영

다시 산행을 시작했고 우리는 금병산 정상에 올랐다. 금병산 정상에 서면 오른쪽으로 춘천 최고봉인 대룡산이 보인다. 그리고 대룡산에서 왼쪽으로 사명산, 구봉산, 오봉산, 용화산, 삿갓봉, 가덕산 등이 이어지며 병풍처럼 춘천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산세에 갇혀 있는 호수가 군데군데 보인다. 

그렇게 아름다운 춘천의 모습을 본 뒤 아이와 나는 중리 방향으로 하산했다. 정상 밑 가파른 길을 다 내려오면 완만한 능선길과 잎갈나무 숲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자 작은 저수지와 계곡이 나타났다. 우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아직은 냉기가 남아있는 차디찬 계곡물 속에 발을 담그며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나를 따라다니면서 제법 큰 산을 경험해서인지 아니면 학교에 가지 못하고 답답하게 이어지던 일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인지 여유롭게 금병산을 즐기는 아이의 모습이 봄 햇살 만큼이나 화창하고 상쾌해 보였다. 

우리는 아직은 냉기가 남아있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 최기영
우리는 아직은 냉기가 남아있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 최기영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 <동백꽃> 중에서

학교 시절 읽으며 심쿵했던 <동백꽃>의 마지막 장면이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 부른다. 본문에 나오는 동백꽃은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다. '나'를 괴롭히던 동갑내기 마름 집 딸 '점순이'는 바보처럼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던 '나'에게 봄철 동백꽃의 진한 향기와 함께 그 마음을 그렇게 전했다. 

딸아이와 나는 산에서 내려와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으며 산행을 마무리했다. 기대했던 생강나무의 노란 꽃은 아직 피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향긋하고 모두를 심쿵하게 했던 김유정의 그 노란 '동백꽃'은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도 반드시 곧 그렇게 돌아오겠지. 그리고 딸아이도 어서 빨리 개학을 해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분주한 새학기를 맞이하길 바라며 우리는 김유정역을 떠났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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