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인터뷰] 김수민 “그들과 달라야 하니 참고 또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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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인터뷰] 김수민 “그들과 달라야 하니 참고 또 참는다”
  • 충북 청주=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4.08 13: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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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 앞에서 치기어린 말 하다 덜컥 정계 입문…국회, 겪어보니 모순적인 곳”
“내가 최연소? 한국 정치 후진적…정당에게 청년은 선거용 일회용품”
“安 따라가지 않은 이유? 쉽게 정치 않겠다…차기 대선도 일대일 구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충북 청주= 한설희 기자]

‘여전사(女戰士)’. 고리타분한 수식어다. 하지만 젊음과 신선함을 갖춘 3040 청년 여성이자 만만찮은 상대 남성 후보와 겨룬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이기도 하다. <시사오늘>은 진보‧보수‧중도의 여전사를 대표하는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서울 광진을 △미래통합당 김수민 후보(충북 청주청원) △미래통합당 배현진 후보(서울 송파을)의 유세현장을 추적했다. <편집자주>


기자는 지난 2일 청원구 내덕동에 위치한 미래통합당 김수민 후보의 지역사무실에 들러 그의 저녁인사에 동행했다.ⓒ시사오늘(김수민 사무실 제공)
기자는 지난 2일 청원구 내덕동에 위치한 미래통합당 김수민 후보의 지역사무실에 들러 그의 저녁인사에 동행했다.ⓒ시사오늘(김수민 사무실 제공)

4·15총선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인 지난 2일, 기자는 저녁인사를 나서기 전 청원구 내덕동 지역사무실에 들러 정비 중인 통합당 김수민 후보를 만나 그와 동행했다. 인터뷰는 그의 빽빽한 스케줄로 인해 사무실과 차 안에서 틈틈이 짬을 내 이뤄졌다. 

김 후보는 행인을 만날 때마다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제가’ 김수민입니다”라고 인사하고 있었다. ‘제가’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제가 유세를 하면, 주민께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제가 후보라고 생각을 안 하시는 거예요. 그냥 젊은 여성 유세원이라고만 생각하세요. 명함을 드리면 저한테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신다니까요. 그때마다 ‘명함에 있는 사람이 저예요’라고 답해야 돼요. 그래도 인사하면 잘 호응해주시고 좋게 받아주세요.”

실제 김 후보의 저녁 인사 현장에선 자동차 안에서 경적을 울려 호응해 주는 시민도, 그에게 “고생한다”며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주는 시민도 있었다. 5선 고지 등정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 변재일(71) 후보에 맞선 젊은 정치인의 출현을 반기는 모습이었다. 청원구에 거주한다는 60대 택시기사 강 씨는 “청주, 특히 오창읍엔 ‘유모차부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젠 국회의원도 지역민 따라 어려져야하지 않겠느냐”면서 김 후보의 도전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를 쫓아 올라간 지역사무실은 사랑방처럼 지역 주민들로 인해 붐볐다. 김 후보와의 개인적 인연은 없다는 그들은 “우리 지역의 젊은 정치인을 응원하기 위해 모였다”고 했다. 다음은 김 후보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요약한 내용.


“安 앞에서 치기어린 말 하다가 덜컥 정계 입문…국회, 겪어보니 모순적인 곳”

-4년 전 국민의당 소속 비례대표 후보였을 때와, 통합당 소속 지역구 후보인 지금 상황을 비교해 달라. 우선 선거운동에선 어떤 차이점이 있나.

“사실 저는 비례대표 후보 시절 선거 운동을 거의 한 적이 없다. 그땐 브랜드 회사를 운영하면서 사무실에서 국민의당 로고를 만드는 작업을 했었다. 백업, 즉 후방지원만 했었던 거다. 이렇게 현장에서 하는 선거운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힘들지 않나.

“어휴….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과연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링겔 맞으면서 하고 있다. 링겔도 원래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맞아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없어서 통증에도 불구하고 빨리 조절해 맞는다.”

-힘든 현실 정치, 어쩌다 시작하게 됐나. 

