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미증유 실업 대란과 국가 경제 항로(航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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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미증유 실업 대란과 국가 경제 항로(航路)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0.04.1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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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란 현실화…일자리가 최우선
ILO, 2차대전 후 최대위기 경고
경제 대재앙 이제 초입(初入)
뒷전으로 밀린 민생 정책들
일자리·산업 붕괴 최소화해야
규제혁파 외에 대안 없다
신속·과감한 기업 지원으로 극복을
노사정 협력으로 헤쳐나가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실업대란이 가시화하고 있다. 코로나발(發) 실업쇼크가 현실로 다가왔다. 대량 실업(失業)이 일자리 재앙으로 악화됐다. 취업자는 격감하고 실업자는 급증하는 ‘고용한파’가 닥친 것이다.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추락하면서 기업은 기업대로 산업 생태계 붕괴에 직면하고,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실업에 몰리는 심각한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닥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일자리 81%가 실직 등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경고가 더는 먼 나라 일이 아니다. ILO의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평가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한국은 20~30대 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40~50대 가장들도 곳곳에서 실업자가 되고 있다. 노인 일자리 대부분이 중단되면서 60대 이상 고령층도 구직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적 충격이 1998년 외환위기나 2009년 금융위기 등 우리가 겪은 어떤 위기 때보다 심각하다. 초토화돼가는 민생, 산업 현장의 지원이 화급을 다투는데 정부 대책은 더디기만 하다. 

실업대란이 가시화하고 있다.ⓒ뉴시스
실업대란이 가시화하고 있다.ⓒ뉴시스

결국 민생(民生)에 충격파

치명적인 ‘경제 코로나’와의 전쟁은 이제 겨우 초입(初入)이다. 앞으로 국내적으로는 대량 실업과 폐업, 글로벌 차원에선 국가 간 ‘경제 장벽’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근대 이후 초유의 현상이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가 급전직하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고 글로벌 공급망에 강하게 엮인 한국이 받는 충격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 밖에 없다. 

직격탄을 맞은 항공·관광·호텔·자동차 업계에선 이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시작됐다. 기업 규모나 업종 등을 망라해 전방위적으로 실업사태가 빚어지는 실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면 관광·문화 공연 관련 산업에서 시작해서 다른 산업 쪽으로, 매출 감소를 견디기 힘든 영세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쪽으로 퍼질 것이다. 산업 전반이 실업대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고용 대란이 깊어지면, 회복하기 힘든 악순환의 함정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소비와 투자, 수출 등을 아우르는 성장률의 추락은 산업 생태계 붕괴와 일자리 절벽으로 이어져 결국 민생에 충격파로 다가온다. 

고용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도 가속화될 조짐이다. 기간산업이 무너지면 대량실업이 도미노처럼 발생할 것이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는 그 몇 배의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 

노사정, 대타협 나서야

무엇보다, 법의 사각지대 근로자들은 지금 같은 불황에 가장 취약하다. 자영업자,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종사자 등 사회안전망 바깥에 선 이들의 상당수가 이미 벼랑끝에 몰려있다. 여기에 중견·대기업 근로자까지 가세하면 지금껏 보지 못한 최악의 실업대란과 마주할 수 있다.

이미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청년층 취업시장이 얼어붙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당장 실업 급증에 대처할 방안에서부터 고용을 늘려나갈 중장기적인 방안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고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기업 활성화를 통한 고용 창출이 정공법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후 2, 3년간 기업이 채용을 멈추면서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 사다리’에 첫발조차 올리지 못한 채 ‘잃어버린 세대’가 됐다. 이런 세대가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일자리 하나 하나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때다. 노사정이 뭉치지 않으면 실업대란을 피하기 어렵다. 미증유의 사태를 맞아 노사정은 머리를 맞대고 대타협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감염병위기는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경제위기는 고용위기를 부른다. 일자리가 유지될 때 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어떻게든 해고는 막아야 한다. 지금은 노사정이 고용안정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 나서야 할 때다. 노사정이 함께 뭉치지 않으면 실업 대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이 더 큰 충격 받을 것” 경고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감소추세에 있는 것은 일단 반길 일이지만, 지구촌 경제로 묶여 우리만 괜찮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라는 게 역시 문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최근 “세계 노동자의 81%가 코로나19로 일자리 위협을 받아 올 2분기엔 전 세계적으로 1억 95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한 보고서를 냈다. 

ILO의 경고는 대공황을 연상케 한다. 실업대란은 이제 시작으로,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할 것이다. 글로벌 환경 변화가 치명적이다. 자유무역 메가 트렌드가 코로나 이후에는 장벽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뀔 조짐이 선명하다. 

