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압승] ‘폐족’, ‘전국정당’으로 부활…“아직은 절반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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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압승] ‘폐족’, ‘전국정당’으로 부활…“아직은 절반의 성공”
  • 김병묵 기자
  • 승인 2020.04.19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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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탄핵 역풍 뒤 ‘도로호남당’연전연패…안철수 쇼크 때 ‘탈호남’ 전화위복
민주당, 지역주의 타파는 실패…“과반서 입법 실패로 몰락한 우리당 되새겨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열린우리당 때의 아픔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한 말이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거두며 대승했다. 지난 15일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이라는 초유의 결과를 거두기 전까지 민주당계 최대의 성과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3년 9개월 만에 무너지면서 17대 대선, 18대 총선, 19대 총선, 18대 대선에서 패하면서 긴 암흑기를 거쳤다. 이 대표의 말은 이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맥락으로 읽힌다. 열린우리당이 문을 닫은 2007년으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그 후신 더불어민주당이 대승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2007년 8월 18일 열린우리당의 공식 해체 보도 모습. ⓒMBN 뉴스 화면 캡처
지난 2007년 8월 18일 열린우리당의 공식 해체 보도 모습. ⓒMBN 뉴스 화면 캡처

 

실패한 실험, 지역기반 없는 열린우리당 창당


열린우리당의 시작은 지역주의 타파였다. 호남 기반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새천년민주당 내 친노계 등 개혁세력과, 한나라당 내 소위 '독수리 5형제'라고 불리던 김부겸·김영춘·이부영·안영근·이우재, 개혁국민정당에서 유시민·김원웅이 합류해서 2003년 11월 11일 만들어졌다. 

열린우리당은 기성정당들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지만 오히려 이를 발판 삼아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그해 3월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잔류세력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제출해 통과시켰다. 탄핵소추는 강한 역풍을 불러 4월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전성기는 짧았다.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입법을 추진했으나, 당내 분열을 불렀고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동안 자신들을 든든하게 받쳐주던 호남이 등을 돌리자 당은 걷잡을 수 없는 패닉에 빠졌다. 2006년 지방선거에선 광역단체장 중 전북 단 한곳만 건지는 참패를 안았다. 열린우리당은 당을 나간 인사들이 주축이 된 대통합민주신당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합당, 사실상 문을 닫았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의 가치를 이어받지 못했다. 주류였던 친노계는 이 과정에서 와해됐고 다시 호남계가 주를 이뤘다. 정동영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제17대 대선과 제18대 총선을 거치면서 친노계는 공천에서 배제되는 등 침체기를 겪는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자조했을 정도였다. 정가에선 '도로 호남당'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2016년 1월 국민의당 당명을 공개하는 안철수 당시 무소속 의원. ⓒ뉴시스
지난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탈당 뒤 창당하는 국민의당 당명을 공개하는 안철수 당시 무소속 의원. ⓒ뉴시스

 

안철수 쇼크, '탈(脫)호남' 전화위복으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당내 상황은 반전된다. 친노계에 대한 동정론이 퍼지면서 '친노 인사'들이 부활해 다시 전면에 나섰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통합민주당은 '호남'보다는 '노무현'의 브랜드를 앞에 내세우게 됐다. 지역도 넓혔다. 친노계의 안희정과 이광재는 민주당계가 배출한 첫 충남지사, 강원지사다.

전국정당의 씨앗은 뿌려졌지만 통합민주당 앞에 붙은 '호남당' 딱지는 여전했다. 동교동계 원로들을 중심으로 한 당내 정서와 이미지는 쉽사리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친노계 주류는 '부산팀'의 핵심 문재인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대권주자로 내세우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에 반발한 이들은 친노계 내의 비주류였던 호남계 정동영·천정배 등과 김두관·조경태 등 '친노비문' 인사들이었다. 사실상 친문계가 형성된 가운데 호남계는 친문계와 등을 돌린 상태로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2012년 치러진 두 번의 선거(19대 총선, 18대 대선)패배는 민주통합당 내에서 다시금 친노계와 그 중 주류인 친문계의 힘이 빠지는 계기가 된다. 대신 옛 새천년민주당의 비주류 세력이 당권을 잡고, 새정치연합을 준비하던 안철수와 합당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을 구성했다.

안철수의 합류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의 고전은 이어졌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은 다음 대선의 전망도 어둡게 하고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3년 두 번의 재보선, 2014년 슈퍼 재보선 모두 새누리당에 패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2015년 전당대회에서 친문계의 상징 문재인 의원이 호남계의 좌장 박지원 의원을 꺾고 당권을 잡는다. 박 의원의 전당대회 패배와 이어진 탈당은 옛 민주당의 호남계가 모두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천정배·박주선 의원, 박준영 전 전남지사 등이 탈당했다.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꾼 얼마 뒤, 안철수 의원마저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하는 이른바 '안철수 쇼크'가 일어난다. 이때 호남을 기반으로 한 당내 정치인들은 대다수가 분당된 국민의당으로 향했다. 정대철, 권노갑, 이훈평 등 옛 동교동계도 대거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민주당의 탈 호남정당은 이렇게 뜻밖의 시점에 뜻밖의 형태로 이뤄졌다. 민주당은 이제 새천년민주당보다 열린우리당에 더 가까운 색채의 당으로 돌아왔다.

민주당은 제20대 총선에서 '탈호남'의 대가를 치르긴 했다. 분당해 나간 뒤 '호남 정당'을 표방한 국민의당에게 호남을 싹쓸이 하다시피 내준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히려 대구에서 2석, 경남에서 1석, 부산에서 5석 등을 추가하는 등 영남에서 10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1당에 올랐다. 열린우리당이 꿈꿨던 전국정당의 모양새는 여러 사건이 겹치며 부활했다.

지난 17일 해단식에서 발언하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지난 17일 해단식에서 발언하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17년 만의 과반, 우리당 실패 기억하며 남은 숙제 풀어야


민주당은 제21대 총선서 전국정당임을 다시 입증하면서 대승을 거뒀지만, 열린우리당의 숙제였던 지역주의 타파에는 실패했다. 통합당이 영남 방어에 성공하면서 다시 지역 구도가 부활했다.

이와 관련, 여권 정계의 한 핵심관계자는 18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지역주의는 어느 한 정당만 추구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정치권의 노력과 정치환경이 맞아떨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당은 아직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역 기반이 없다는 건 언제든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과도 같다. 과거 열린우리당이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졌다"면서 "이(해찬) 대표의 말도 그런 맥락인 것 같다. 과반을 넘게 점유한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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