“사실 저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안철수 대표야 워낙 유명인이었으니 어렴풋이 피상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었는데, 총선 전에 그가 ‘국민의당 로고 제작을 맡아 달라’며 회사를 찾아왔다. 그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정치를 몰랐기에 할 수 있었던 치기어린 얘기들 있지 않나. 그런 얘기들을 안 대표 앞에서 막 해댄 거다. 그걸 그가 좋게 봤던 데서 인연이 시작됐다. 

또 안 대표가 워낙 청년창업가를 국민의당 비례 후보로 고르고 싶어 했고, 제 회사가 디자인한 허니버터칩이라는 제품의 흥행, 거기에 여성 창업가라는 특수한 점 등을 종합해서 제게 영입 제안이 들어오게 된 거다.”

-이쯤 되니 궁금하다. 대체 안 대표에게 뭐라고 했나? 

“별 건 아닌데, 정치권이 정말 청년들을 위한다면 ‘성장과 분배’ 같은 추상적 얘기만 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분배’라는 얘기는 당장 생존 문제로 허덕이는 청년들, 창업가들에겐 너무나도 먼 얘기가 아닌가. 7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당장 6개월 이후의 직원들 월급을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현실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안 대표는 한 청년으로부터 대뜸 문제를 지적받는 게 신선했던 것 같다. 2016년 총선 내내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생존의 이야기를 하더라’면서 그 얘기를 하고 다니더라고. 저도 거기서 안 대표에게 호감을 느꼈다. ‘아, 이 사람이 기존의 정치 문법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구나. 그래도 내 얘기를 들어주려는 정치인이 있구나’ 싶었다.”

-국민의당 쪽에서 영입 제안을 했어도, 본인이 거절할 수 있었지 않나. 잘 나가던 기업인이 굳이 직업 정치인을 하겠다고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나.

“결정적으론 국민의당 캠프에서 설득 당했다. 하하. 캠프 분들이 ‘정치도 네가 했던 기업 경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제게 자신감을 줬다. 사회의 문제를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것이나, 정치로 해결하는 것이나 문제 해결이라는 측면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막 설득하는 거다. 듣다보니까 ‘음, 확실히 공통점이 있는 것 같네’라는 생각이 들었지.”

김 후보에게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한 적 없느냐”고 묻자 깊은 한숨과 함께 바로 “후회한다. 한국 정치의 현실을 알았다면 용기를 못 냈을 것 같다”는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시사오늘(김수민 사무실 제공)
김 후보에게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한 적 없느냐”고 묻자 깊은 한숨과 함께 바로 “후회한다. 한국 정치의 현실을 알았다면 용기를 못 냈을 것 같다”는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시사오늘(김수민 사무실 제공)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한 적 없느냐”고 묻자 깊은 한숨과 함께 바로 “후회한다. 한국 정치의 현실을 알았다면 용기를 못 냈을 것 같다”는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저는 통상적 수준의 정치만 알던 평범한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현실 정치는 참….”

문장 사이의 공백이 길어졌다. 목소리를 낮춘 그는 앞서 정치 입문 과정을 설명했을 때보다 진중한 태도로 말했다. 

-20대 국회에서 회의감을 많이 느꼈나보다. 4년 겪은 현실 정치는 어떠하던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포기를 해야 되는 부분이 많았다. ‘개인의 삶’이라는 부분, 그러니까 사적인 영역을 욕심내는 건 사치가 됐다. 일단 지나치게 바쁘니까.”

-4년 내내 그렇게 바빴나.

“그렇다. 그나마 저 같은 경우는 원래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워라밸’에 대한 큰 미련은 없었고, 미혼이기 때문에 내 앞가림만 하면 된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손꼽히는 의제들이 ‘워킹맘’, ‘워라밸’ 문제 아닌가. 이런 것들을 해결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지금 국회에 모여 있는 건데, 막상 국회는 일과 가정을 정상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업무구조가 절대 아니라는 모순을 갖고 있다. 국회에 들어오려면 누군가가 아이를 대신 키워줘야만 한다. 같은 당 신보라 의원은 굉장히 힘들 거다.”

