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경제계가 복기해야 할 ‘21대 총선 세 가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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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경제계가 복기해야 할 ‘21대 총선 세 가지 장면’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04.16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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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경영·중장기 계획·안정 속 변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시사오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시사오늘

기업 경영전략과 국가 경쟁력 연구부문 최고 권위자 마이클 E.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18대 대선이 치러지기 직전인 지난 2011년 우리나라를 방문해 연단에 섰다. 강의가 끝난 후 한 패널이 포터 교수에게 '내년에 다시 한국에 오면 어떤 걸 가장 보고 싶느냐'고 물었고, 뜻밖의 답변이 나왔다. 그는 "선거다. 한국이 어떤 대통령을 선택할지 가장 궁금하다. 그리고 더 궁금한 건 왜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을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영학의 대가의 입에서 왜 '선거'라는 말이 나왔을까. 정치와 기업경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정자와 기업가들은 늘 충돌했고, 항상 공조했다. 이들의 앞서거니 뒤서거니가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확립된 현대시민사회 들어서는 자본권력이 우위를 잡는 듯했다. 기업가들이 건넨 후원금에 따라 선거 판도가 바뀌었고, 그들의 로비에 국가정책과 입법활동이 좌우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흐름이 다시 꺾이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 산유국 간 분쟁 등 여러 정치권력발(發) 지정학적 이슈들이 전례가 없는 리스크를 만들고 있고, 이 같은 불안정이 자본권력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전염병 사태까지 발생해 이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는 정치권력의 힘이 더욱 커졌다. 정치적 환경에 따라 주가와 유가, 그리고 집값이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게 됐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고, 정치인들의 행보에 기업가들이 따라 움직이는 '선(先)정치 후(後)자본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난 15일 21대 국회의원선거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승자와 패자 간 격차는 당초 예상보다 더 컸다. 서울·수도권 지역을 싹쓸이한 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를 포함해 180석을 차지하며 과반을 훌쩍 넘겼다. 반면,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비례 의석을 합쳐 고작 103석을 확보하는 데에 그쳤다. 최종 투표율은 28년 만에 최고치인 66.2%, 여느 때보다 민심이 분명하게 반영된 총선이었고, 기업가 입장에서는 선(先)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실히 유추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지속된 경기 불황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위기감이 심화되고 있는 이때, 기업가들은 정치로부터 어떤 점을 배워야 하며, 또 어떤 경영적 메시지를 취사 습득해야 할까. 국내 경제계가 한번쯤 복기해야 할 이번 총선이 가진 세 가지 장면을 짚어봤다.

책임정치 시대의 본격 도래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선거에서 패배해 물러난 당대표, 대선 후보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유력 정치인의 정계은퇴 선언이 현실화된 적은 있는가. 국내 정치권에서 '책임정치'라는 말은 없었다. 잠시 은거했다가 다음 선거 때 복귀하거나, 당을 깨고 새롭게 창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 故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현재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계은퇴를 번복한 수많은 인사들이 청와대,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21대 총선은 다소 궤가 달랐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 뒤 열린 선거라는 '상수'를 제1야당이 망각한 것이다. 19대 대선에서 비박계 홍준표를 후보로 내세운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은 당시 선거에서 참패하자 다시 도로 친박당으로 회귀했고, 박근혜 정부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을 차기 총선을 이끌 사령탑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선거의 여왕으로부터 옥중서신이 내려왔다. 어쩌면 이때부터 통합당의 패배는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형오 공관위 체제에서 통합당은 급진 보수진영에서 이른바 '탄핵 7적'으로 규정하는 인사(김무성ㆍ유승민ㆍ정진석ㆍ김성태ㆍ권성동ㆍ이혜훈ㆍ하태경) 중 1명에게만 온전하게 공천을 줬고, '진박 10인'(정갑윤·원유철·유기준·윤상현·김재원, 탈당 등 최경환·이정현·서청원·홍문종·조원진)들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탄핵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려는 노력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선거를 채 한 달 앞두고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표출되기 시작했고, 황교안을 위시한 친박계가 다시 목소리를 냈다. 이 과정에서 원조 친박인 민경욱, 김석기 등이 직권 공천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 구도에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청년 후보들이 배제되기도 했다. '도로친박당', '중년 공천'이라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됐고, 이 같은 공천파동은 중도층이 등을 돌리는 핵심 계기가 됐다.

