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도의 공룡능선, 주작 덕룡의 암릉서 진달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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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도의 공룡능선, 주작 덕룡의 암릉서 진달래를 보다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0.04.06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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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역시 등산은 종주가 '맛'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태양이 떠오르자 암릉 좌우로 풍요롭고 정감 어린 남도의 모습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햇살을 머금은 진달래도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 최기영
태양이 떠오르자 암릉 좌우로 풍요롭고 정감 어린 남도의 모습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햇살을 머금은 진달래도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 최기영

전라남도 강진군과 해남군에 걸쳐 있는 덕룡산과 주작산은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견줄 만큼 아름다워 산을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남도의 공룡능선으로 불리는 곳이다. 특히 끝없이 이어진 암릉과 그것과 어우러진 진달래 군락은 여태 내가 본 어느 진달래 군락지보다 아름답다. 그러나 그곳의 진달래를 보기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지난해 이맘때 덕룡 주작 능선을 다녀온 뒤 산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해남이 고향인 한 친구가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진달래가 피면 꼭 함께 다시 가자고 했었다. 그렇게 1년 전에 약속했던 산행을 위해 우리는 금요일 자정에 만나 전라도 강진으로 출발했다. 

소석문에서 산행은 시작됐다. 헤드랜턴을 켜고 어둠을 가르며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그렇게 숨가쁘게 1시간 좀 넘게 오르면 암릉 구간에 들어선다. 서서히 동이 터 오르면서 끝없이 펼쳐진 덕룡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태양이 떠오르자 암릉 좌우로 풍요롭고 정감 어린 남도의 모습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햇살을 머금은 진달래도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의 고행도 시작됐다. 

서봉에서 본 강진만과 남해안 마을의 모습 ⓒ 최기영
서봉에서 본 강진만과 남해안 마을의 모습 ⓒ 최기영

왜 이곳이 '남도의 공룡능선'이라 불리는지 능선에 들어서자마자 금방 알 수 있다. 그만큼 아름답기도 하지만 고되고 억센 암봉을 오르내리길 수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곳 암릉 구간에는 그 흔한 철계단이나 나무계단도 없다. 무성의하게 늘어뜨린 밧줄이 전부다. 그것도 의지가 되지 않고 손을 어디에 두고 어느 곳에 발을 디뎌야 할지 정말 난감할 때 딱 그 자리에 구원의 손길처럼 철심이 박혀있다. 훈련소 시절 죽지 않을 만큼 실컷 굴려놓고 5분간 휴식을 외치는 조교처럼 말이다. 그러나 암릉에 올라 보는 풍광은 훈련소 5분의 휴식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매력적이다. 

첫 번째 봉우리인 덕룡산 동봉(420m)을 지나면 얼마 가지 않아 서봉(432m)이 나오는데 이후에도 이름 모를 암봉과 능선이 계속 이어진다. 그 뾰족한 봉우리마다 어김없이 우리를 반기는 진달래가 있었고 강진만과 해남 앞바다 그리고 아궁이에 불이 붙은 듯 피어오른 진달래의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거센 바닷바람이 피워낸 이곳 진달래는 키가 작다. 이파리 하나 없는 키 큰 나무들이 몸뚱이가 휘어지도록 꽃을 달고 그리움과 한이 서린 듯 거대하게 군락을 이룬 다른 진달래 명소들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바위마다 분홍색 물감을 조금씩 짜놓은 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무런 손길도 없이 그렇게 바위에서 자라고 피어난 진달래가 얼마나 고고하고 당당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듯하다.

능선길에 서 있는 바위마다 분홍색 물감을 조금씩 짜놓은 듯 진달래가 피어있다 ⓒ 최기영
능선길에 서 있는 바위마다 분홍색 물감을 조금씩 짜놓은 듯 진달래가 피어있다 ⓒ 최기영

그렇게 고되고 힘들다가 아름다운 풍광에 탄성을 내지기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 채 산을 타다 보면 덕룡능선의 주봉인 덕룡산(475m)이 나오며 암릉구간이 일단락된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주작산의 암릉이 나타난다. 

덕룡능선과 주작능선 사이 작천소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주작산 능선길의 시작이다. 그리고 주작산(429m) 정상은 이 작천소령에 시작하는 주능선과 2km 정도 벗어나 있다. 주작산을 그렇게 가운데에 두고 덕룡능선과 주작능선이 양 날개처럼 펼쳐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비상하는 형상이라고 해서 주작산(朱雀山)이다. 그 사나운 날개와는 달리 주작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암릉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그곳을 오르지 않고 바로 주작능선으로 향한다. 우리도 작천소령을 지나 오소재 방향으로 곧바로 능선길로 들어섰다. 

이곳 암릉 구간에는 그 흔한 철계단이나 나무계단도 없다. 손을 어디에 두고 어느 곳에 발을 디뎌야 할지 정말 난감할 때 딱 그 자리에 구원의 손길처럼 철심이 박혀있다 ⓒ 최기영
이곳 암릉 구간에는 그 흔한 철계단이나 나무계단도 없다. 손을 어디에 두고 어느 곳에 발을 디뎌야 할지 정말 난감할 때 딱 그 자리에 구원의 손길처럼 철심이 박혀있다 ⓒ 최기영
암릉과 암릉을 잇는 길에도 키작은 진달래가 여기저기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덕룡산 주봉을 지나면 암릉구간이 일단락된다. 그리고 저 멀리 아름다운 주작능선이 보인다. 작천소령에서 주작능선으로 들어섰다. 더욱 뾰족하고 날카로운 암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어도 진달래와 한없이 이어진 암릉의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 최기영
암릉과 암릉을 잇는 길에도 키작은 진달래가 여기저기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덕룡산 주봉을 지나면 암릉구간이 일단락된다. 그리고 저 멀리 아름다운 주작능선이 보인다. 작천소령에서 주작능선으로 들어섰다. 더욱 뾰족하고 날카로운 암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어도 진달래와 한없이 이어진 암릉의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 최기영

덕룡능선에서 한번 진이 빠져서인지 주작능선 길은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김없이 가슴을 태워버릴 듯한 진달래와 한없이 이어진 우람한 능선의 아름다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다해서 암릉을 오르고 내려왔다. 구불구불 이어진 우리나라 땅끝 능선의 조망은 내내 답답했던 나의 속을 다 뻥 뚫을 정도였다. 그렇게 걷다가 힘들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면 된다. 그 자리가 바로 멋진 전망대고 조망터였다. 

그러나 결국 남아 있는 기운마저 거의 소진되고 말았다. 도대체 암봉이 몇 개나 더 남은 거냐며 또다시 우리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바위산을 보며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드디어 정말 눈물이 나도록 반가운 유순한 내리막 흙길이 나타났고 오소재에 도착하며 이날 산행은 끝이 났다. 

걷다가 하도 힘이 들어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 자리가 바로 멋진 전망대고 조망터였다 ⓒ 최기영
걷다가 하도 힘이 들어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 자리가 바로 멋진 전망대고 조망터였다 ⓒ 최기영

넘고 넘어도 다시 또 나타났던 육중한 바위산들…. 지금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힘들고 지쳐도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는 넘을 수 있었고 목적지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했던 덕룡과 주작의 암릉처럼 말이다. 

오소재에 도착해 그제야 우리가 준비했던 막걸리와 안주를 꺼냈다. 모두가 힘들었는지 다시는 무박 종주는 하지 말자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니 종주의 쾌감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우리는 역시 등산은 종주가 맛이라며 또 다른 종주 산행을 약속하고 말았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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