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 챙기는 충청 민심 이회창 비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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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 챙기는 충청 민심 이회창 비껴갔다.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10.30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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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 재보선 성적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 총재는 10·28 재보선을 충북 교두보를 마련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당력을 집중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충북 증평-괴산-진천-음성 보궐선거에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한 정원헌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4.4%다. 이 지역 당선자인 민주당 정범구 후보의 득표율 41.9%였다.

이 총재는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지난 달 29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번 선거는) 5개 지역에서 치러진 것일 뿐 정당의 운명을 가르거나 정국을 좌우하는 선거는 아니다”며 “국민의 신임이 한쪽 정당에 부여된 것처럼 갖다 붙이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이 발언은 재보선 결과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며 개의치 않겠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당내 입지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당직자들이 4.28 재보선 개표 방송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 뉴시스


이 총재가 충북 보궐선거에 건 기대는 대단했다. 그는 10·28 재보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첫 주말 내내 선거구 4개 군을 두루 찾아 정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 총재는 충청지역의 최대 이슈인 세종시 문제를 거론하며 선거전을 자유선진당 대 한나라당 구도로 몰라가려고 시도했다.

선거전 초기인 지난 달 18일 충북 괴산읍 재래시장 앞에서 “이명박 정부가 법률까지 만들어 놓은 세종시와 혁신도시(진천-음성)까지 뒤집으려 한다”며 “충북 중부4군의 거점이 될 세종시 건설은 계획대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세종시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려 한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킨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건설 축소 문제에 대해 충청도민들이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고 선거의 의미를 규정하려 했다.
 
“충청민을 우롱하는 정부를 우리 손으로 막아야 하는 것이 28일 선거”라고 말할 정도로 지역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려고까지 했다.
 
자유선진당 당력 총동원하고도 충북에서 참패

이 총재 말고도 이용희 상임고문과 이재선, 이흥주 최고위원, 김낙성 사무총장, 권선택 원내대표, 김용구 의원 등 당 수뇌부가 총출동해 정 후보를 지원했다. 증평-진천-괴산-음성에서의 선거결과가 자유선진당에 어느 정도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한나라당 후보를 낙선시킨다는 이 총재의 의도는 달성됐다. 중요한 건 자유선진당의 반 한나라당 선거 전략이 민주당 후보의 당선으로 결론 났다는 점이다.
경대수 후보가 예상보다 큰 표차로 패하자 한나라당에서는 “우려했던 세종시 문제가 결국 막판에 승부를 갈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도 승인을 세종시 문제에서 찾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득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종시를 많이 활용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초 한나라당은 선거구가 세종시와 멀리 떨어져 있어 선거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알파’ 발언으로 세종시 문제가 부각됐고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세종시가 변경되면 진천-음성에 예정돼 있는 혁신도시도 변경될 것이라며 유권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세종시 문제 민주당에게 해결 맡긴 듯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모두 세종시의 원안 관철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음에도 표심은 민주당을 향했다. 후보자 인물 본위로 선거가 치러졌다고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의 득표율 격차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충북에서 자유선진당이 극도로 부진한 모습의 원인은 충청의 ‘실리적 지역주의’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패권주의적 영남 지역주의, 그 반작용인 호남 지역주의에 비해 충청 지역주의는 일관된 특성이 없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영호남 지역주의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권이 아쉬울 때마다 충청권을 끌어안으려는 반복된 시도를 하는 것도 충청권이 실리를 좇아 표심을 변화시켜왔기 때문이다.

지역 맹주를 따라 지역구도가 형성된 1987년 대선에서 충청의 맹주를 자임한 김종필 전 총리가 대전·충남에서 얻은 득표율은 45%로 전국 평균 득표율 8.1%의 6배 가까운 수치였다.
 
그러나 충북에서는 13.5%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얻은 46.9%에 훨씬 못 미쳤으며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의 28.2%보다도 뒤졌다. 대전·충남에서만 약한 형태의 충청 지역주의가 발현했다고 볼 수 있다.

1995년의 지방선거와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은 영호남과 다를 바 없는 충청 지역주의가 유일하게 맹위를 떨친 선거였다.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얼마 전인 1995년 초 김 전 총리가 민주자유당 내에서 쇄신의 대상으로 몰려 탈당한 뒤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 충북 지역 재보선에서 참패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충북 교두보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 시사오늘 권희정

 
이 때 민자당 김윤환 의원은 “충청도 사람이 당을 새로 만든다는데 충청도 사람들이 핫바지냐”며 대놓고 김 전 총리를 비난했다.

‘핫바지론’이 충청권을 달구면서 자민련은 대전, 충남은 물론 충북까지 석권했다. 바로 다음해 총선에서 자민련의 전국 득표율은 16.2%에 불과했지만 충청권에서 46.9%를 기록했다. 충남에 비해 지역색이 약한 충북에서도 39.4%를 득표해 31.5%를 얻은 신한국당을 앞질렀다.
 
1997년 대선 이후 실리 따라 표심이동 뚜렷해져

1997년 대선부터 충청의 표심은 지역에 얼마만한 이익을 갖다주느냐를 기준으로 움직였다. 그 해 대선에서 DJP연대를 성사시킨 김대중 후보는 직전 대선보다 20%이상 표를 더 얻었다. 여당이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모두 충청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2002년 대선에서는 신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을 내건 노무현 후보에게 충청권은 과반의 지지를 보냈다. 노 후보는 경남 출신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세종시 원안 추진을 약속한 이명박 후보에게 표가 몰렸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후보는 고향인 충남에서만 이명박 후보에게 앞섰을 뿐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정치학)는 충청 지역주의에 대해 “영호남 지역주의에 비해 이념성이 약하고 실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구체적인 경제적 실리에 바탕한 새로운 형태의 지역주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번 4·28재보선 증평-괴산-진천-음성 선거에서 민주당 정범구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된 것 역시 유권자가 세종시와 혁신도시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당으로 자유선진당보다 민주당을 택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듯하다.
 
심대평 의원 탈당 후 지역 구심점 더욱 약화

세종시와 혁신도시 문제가 지역 현안이기도 하지만 해법은 중앙정치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에 대전·충남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유선진당에 기대를 걸 수 없다는 표심이 작용했다고 분석된다.

더군다나 자유선진당은 김 전 총리 이후 충청권 대표 정치인으로 인식돼 온 심대평 의원이  탈당하면서 충청권 표를 결집시킬 구심점도 약화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유선진당이 세종시 쟁점을 선점하면서 충청권에서 몰표를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이번 재보선 결과를 볼 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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