탄핵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채, 오히려 유권자들로 하여금 탄핵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 상태에서 치른 선거, 좋은 결과가 나올 리 만무했다. 민경욱·김진태·이장우 등 친박들이 낙선했고, 김용태·이혜훈 등 쫓겨나듯 험지에 공천된 소장파들도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황교안은 종로에서 패배했다. 과연 황교안이 다시 선거판에 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책임정치' 시대가 본격 도래했다.

大事 망친 근시안적 행보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한 치 앞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정치인, 경영인 모두에게 통용되는 얘기다. 이번 총선에서는 근시안적 행보를 보이며 자멸한 거물급 정치인들이 여럿 목격됐다. 또한 이와 반대로 오래 전부터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준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정치인들도 있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김부겸이다. 4년 전 20대 총선 당시 지역주의 타파를 앞세워 대구 지역에서 당선돼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주자 명단에 항상 이름을 올렸던 그는 이번 총선에서 1위와 20% 이상 격차를 보이며 참패했다. 코로나19 사태 직격탄을 맞은 대구 지역에서 정권심판론이 거세게 불어 불가피한 패배였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이나, 김부겸의 실착이 한몫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부겸은 '민주당에서 나온 31년 만의 대구 국회의원'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임기 초반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20대 국회 원이 구성되고 채 1년도 안돼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내정된 것이다. 이 같은 행보는 21대 총선 정국에서도 이어졌다. 김부겸은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2일 출정식을 열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확실히 개혁하는 길을 가겠다"며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지역민들이 원한 게 과연 대선 후보 김부겸이었을까.

20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청산을 내세워 부산 지역에서 당선돼 3선 거물급으로 급부상한 김영춘도 이번에 낙선했다. 김부겸과 마찬가지로 금배지를 달기 무섭게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가면서 민심을 잃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반면, 이와 반대의 길을 걸으며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승급한 정치인도 있다.

우선, 하태경이다. 그는 과거 대학 시절 NL계 학생운동, 중국 유학 등 이력으로 보수진영에서는 치명적인 '빨갱이' 딱지가 붙은 인물이다. 하지만 이후 게임, 연예, 스포츠 등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높은 이슈들을 선점해 영향력을 키웠고, 당내에서는 종북몰이, 반공 등 구시대적 프레임을 이용하려는 중진들을 저격하며 '2030 청년층을 위한 중도개혁보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이번 총선에서 '탄핵 7적'으로 분류돼 경선을 치르는 등 공천 과정에서 시련을 겪었으나 결국 3선 국회의원 반열에 올랐다.

이준석도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험지로 분류되는 서울 노원병에 세 번째 도전장을 내민 그는 이번 총선에서 44.3%라는 높은 득표율로 석패했다. 역대 노원병 보수진영 후보자 중 최고치다. "전통적 보수가 사용하던 좌파, 종북, 공산주의 같은 단어 없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경제와 안보를 넘어선 정의, 공정, 젠더이슈 등 더 다양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낙선인사는, 앞으로 이준석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안정 택한 국민, 그리고 변화의 시작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21대 총선 당선인들을 축하하며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21대 총선 당선인들을 축하하며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불과 1~2주일 전만 해도 미래통합당이 참패할 거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후 차명진발(發) 막말 논란이 증폭되면서 부정적인 전망이 나왔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과반수를 훌쩍 넘긴 180석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사태라는 게 중론이다. 당초 보수층과 중도층에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실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유권자들이 정권심판을 통한 변화가 아닌, 안정을 택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안전자산을 찾는 것과 같은 심리다.

실제로 20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구 자유한국당)의 보이콧 선언은 20여 차례가 넘는다. 국민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엄중한 시국 가운데 국민들은 21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가 되길 희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난극복을 위한 초당적 노력이 어렵다면 차라리 집권여당에 힘을 주고, 분열된 국론을 모아 위기를 타개해 달라고 표를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지역주의 성향이 더욱 짙어진 점도 이 같은 분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뭉쳐야 산다'고 판단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안정 속에서도 변화의 기미는 엿보인다. 90년생이 비례대표로서 국회에 첫 발을 딛게 됐고, 20대 국회에서 3명에 불과했던 30대 국회의원 당선자가 21대 총선에서는 11명으로 늘었다. 젊음은 언제 어디서나 변화를 주도한다. 4차 산업혁명 등에 이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가 곧 막을 올리는 시점에서 새롭게 경험하게 될 변화의 흐름을 젊은 세대가 주도하길 바라는 표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 여성 의원 수가 26명에서 28명으로 증가한 점도 눈에 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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