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검단산에서 남한산성까지 원 없이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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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검단산에서 남한산성까지 원 없이 걸어보자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0.03.30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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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오르다 보면 언제나 산길은 열려지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하남 애니메이션고등학교 건너편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검단산 초입에는 진달래가 막 피어오르고 있었다. ⓒ 최기영
하남 애니메이션고등학교 건너편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검단산 초입에는 진달래가 막 피어오르고 있었다. ⓒ 최기영

종주 산행을 하는 이유는 뭘까? 처음에는 산봉우리 하나만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이 아쉬워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산과 산을 잇는 능선 길을 걷다가 또 다른 봉우리에 올라, 왔던 길을 바라볼 때의 쾌감은 진정한 종주 산행의 묘미가 아닐까?

요즘은 참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다. 모두에게 참기 힘든 시련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온종일 걸어볼 요량으로 하남으로 향했다. 검단산을 시작으로 용마산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가는 20여km가 넘는 산길을 걷기 위해서다. 애니메이션고등학교 앞쪽 유길준 묘역 방향으로 길을 잡아 그 기나긴 산행을 시작했다. 

검단산 암릉 길에서 본 한강의 모습. 이곳이 검단산에서 조망이 가장 좋다. ⓒ 최기영
검단산 암릉 길에서 본 한강의 모습. 이곳이 검단산에서 조망이 가장 좋다. ⓒ 최기영

검단산은 험하지 않은 육산(肉山)이어서 비교적 오르기 쉽고 한강과 두물머리의 풍광도 기가 막힌다. 유길준 묘역을 지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도시를 가르는 한강과 강 건너에 있는 예봉산이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 바위가 나온다. 검단산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오르다 보면 오른쪽 계단 길과 왼쪽 암릉이 나뉘는 곳이 있는데 약간 더 험하더라도 암릉으로 오르길 권한다. 그래야 미사리에서 서울로 흐르는 한강의 장관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암릉을 다 오르면 편안한 흙길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검단산(657m) 정상에서는 한강 두물머리가 보인다. 운길산 수종사에서 보는 두물머리도 좋지만, 이곳에서 보는 것도 못지않게 아름답다. 검단산 정상에서는 고맙게도 막걸리와 함께 주전부리할만한 것들을 파는 상인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칠 리 없다. 그곳에서 막걸리 한잔을 먹는데 어찌나 시원하던지…. 갈 길이 멀지 않았다면 아예 자리를 잡고 마시고 싶을 정도였다. 

검단산에서 본 한강 두물머리 ⓒ 최기영
검단산에서 본 한강 두물머리 ⓒ 최기영

검단산 정상에서 내려와 용마산 방향으로 향했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숲길이 이어지고 몇 개의 봉우리를 넘으면 고추봉(582m)이 나온다. 고추봉부터는 남한산 벌봉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걸으면 된다. 거기에서 40여 분 정도를 더 걸으면 이날 두 번째 목적지인 용마산(596m)에 닿는다. 그곳에서는 팔당호가 보이는데 물을 가두고 있는 산세는 용문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용마산부터 벌봉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광지원과 은고개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둘 다 남한산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은고개 방향으로 향했다. 

종주를 하면서 내리막길이 나오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만큼 고된 된비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중부고속도로 아래에 있는 지하도를 지나 버스정류장과 함께 한적한 마을이 나타날 때까지 산에서 완전히 내려왔다. 산행을 시작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난 것 같다. 하도 배가 고파 마을 식당에서 보리밥 정식을 먹고 남한산으로 가기 위해 가파른 산길 초입을 찾아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인적도 거의 없는 기나긴 산길을 오르고 내리며 걷고 또 걸어야 한다. 한참을 걷다가 가끔 보이는 '벌봉'이라 희미하게 쓰인 이정표가 반가울 정도다. 그때는 길을 잘못 들지는 않았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렇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아직도 채 무너지지 못한 낡은 성벽이 갑자기 나타난다. 드디어 남한산(522m)에 들어선 것이다. 무너진 성벽과 그것을 따라 무심하게 나 있는 흙길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애잔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아직도 채 무너지지 못한 낡은 성벽과 흙길이 갑자기 나타난다. ⓒ 최기영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아직도 채 무너지지 못한 낡은 성벽과 흙길이 갑자기 나타난다. ⓒ 최기영

17세기 초 후금의 누르하치가 심양을 공격하자 명나라는 조선에 원군을 요청했었다. 당시 임금인 광해군은 강홍립, 김경서를 보내며 형세를 보아 후금에 항복하며, 어쩔 수 없는 출병이었다고 해명하라고 한다. 그 덕에 조선은 후금의 침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인조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나라를 세우게 해준 크나큰 은혜를 베푼 명나라를 버리고 오랑캐인 후금을 섬겼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인조의 노골적인 숭명배금정책이 시작됐다. 이에 후금은 3만의 군사를 보내 조선에 쳐들어왔고(정묘호란) 두 나라는 이때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그 후 맹약대로 명과 전쟁 중이던 후금은 조선의 지원을 요청하지만, 조선은 이를 거절하고 명군에 대한 지원을 계속했다. 명나라가 망하고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은 화가 날 때로 났고 무려 13만의 대군을 조선에 보냈다. 바로 병자호란이다. 나라는 불바다가 됐고 결국 인조는 차디찬 삼전도의 땅바닥에 피가 나도록 머리를 박으며 항복했다. 그리고 남한산성은 그 피비린내 났던 전쟁의 최후 항전지였다. 분명한 점은 그 치욕스러운 병자호란은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남한산 벌봉에 서면 저 멀리 내가 오늘 걸었던 검단산과 용마산의 산세가 아스라이 보인다. ⓒ 최기영
남한산 벌봉에 서면 저 멀리 내가 오늘 걸었던 검단산과 용마산의 산세가 아스라이 보인다. ⓒ 최기영
산성에 들어서니 깨끗하게 복원이 된 성벽과 그것을 따라 기나긴 길이 시원하게 이어졌다 ⓒ 최기영
산성에 들어서니 깨끗하게 복원이 된 성벽과 그것을 따라 기나긴 길이 시원하게 이어졌다 ⓒ 최기영

그렇게 남한산 흙길을 걸으니 이날 종주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벌봉에 도착했다. 내가 걸었던 검단산과 용마산의 산세가 저 멀리 아스라이 펼쳐졌다. 그리고 북문 쪽 방향으로 산성에 들어서니 깨끗하게 복원이 된 성벽과 그것을 따라 기나긴 길이 시원하게 이어졌다. 나는 북문과 연주봉을 지나 서문에서 마천동 방면으로 하산했다. 인조 역시 서문을 통해 산성을 빠져나왔고, 지금의 서울 송파구 장지동, 문정동, 삼전동을 지나 한강 나루터였던 삼전도에 도착해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마천역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거름이 돼있었다. 정말 원 없이 걷고 걸었던 하루였다. 그리고 뻐근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도착해 씻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그날 저녁은 정말 긴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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