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고려와 조선의 건국세력의 분열과 황교안의 몰락
[역사로 보는 정치] 고려와 조선의 건국세력의 분열과 황교안의 몰락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04.19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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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사리사욕이 참패…희귀한 연구과제로 삼을 만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혁명동지들이 정적으로 바뀌는 역사는 고려와 조선의 건국세력에서 볼 수 있지만, 혁명도 성공하지 않았는데도 정적제거를 우선 과제로 삼은 황교안 전 대표 세력의 정치적 무능이 만든 참사가 2020년 4·15 총선이 아닐까 싶다. 사진제공=뉴시스
혁명동지들이 정적으로 바뀌는 역사는 고려와 조선의 건국세력에서 볼 수 있지만, 혁명도 성공하지 않았는데도 정적제거를 우선 과제로 삼은 황교안 전 대표 세력의 정치적 무능이 만든 참사가 2020년 4·15 총선이 아닐까 싶다. 사진제공=뉴시스

역사 속의 건국 세력은 통합으로 한 시대를 열고, 분열로 몰락을 자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민족 사상 실질적인 최초의 통일시대를 개막한 고려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했지만 대동강 이남만 차지한 불완전한 통일이었고,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한 발해가 존재했기에 남북국시대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왕건의 고려는 중북부의 호족세력과 신라 6두품 지식인 그룹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나라였다. 이들은 골품제의 모순과 진골 귀족 간의 치열한 왕위 쟁탈전으로 천년 제국의 명성을 뒤로한 채 망국의 길을 걷던 신라를 대신할 새로운 국가 건설에 나섰다.

물론 견훤의 후백제도 존재했지만 막강한 군사력만 믿고 민심을 외면했기에 삼한통일의 주인공이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울러 견훤은 신라 침공 시 경애왕을 모욕해 자진시키고, 왕후를 능욕했다는 야사를 남길 정도로 악명을 떨쳤다. 경순왕이 후백제 대신 고려에 나라를 바친 연유도 여기에 있다.

마침내 삼한통일의 위업을 성취한 고려는 건국 세력 간의 암투로 대혼란에 빠진다. 태조 왕건이 왕권 강화를 위해 호족들과의 중첩된 혼인 정책으로 외척을 양산한 탓에 왕위 계승을 노린 세력 간의 갈등이 초래한 반란이 잇달았다. 왕규의 난이 대표적이다.

왕건을 계승한 혜종도 즉위 2년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혜종이 병사했는지 암살을 당했는지는 아직도 풀어지지 않은 역사의 수수께끼다. 혜종의 뒤를 이은 경종도 호족 간의 권력 다툼 속에 즉위했다. 경종은 왕건의 의형제이자 유훈인 ‘훈요십조’를 직접 받은 건국 일등공신 박술희를 제거하며 즉위한 야심이 넘치는 제왕이었지만 건국 세력 간의 정쟁 속에 재위 4년 만에 급사했다. 

왕건 사후의 혼란은 광종이 겨우 진압했지만 외척 간의 연합세력은 중첩된 혼인관계로 더욱 강화됐고, 이들은 문벌귀족으로 진화돼 후일 금에 대한 사대정책으로 대표되는 이자겸과 김부식 세력의 득세와 무신 정변 발생의 원인이 됐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태조 이성계는 자신을 따르는 신흥무인과 정도전의 혁명파 신진사대부의 지지로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다. 조선의 건국 세력은 475년 역사를 가진 고려를 대신할 새나라 조선을 만들었지만, 그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고려의 권문세력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태조 이성계의 후사를 놓고 정쟁에 몰두했다. 정도전은 태조의 총애를 받는 신덕왕후 강씨의 자식인 방석을 세자로 만들었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 세력의 역습인 제1차 왕자의 난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방원은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잔존하는 반대 세력을 제거했고,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태종의 세력들도 후일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훈구파의 일당 독재가 펼쳐졌고, 희대의 폭군 연산시대를 초래했다.

4·15 총선이 보수 야권의 참패로 끝났다. 보수 야권이 개헌저지선을 겨우 넘는 수준의 참담한 성적표를 받은 사례는 1948년 건국 이래 첫 번째 비극이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의 영광을 이룩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역사를 가진 보수 정치권의 궤멸에 가까운 참패는 오만과 무능이 낳은 치욕의 역사다. 

독립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의 토대를 만든 보수 정치권이 정권 탈환이라는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적전분열로 국민의 선택을 기대했다는 자체가 오만의 극치다. 보수 세력이 그토록 경멸했던 마오쩌둥과 김일성은 건국 이후 정적제거에 나섰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김형오 공관위원장은 선거도 치르기 전인 공천과정에서 정적 제거에 나섰다. 이번 총선은 오만과 사리사욕이 참패를 부른 정치사상 희귀한 연구과제로 삼을 만하다.

혁명동지들이 정적으로 바뀌는 역사는 고려와 조선의 건국세력에서 볼 수 있지만, 혁명도 성공하지 않았는데도 정적제거를 우선 과제로 삼은 황교안 전 대표 세력의 정치적 무능이 만든 참사가 2020년 4·15 총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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