이와 관련, 미국 경제석학인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 교수는 “세계 경제의 지옥문이 열릴 텐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미국은 최근 2~3주 사이 약 10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영국은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코로나19 이전보다 10배나 늘었고 프랑스, 스페인 등은 매주 100만명 안팎의 실업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은 이미 고용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멈추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2분기 이후 매출과 이익이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고용조정 시작...“5개월 이상 버티기 어렵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가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면 연간 마이너스 성장도 배제할 수 없다. 성장률 둔화나 역성장은 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실업양산과 함께 온다. 

최근 2개월 동안 휴업·휴직 계획 신고를 한 사업장이 4만600여 곳에 달해 일자리가 급속하게 사라질 우려가 크다. 

직격탄을 맞은 업종들이 본격 구조조정에 나선 만큼, 고용대란이 빨리 올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자영업자 포함 전체 취업자 가운데 고용보험 가입자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실업은 생계 위협으로 직결되기에 긴급 대응이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 이전 고용지표 악화 등 우리 경제가 중병을 앓던 상황에서 코로나 충격까지 겹쳐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실업 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고용조정은 끝이 아니고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기업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3%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5개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기업의 위기는 고용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량 실업 사태가 예고되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벌써부터 정부와 국회,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이 또한 벼랑 끝에 몰린 기업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요구다. 

40ㆍ50대 비중 가장 높아

당장 우리 경제 현장을 돌아보면, 암울하기 짝이 없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의 장기화로 관광, 외식, 문화, 공연산업이 수요 절벽으로 빈사 상태고,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매출 절벽으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주에는 김포공항의 국제선 이용객이 ‘0명’이라는 믿기 어려운 집계도 나왔다. 1년 전 같은 기간에는 8만9189명이었다. 항공기 10대 중 9대가 서있는 항공업계는 매출이 거의 제로인 상태에서 날마다 수십 수백 억원의 고정비용 부담을 안고 있다. 

지난주까지 해고를 막기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사업장은 벌써 4만여곳이나 되어 지난해 전체 수치보다 무려 26배나 급증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3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구직급여 지급액도 8982억원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하면 40.4%나 폭증한 수치다. 신청자는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만 지금 추세로도 내달 지급액은 1조원을 넘을 게 확실하다. 

영세사업장의 노동자,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비정규직 등은 소리 소문 없이 실직하고 있다. 고용복지센터의 실업급여 창구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실업대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특히 가계를 책임지며 생애 가장 많은 소득이 필요한 40·50대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점은 상황의 심각성을 가중시킨다.

다수의 중소기업 등에서는 무급휴직 등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없이는 향후 실업 대란 파장은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 요즘에는 자동차, 항공, 정유, 해운 등 핵심 산업과 수출 대기업에서까지 셧다운이나 휴직이 속출하고 있어 걱정을 더한다. 

유기적 종합대책 관건 

정부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아직까지 정부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4·15 총선을 맞아 민심의 표적을 비켜가기 위해 말로만 ‘특단의 대책’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정부와 여당은 피해 유무와 관계없이 국민에게 무차별로 지원하는 긴급재난지원금 이슈에 함몰돼 있다. 실업 쓰나미가 덮치고 있는데 일회성 대책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문이다.

문제는 재정이다. 곳곳에 재정을 퍼 부울 일 투성이다. 이미 드러났거나 앞으로 드러날 블랙홀이 한두 곳이 아니다. 지금도 비명이 나올 정도지만 코로나19가 앞으로 경제에 미칠 후폭풍은 가늠조차 어렵다. 

멀쩡하던 지난해에도 2조원 넘는 적자를 기록한 고용보험기금은 올해엔 얼마나 더 구멍이 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지금의 고통은 시작이다. 고용 대란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실기하지 않고 세워야한다. 과감할 정도로 선제적이고 유기적인 종합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고용도 유지되고, 고용이 유지돼야 가계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제의 신축 적용을 포함해 과감하고 신속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를 내다보는 포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코로나 위기 종식 이후 얼마나 빨리 경제 활력을 회복하느냐는 당장의 어려움에도 고용을 얼마나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느냐에 달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IT 및 물류업체의 일자리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정부도 미래의 산업 재편을 시야에 넣으면서 청년층의 새로운 일자리 발굴에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앞으로 닥칠 경제 파고의 재정 방파제를 쌓는 일도 화급하다. 돈만 풀 게 아니라, 기업들을 해외로 내모는 숨 막히는 규제를 확 풀어야 한다. 

