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없는 신앙은 빈 껍데기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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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없는 신앙은 빈 껍데기일뿐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10.27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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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회장 8년째 원불교 봉공회장으로 봉사
지난 달 24일부터 이틀간 원불교 서울회관 마당에서는 풍성한 바자회가 열렸다. 원불교에서 펼치는 각종 구호, 자선 사업의 기금 마련을 위해 열린 이번 바자회는 61회째로 지난 1977년에 처음 열렸다. 초창기에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다가 바자회가 점점 성황을 이루면서 봄과 가을 두 번씩 열리고 있다.

기자는 원불교를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가 없어 취재를 나가며 바자회가 어떤 행사일까 궁금했고 인터뷰가 약속된 원불교 서울교구 봉공회와 전국 봉공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미진 회장을 통해 원불교 교도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 원불교 봉공회 바자회에 나온 음식들은 모두 교도들이 손수 만들어서 신자, 비신자 모두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     © 시사오늘


서울 흑석동에 자리한 원불교 서울회관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원불교 서울회관의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다양한 음식을 중심으로 의류와 생활용품도 나와 있었다. 흥겨운 음악까지 흘러나와 바자회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사가 아니라 커다란 축제의 장으로 보였다.

수십 개의 천막은 행사 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해 원불교 교도들이 손수 설치했다. 행사장에 나와 있는 교도들은 모두 원불교 문구가 새겨진 앞치마를 입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에도 질서 정연하고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자회 행사 수익금 자선·구호 사업에 쓰여

김미진 회장과는 문화사회부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사무실 안에 들어서자 한 쪽 벽면에 원불교 창시자인 박중빈 대종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다른 쪽에는 황금빛으로 된 원형의 조형물이 액자 안에 걸려 있었다.

원불교는 불교, 개신교, 가톨릭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 종교 중의 하나다. 1916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박중빈 대종사의 큰 깨달음으로 시작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원불교에서는 1916년을 원기1년으로 표시하고 있고 연도 표시도 내부적으로 원기로 주로 사용한다. 올해 2009년은 원불교 원기 94년이 된다.

김 회장은 원형의 조형물을 보고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법신불 일원상’이라고 명칭을 알려줬다. 보통 절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를 모시고 있지만 원불교에서는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다고 했다.
 
▲ 김미진 회장은 "봉공회 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일원상이 상징하는 것은 부처의 ‘마음’이다. 이것은 부처의 형상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부처의 마음과 하나가 되고 그 위력을 얻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원불교와 전통 불교와의 관계도 궁금했다. 김 회장은 “석가모니는 할아버지 격”이라는 말로  그 관계를 요약했다. 전통 불교가 4월 초파일을 최대 축제로 경축하는 반면 원불교에서는 대각개교절인 4월 28일을 가장 성대히 지내는 것도 차이다.
 
전국 14개 교구에 신자 수 약 120만 명

김 회장은 원불교의 전국적 분포에 대해 “서울을 비롯 부산, 경기, 강원 등 14개 교구에 500여 개 교당이 있으며 교도 수는 약 120만 명”이라고 말했다.
 
원불교는 해외 교화에도 역점을 두고 미국에 해외총부를 건설하는 등 일본, 프랑스, 중국, 독일, 러시아 등 20여 개국에 5개 교구, 50여 개 교당을 설립했다. 지난 2006년에는 국방부로부터 군종승인을 받아 활발한 군교화 활동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김 회장은 매년 바자회를 준비하면서 누구보다 분주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침 일찍 서울회관에 나와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다 보니 남편 밥도 못 차려줄 때가 있다고 한다. 다행히  같은 원불교 신자인 남편이 아내의 열성을 이해해줘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했다.

김 회장의 얼굴은 인터뷰 내내 잔잔하고 평화로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제가 올해 67세”라는 말을 듣고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어렴풋이 40대로 짐작됐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쁜 일을 하고 살면 김 회장처럼 젊어지는 것인가 보다.

김 회장은 고2때인 1961년 원불교 교도가 됐고 교구 봉공회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다. 그는 원불교 서울교구 봉공회 25년사 책자인 ‘봉공하지 않는 종교는 빈껍질이니’에 기고한 글에서 “봉공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저는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봉공(奉公)이란 말은 ‘모든 이를 위한다’는 뜻인데 김 회장이 봉공회 회원으로서 해온 활동을 보면 봉공의 참 뜻을 알 수 있을 듯 싶었다.

김 회장은 올해로 8년째 서울교구 봉공회 회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원불교에 봉공회가 만들어진 이래 최장기 회장이다. “회원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우신 모양”이라고 하자 “너무 오래 해서 이제 물러나야 할 것 같다”며 “봉공회원들 중에는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고 겸손해 했다.
 
바자회 음식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신뢰로 성황 이뤄

김 회장이 봉공회장으로 국내외에서 펼친 활동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바자회를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는 이유 역시 그 수익금이 봉공회의 구호, 자선 사업에 쓰이기 때문이다.
 
바자회에 나오는 음식은 원불교 교도들이 손수 정성껏 만든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 작게 시작한 바자회가 역사를 거듭할수록 성황을 이루는 이유도 원불교 바자회에 나온 음식은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신뢰가 교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까기 쌓였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바자회에서 손수 조개젓을 팔기도 하는데 마산에서 공급받는 액젓이나 갈치 속젓이 무려 2,000통 이상이 팔린다고 말할 때는 목소리에 신명이 느껴졌다.

김 회장을 중심으로 한 원불교 봉공회는 소년원과 구치소 교화, 장애인과 조손 가정 돌봄, 새터민 지원, 도배 봉사 등으로 원불교 교리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김 회장은 “소년원 방문 때는 엄마가 된 심정”이라며 “출소 후 찾아오는 원생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원불교 봉공회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115일 동안 현장에서 음식 봉사를 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시사오늘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는 곧바로 태안으로 달려가 캠프를 설치하고 115일 동안 자원봉사자들에게 점심 식사와 떡국, 라면, 간식을 제공했다. 태안 봉사활동으로 원불교 봉공회는 대통령상을 받아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인도네시아와 중국 지진 때도 현지 봉사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중국 지진 때 현지에서 구호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재민들을 위해 대나무 집 100채를 지어줬고 중국에서는 위험이 커 지진 중심부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외곽에서 건축자재와 식용류 등 물품 지원 활동을 펼쳤다. 아프리카 식량부족 문제를 돕기 위해 기금을 마련해 전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원불교는 생활종교, 실천종교”라고 힘주어 말했다. “봉공회의 봉사활동은 포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구호와 봉사가 목적”이라고도 했다.
 
그는 다른 종교들이 자기 종교만을 강조하고 봉사를 앞세워 종교를 선전하는 모습은 안타깝다는 심정도 전했다. “원불교가 추구하는 것은 빈곤과 무지, 질병, 재해에서 벗어나 전 인류가 평화를 누리며 낙원세계에서 사는 것”이라고 원불교의 포용성을 드러냈다.

김 회장은 봉공회 회장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호스피스로 13년째 봉사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호스피스 활동을 계속 하겠다는 희망을 전했다. 그는 자신의 대외 활동을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남편과 자녀들에게 감사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기자는 인터뷰가 끝나고 김 회장의 안내로 바자회장 즉석에서 만든 비빔밥과 팥죽을 먹었다. 음식 맛도 좋았지만 식탁을 정갈하게 차려주고 뒷정리까지 해주는 원불교 교도들에게  따뜻한 인간미가 돋보였다.
 
김 회장의 말대로 원불교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생활 속에서 교리를 실천함으로써 호감을 사는 종교가 원불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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