-의정 활동을 하면서 가장 상처가 됐던 일을 하나만 꼽는다면.

“당선되자마자 큰 충격을 받은 일이 하나 있다. 국회의원은 1년마다 재산신고를 하지 않나. 당시 29살이었던 제가 학자금을 다 갚고 모은 재산이 총 3600만 원이었다. 29살 청년이 그 정도 갖고 있으면 평균 아닌가? 아주 당당하게 재산등록을 했다. 그런데 그걸 보고 언론이 ‘성공한 청년 벤처인이라던 김수민, 재산 신고 하위 2위’라는 주제의 기사를 쓴 거다! 그걸 보자마자 크게 화가 났다. 대체 ‘성공의 기준’이 뭔가. 돈 밖에 없나? 성공의 기준은 말 그대로 다양해야하지 않나. 우리 국민들의 생각 가늠자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이,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돈’이라는 판에 박힌 낡은 잣대로 청년의 성공을 재단하려는 것에 가장 화가 났다.”

-고정 관념과 싸우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이젠 지난 4년간의 경험을 그저 ‘좋은 커리어’로 남기고 싶지 않아졌다. 사회 변화를 위해 이런 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고 이를 악물게 됐다.”


“내가 최연소? 한국 정치 후진적…정당에게 청년은 선거용 일회용품”

김수민 후보는 29살의 나이로 국회에 입성했다. 20대 국회 내 최연소 의원이자, 1954년 26세의 나이로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약 60년 만의 20대 국회의원이다. 김 후보는 이러한 타이틀에 대해 “누군간 자랑스럽게 여기겠지만, 저에겐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일갈했다. 

-왜 불명예인가. 혹자는 이를 두고 ‘충북의 자랑’이라고도 하던데.

“29살 먹은 정치인이 ‘최연소’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반증하는 거다. 경제적으로, 사회 문화적으로 일류 국가라는 한국이 어째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치의 영역에서만큼은 이렇게나 후진적인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다. 이게 제 개인적 명예로 취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우리당 뿐 아니라 어느당에서든 제 최연소 의원 타이틀을 깨주길 기대하고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중 당선권에 있는 류호정(27)이라는 친구가 입성하면 가능할 것도 같다.”

-‘20대 국회 최연소’라는 유리한 타이틀을 갖고 있음에도, 정치권에서 존재감이 두드러지진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현실 정치는 비판해야, 아니 누군가를 비난해야 몸값이 커지더라고. 어떤 사건에 대해서 비판을 아끼고 대안을 얘기하면 재미가 없어서 그런지 언론이 받아써주질 않더라. 공식석상에서 이런 저런 말 참 많이 했는데, 그게 기사화가 덜 된 거다. 또 내가 대안을 얘기해도 상대방은 비판을 해버리니까, 상황이 제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을 점점 아끼게 됐다.”

-똑같이 비판을 할 생각은 못했나. 어쩌면 그게 현실 정치의 문법일 수도 있다.

“제일 쉬운 말하기가 상대방을 무작정 비난하고 비판하는 거다. 대부분의 기성정치인들이 특정 이슈가 터지면 대안을 얘기하질 않고, 휘발성 비난으로 끝낸다. ‘이렇게 하겠다는 건가? 정부여당 진짜 노답이네’ 이런 식이다. 이런 책임감 없는 정치가 현실 정치라면 길들여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참고 참고 또 참는다.”

-원내 몇 안 되는 청년 정치인이자, 17%밖에 되지 않는 여성 정치인이다. 정당 내 청년문제와 여성문제는 거의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맞다. 부담감도 컸다. ‘젊은 여성’이라는 대표성과 상징성이 굉장히 고정돼있더라. 자기들 편하려고 모든 것을 내게 맡긴다는 기분도 들었다. ‘네가 청년대변인 하고 너 알아서 해’, 이런 식이었다. 기성정치인들에게 청년문제는 그저 남의 일이라서, 관심도 의지도 없더라. 피상적인 법이나 규칙만 겨우 만들어놓곤 ‘땡’이다. 청년들은 기성 정치인에게 있어 그냥 껍데기였다. ‘선거용’이자 일회용일 뿐이었다.