개방형 수출국 한국 전면 타격

전 세계적 위기상황으로 시각을 돌려야 한다. 코로나19발 실업대란 위기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3월 13일 이후 일자리를 잃고 새로 실업수당을 신청한 건수가 무려 1천675만건에 이른다. 종전까지 월 최다 청구기록이었던 2차 석유파동 직후인 1982년 10월의 69만5천건이나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의 66만5천명에 비해 2.5배 수준에 이른다. 코로나19 사태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오일쇼크나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프랑스와 영국의 지난달 후반 2주간 실업급여 신청자가 작년 동기 대비 10배가 늘어나는 등 서유럽에서도 고용 빙하기의 조짐이 가시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정점을 지나 진정기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중국도 2억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실업자 폭발은 글로벌 수요 감소와 교역 위축으로 이어져 그 여파가 개방형 수출국인 우리나라에 고스란히 전이된다. 

지금까지 두 단계에 걸쳐 한국 고용시장에 타격을 주었다. 일상 경제활동이 위축된 데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의 영향이 나타난 것이 그 첫 단계였다. 이 과정에서 특히 골목상권과 중소규모 사업체의 고용이 급감했다. 매출이 떨어지자 고용주들이 황급하게 인건비 축소로 대응한 결과다. 

대기업까지 고용 축소에 나선 것이 2단계 파장이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면서 경제적인 충격이 장기화하는 추세에 대기업들도 생존에 위협을 느끼게 된것이다. 연령별로는 20~30대가 실업대란의 직격탄을 맞았다. 40~60대에서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일제히 늘어난 반면 20~30대에서는 일자리 6만개가 사라졌다.

문제는 앞으로 전개될 3단계의 양상이다. 불경기가 더욱 심해져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현실화할 경우 전례 없는 고용대란이 초래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경제는 이미 심각하게 악화했는데 설상가상 코로나가 겹쳤다. 

3월의 구직급여 수급자는 60만8000명에 달했다.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한 1995년 이후 가장 많다. 2008년 금융위기는 물론 1998년 외환위기 당시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반면, 3월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폭은 16년 만에 최저여서 이런 추세라면 고용보험의 기본틀까지 흔들릴 판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자영업자나 특수고용직 종사자, 프리랜서 등은 기댈 데도 없다. 동네식당 주인들과 종업원, 학습지 강사, 화물차 운전사, 건설 일용직 근로자 등이 그들이다. 

실업급여 통계, 빙산의 일각 

지난 3월 고용노동부에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도 19만여 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하루 평균 6000명 이상으로, 대기업 하나가 매일 폐업하는 셈이다. 최근 2개월 동안 휴업·휴직 계획 신고를 한 사업장도 4만606곳에 달했다. 

3월 실업급여 통계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폐업과 종사자들 실업은 반영조차 되지 않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업종별로는 보건복지, 제조, 건설, 도소매 순서로 실업급여 신청이 많았다. 코로나 사태의 충격을 크게 받은 업종의 순서와 비슷하다.

직격탄을 맞은 산업에서 폐업·불황형 실업자가 많이 생겼다. 제조업, 숙박·음식업, 도·소매업, 보건·복지서비스업, 시설관리업 순이다. 연령별로는 40·50대가 가장 많았다. 각각 2만1000명과 2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100조원의 민생·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내놓고 긴급 재난소득 지원안을 내놓고 있지만, 산업 현장이나 생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지난해 세계 29위로 전년보다 11계단이나 추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유연안정성을 노동정책의 근간으로 채택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고용유연성 확보가 일자리 지키기의 핵심이라는 조언이다.

고통분담에 나서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관행은 미국이 한국보다 낮은 실업률을 보이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잘못된 경제정책은 백약이 무효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은 허술하기만 하다. 

정부는 이달부터 고용유지 노력을 기울이는 모든 사업장에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90%에 해당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고용보험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850만명에 달하는 보험 미가입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또 고용안전망 밖에 있는 특수고용직·프리랜서에 대해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지원 대상자 선정·지급 방식 등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럴 바에야 실직위기에 처한 모든 취약계층의 생활을 지원하는 보편적인 고용안전망을 강구하는 게 낫다. 

정부가 내놓는 고용대책은 실업급여나 고용안정지원금 확대 등 하나같이 재정에만 의존하는 것들이다. 잘못된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탈원전 정책만 포기해도 수만 개의 일자리 회복이 가능하다. 

코로나발(發) 쇼크는 어느 분야, 계층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 지원대책은 자영업과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다.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기간산업의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 자체가 민생대책이다. 무차별적 재난지원금은 코로나 직격탄을 입은 기업, 그 근로자, 산업에 비해 급하지 않다. 

