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은 경제를 바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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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은 경제를 바꿨을까
  • 김병묵 기자
  • 승인 2020.03.27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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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개헌 ‘경제민주화 조항 도입’ 상징성 
2012·2016 정치행보 성공…경제행보 실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왼쪽)가 26일 오전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자택을 찾아 김종인 전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왼쪽)가 26일 오전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자택을 찾아 김종인 전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미래통합당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대표를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012년 대선과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영입되며 선거판세에 영향을 준 바 있다. 정치적인 영향력은 차치하고, 경제전문가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리고 이번엔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87년 개헌 '경제민주화조항 도입' 상징성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은 김 위원장은 1973년 귀국, 서강대학교 조교수가 됐다. 그 때 박근혜 전 대통령도 김 위원장의 수업을 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민주정의당에서 1988년 까지 전국구 의원을 지낸다. 국회의원 임기 중이었던 1987년 개헌이 이뤄지는데,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조항을 헌법에 삽입하는 데 앞장섰다고 알려졌다. 헌법 제 119조 2항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1986년 7월 2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날 민정당 헌법개정특위 전체회의에서 "비대해진 경제력의 횡포를 방지하고 자유경제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도모하며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헌법에 경제에 관한 규제 조항이 삽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이는 이후 87년 헌법 체제를 상징하며, 한국 경제 발전사에서 지속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30년 뒤인 2017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 조항은)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 그 과실이 일부에만 귀속돼선 안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다"며 "지금같은 시대에 불평등 해소를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고민을 담는 그릇으로 119조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지난 2018년 청와대에선 경제민주화 조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한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김 위원장이 주도적으로 경제민주화 조항을 삽입하지 않았다거나, 오히려 보수적으로 축소시켰다는 증언들이 등장한다. 개헌 당시 신민당 직선개헌특위 전문위원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2012년 "87년 개헌은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6월 항쟁에 항복해 이뤄졌기 때문에 개헌의 주도권은 야당이 쥐고 있었다. 여당인 민정당은 바짝 엎드린 채 야당의 개헌안을 그대로 받아 통과시키는 역할만 했다"며 "경제민주화 조항은 당시 야당인 신한민주당의 직선개혁특위에서 만들어 개헌안에 포함시켰다"고 증언했다. 박찬종 전 의원도 "경제민주화는 여당인 민정당의 반대를 꺾고 관철시켰다"며 "여당 의원인 김종인이 한 일을 우리는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행보를 이어갔다. 그 이후 김 위원장은 노태우 정권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내면서 대기업의 과다한 부동산 소유를 제한한 토지공개념을 입안하는 등 '경제민주화'의 어젠다를 놓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012·2016 정치행보 성공, 경제행보 실패

김 위원장과 '경제민주화'가 다시 정치권 무대의 중앙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2년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2011년, 박근혜 당시 후보는 김 위원장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한 뒤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겼다. 이 때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김 위원장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며 반향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당선됐지만 김 위원장은 자신의 '경제민주화'를 이끄는 데는 실패했다. 박 후보는 2012년 11월 11일 김 위원장에게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대기업집단법 제정 △대기업 총수 주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재벌총수 등 임원진 급여공개 등을 수용할 수 없다고 통보, 둘은 결별했다.

그러나 그 흔적은 남겼다. 2013년 4월엔 국회에서 일명 '경제민주화 1호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하도급법) 법안이 통과됐다. 같은해 6월 국회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및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공정거래법), 가맹점주의 권리 강화(가맹사업법), 부당특약 금지(하도급법),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 지분 소유 규제 법안(은행법) 등이 처리되기도 했다.

4년 뒤인 2016년, 이번엔 더불어민주당이 김 위원장을 영입한다. 박근혜 정부를 향해 "(경제민주화 공약은) 대선 때 굉장히 중요한, 제일 앞장에 내세웠던 공약이었다"며 "그런데 인수위 시절부터 그 공약이라는 것이 창조경제인가 하는 쪽으로 넘어가버렸다"며 비판을 이어갔던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으며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김 위원장은 또다시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손으로 실현하진 못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은 의원직을 잃을 것을 감수하며 당을 나갔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였다. 2017년 3월 3일 〈중앙일보〉보도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측근은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며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전하기도 했다. 

약 3년여 뒤, 김 위원장은 이번엔 "비상 경제"를 들고 지난 26일 미래통합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래통합당 신세돈 공동 선대위원장은 27일 언론등을 통해 "경제민주화에 김 위원장이 기여한 정신은 지금도 살아있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력(前歷)을 배경으로, 이번 선거에서 김 위원장이 자신의 숙원인 '경제민주화'를 실현시켜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도 관심사다.

야권 정계의 한 핵심관계자는 27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 등판은 경제 이슈를 선점한다는  의미가 있고, 본인도 어찌됐든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할 것"이라며 "경제가 워낙 힘드니 이번엔 '팽'당하지 않고 어떻게든 선거도 이기고 본인의 경제정책도 펼쳐보려 하지 않겠나. 미래통합당이 승리하면 당연히 경제에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여권 한 중진의원실 당직자는 같은 날 "김 위원장은 경제를 내세워서 정치를 해왔던 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며 "진짜 경제민주화와 거리가 먼, 과거의 이론에 가깝다. 그래서 민주당에서도 적극적으로 차용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같다고 본다"고 평했다.

한편, 김 위원장의 주장이 아예 실제 경제민주화와는 무관한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진산 전 고려대학교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제민주화라는 건 사실 미국도 실패한 것이다. 북유럽도 세금 구조를 확대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뿐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김 위원장의 주장을 바탕으로는 어떤 영향도 없을 것"이라면서 "한국 경제사에서 진짜 경제민주화에 가까웠던 정책은 문민정부의 금융실명제"라고 주장했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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