대기업의 경제적 독과점을 두곤 모든 정당이 불평등을 외치면서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치적 독과점에 대해선 아무도 얘기를 안 하는 거다. 어떤 정당이든 당내에서 크게 문제화하지 않고, 새로운 정치인을 배양하지도 않는다. 참 답답한 일이다.”

김 후보는 ‘안철수계’로 불렸지만 국민의당에 가지 않고 통합당으로 갔다. 당선을 위해 제3당에서 기득권 양당으로 당적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그는 “민주당의 마타도어(흑색선전)일 뿐”이라면서 불쾌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시사오늘(김수민 사무실 제공)
김 후보는 ‘안철수계’로 불렸지만 국민의당에 가지 않고 통합당으로 갔다. 당선을 위해 제3당에서 기득권 양당으로 당적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그는 “민주당의 마타도어(흑색선전)일 뿐”이라면서 불쾌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시사오늘(김수민 사무실 제공)

김 후보는 ‘안철수계’로 불렸지만 국민의당에 가지 않고 통합당으로 갔다. 당선을 위해 제3당에서 기득권 양당으로 당적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철새’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비난을 두고 “민주당의 마타도어(흑색선전)일 뿐”이라면서 불쾌감을 내비쳤다.

-야심차게 시작한 국민의당(2016)과 바른미래당은 분당과 함께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둘에 모두 몸담았던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중도는 ‘허깨비’인가.

“중도는 있다. 다만 그 중도의 영역이라는 것은 정권이 조금 잘하고 야당이 아주 못할 때 넓어지는 것 같더라. 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19 초동 대처로 알 수 있듯 위기 상황에서 특히 무능하고 독선적이다. 문재인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당이 가망 있어 보이니까, 제3지대가 열리지 않는 상황이다. 정권이 계속 이렇게 행동한다면, 안타깝지만 2년 후 대선도 지금처럼 여야 일대일 구도로 치러질 것 같다.”

-국민의당 권은희·이태규 후보와 다른 길을 택하게 된 솔직한 이유가 궁금하다.

“비례대표는 정치·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보다 원내에 원활하게 진입해서 우리 의회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전 비례를 이미 한 번 했기 때문에 정치적 약자라고 불릴 수 없고, 그렇게 불리고 싶지도 않다. 비례를 또 하는 것이야말로 상대편이 비난하는 것처럼 그저 당선만을 위해 사는 거다. 제가 정치를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정치하는 동안 약자의 몫인 비례대표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기성정치인처럼 쉽게 정치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일부러 어려운 길로만 가고 있다는 말인가. 

“8명의 의원을 뽑는 충북에선 단군 이래 단 한 번도 ‘여성 후보’가 나온 적이 없다. 시장, 도지사 후보도 전무했다. 여성이 공천조차 받은 적이 없었던 거다. 이 곳은 여성정치인의 불모지다. 그래서 21대 총선 출마를 고민할 때, 부러 고향인 충북 내에서도 정치적 독과점이 가장 심한 지역, 그것도 16년 동안 한 사람이 독점한 이 지역을 골랐다.”

헤어지기 전 정치인으로서 ‘롤 모델’이 있느냐고 물었다. “꼭 한국에서 찾아야 되느냐”며 반문하더니 풍자가 섞인 유쾌한 대답을 남겼다.

“공자가 했던 말 중에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거든요. 좋은 친구에겐 좋은 면을 배우면 되고, 나쁜 친구에겐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부분을 배우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기성 정치인은 저에게 좋은 스승이고 롤 모델이겠죠?”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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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합니다 2020-04-08 13:51:13
고향이충북 인 워킹맘 입니다
열심히 유세하시는 후보님 응원합니다
좋은결과 있길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