정부의 금융·자금 지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돈을 적게 들이고 경제를 살리는 길은 규제개혁뿐이다. 그간 경제단체들이 건의해온 규제혁파 방안을 파격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경제가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한시적 완화여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기업에 대한 정부 정책은 달라져야 한다. 정부는 기업을 죄인 다루듯하는 반기업·친노조 정책을 접고 실패로 확인된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해야 한다. 

노사 고통 분담, 어느 때보다 절실

노사관계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해고를 금지해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한국노총이 보름 전 정부에 ‘해고제한법’ 도입을 제안한 데 이어, 민주노총은 한술 더 떠 정의당·민중당과 공동으로 해고금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두 단체 산하 금속·화학 노동자로 꾸려진 ‘양대노총 제조연대’가 국회에 ‘해고 금지기간 설정’을 압박하고 나섰다.

현행법으로도 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입증되고, 기업의 회피 노력이 선행될 때라야만 가능하다. 매출 감소 등 ‘단순 사유’로는 해고가 불가능하다. 여기서 법·제도적 경직성이 더 강화된다면 긴급한 구조조정이 원천 봉쇄돼 무더기 도산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쌍용자동차가 연초에 해고 노동자를 모두 복직시켰지만 경영위기 심화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노사의 고통 분담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과 유·무급 휴직 등을 통해 비용을 줄이면서 감원을 최소화하고 노동자는 어느 정도 수입 감소와 노동조건 유연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 정규직이 주축인 양대 노총이 고통 분담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 

제주항공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코로나 사태에 직면해 급여 미지급과 운항 중단 등 어려움을 겪는 이스타항공은 당초 전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750명 정리해고 계획을 노사 협의를 거쳐 300여명으로 축소했다고 한다. 감축 규모를 줄이는 대신 급여 조정 등으로 고통을 분담하자는 사측 제의에 노조가 공감한 결과다. 이를 고통 분담 선례로 삼아야 한다. 

기업은 정부의 고용안정책을 적극 활용해 해고를 최대한 피하려 노력하고, 노동계는 단축 근로나 순환제 휴직에 협조하는 등 노사정이 실업 대란을 막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반기업·친노조 정책 하루빨리 접어야

정부는 이제 코로나19발 고용 충격을 최소화하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다지는 대책을 신속히 내놓아야 한다. 

재정·통화 당국이 여력과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돈을 푸는 종합대책을 내놓고 기존 대책의 실효성도 꼼꼼히 점검 보완해야 할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 일자리안정자금 등 직접적 지원책을 더욱 확대함은 물론 어려움을 겪는 기업, 노동자의 현장에 맞춰 심도 있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 

고용대책의 1순위는 ‘일자리 지키기’여야 한다. 사전에 비용을 들여서라도 고용을 유지하는 게 뒤늦게 실업자를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고용유지지원금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유동성 지원으로도 부족하다. 재정으로 다 해결되는 게 아니다. 기업이 자구노력을 할 수 있도록 노사의 고통분담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바로 노동조건 유연화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실업자의 생활안정 대책을 비롯한 사회안전망도 보강해야 한다. 단순히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넘어 이들이 다른 일자리를 준비하거나 사업 재기에 필요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가장 효율적인 것은 기업을 살려 기존 일자리가 증발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경영상 가망 없는 좀비기업 생존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건실한 업체들이 이 난국에 쓰러질 위기라면 서둘러 구제에 나서는 게 맞다. 

고꾸라진 경제심리를 북돋워 기업들을 일자리 지킴이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대기업을 죄인 다루듯 하는 반기업·친노조 정책을 하루빨리 접어야 한다. 소득·성장 다 망친 소득주도성장도 즉각 폐기해야 한다.

중ㆍ장기 대책 신속한 강구를

낡은 규제는 이참에 과감히 떨어내는 게 좋겠다. 한국엔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가 너무 많다. 

주52시간 근로제나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등 핵심 규제를 최소 2년간 풀어달라는 산업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편을 촉진하는 기업활력법(원샷법) 제한대상도 풀고, 대형마트 휴일영업도 허용하는 게 낫다. 

현재 실업자 소득 지원 제도로 고용보험 실업급여가 유일한 현실에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실직자에게 ‘재난실업수당’을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한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한다.

일자리 유지와 실업자 보호는 복지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강화에 매우 중요한 만큼 정부는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고용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중·장기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실업의 공포가 줄어야 노동시장 유연화가 진전될 수 있고, 산업 구조 개편 등 국가경쟁력 강화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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