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부겸·김영춘 ‘대망론’이 허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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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부겸·김영춘 ‘대망론’이 허망한 이유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5.01 08: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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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일꾼론’ 박재호·전재수 vs ‘지역주의 대망론’ 김영춘·김부겸
김부겸·김영춘 대망론…“지역주의 극복해 국민통합 대통령 되겠다”
국민통합 책임 방기하는 정부여당…반지역주의 구호 허망해져
‘지역주의 마케팅’에 심취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갈등을 극복하면 영웅이 되지만, 갈등을 악용하면 모리배가 된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이번 4·15 총선에서 영남 지역에 도전했던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김영춘과 김부겸은 ‘대망론’을, 전재수와 박재호는 ‘지역일꾼론’을 꺼내들었다. ⓒ뉴시스
이번 4·15 총선에서 영남 지역에 도전했던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김영춘과 김부겸은 ‘대망론’을, 전재수와 박재호는 ‘지역일꾼론’을 꺼내들었다. ⓒ뉴시스

영웅은 난세에 두각을 나타낸다고 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난세의 흐름을 잘 이용한 자만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4·15 총선에서 영남 지역에 도전했지만 낙선한 더불어민주당 후보 두 명은 ‘대망론’을 꺼내들었다. 진보 정당의 험지인 영남에서 지역주의를 이겨내고 승리하면 정치권력 최고의 지점인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 즉 ‘영웅 서사’를 쫓아서다. 

 

김부겸·김영춘은 왜 대망론을 꺼냈나?


서로를 ‘생사고락을 함께한 정치적 동지’라고 부르는 김부겸(대구 수성갑)과 김영춘(부산 진구갑) 후보도 이 난세의 기류에 올라타려고 했다. 

둘은 각각 대구와 부산이라는 험지에서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자신이 대선주자급의 거물임을 홍보하려는 정략적 의도도 깔려있었겠지만, 故노무현 대통령처럼 지역주의라는 장애물을 이겨내는 순간 그 성공의 흐름이 자신을 대권 가도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도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던 김부겸과 김영춘은 노 대통령과 함께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는 파격적인 길을 걸었다. 이들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 정책정당 건설에 온몸을 던지겠다”는 말과 함께 가시밭길을 택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 이후에도 둘은 계속해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싸웠다. 19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의 재선 의원이던 김영춘은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에 출사표를 던졌고, 비록 낙선했지만 20대 총선에 재도전해 당선됐다. 같은 시기 경기 군포의 3선 의원이던 김부겸도 4선의 유혹을 등지고 대구로 달려갔다. 마찬가지로 낙선했지만 그의 도전은 대구시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20대 총선에선 결국 승리해 ‘소선거구제(1988) 이후 진보정당사 최초의 대구 당선인’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얻었다.

17년 넘게 편한 길을 마다하고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와 맞서 싸웠던 두 사람. 그러나 자격 충만한 그들의 대망론은 왜 허망한 실패를 맞이했을까?

 

‘反지역주의’의 꽃말은 국민통합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이들이 왜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는 보통 당사자가 선택 불가능한 조건인 출생지를 근거로 삼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행위다. 이미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를 또 다시 영남권과 호남권, 강원권과 충청권 등으로 나눠 사람을 차별하게끔 종용한다. 열린우리당이 말했던 지역주의 타파는 이러한 분열을 극복하자는 ‘국민통합 운동’의 일환이었다.

한국에는 봉합 수술을 요하는 갈등들이 산적해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된 지역 갈등을 포함해 분단국가라는 뿌리에서부터 시작된 이념적 갈등, 고속 경제 성장으로 분화된 세대 갈등, 2016년 강남역 사건을 기점으로 불거진 성별 갈등이 그 예다. 갈등만을 조장하는 사회는 종국엔 분열로 치닫는다. 이 시점에서 국민통합은 정치 지도자의 최우선 덕목으로 꼽힌다.

반면 친여세력의 행보는 어땠나. 더 나아가 정부여당에게 과연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통합적 사고’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 드는 시점이다. 

 

국민분열 정국 속 공허해진 ‘지역주의 타파’ 구호 


국민분열 정국 속에서 김영춘과 김부겸의 ‘지역주의 타파’ 구호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지역감정보다 더 심각한 갈등을 방치하고 있는 정부여당에 침묵하면서 어떻게 ‘국민통합 대통령’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김영춘 캠프
국민분열 정국 속에서 김영춘과 김부겸의 ‘지역주의 타파’ 구호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지역감정보다 더 심각한 갈등을 방치하고 있는 정부여당에 침묵하면서 어떻게 ‘국민통합 대통령’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김영춘 캠프

이들에게 갈등은 ‘치료의 대상’보다는 ‘요리의 재료’에 가까웠다. 갈등이 심화되면 바로 봉합하려들지 않고 도리어 가열시켜 끓어 넘치게 만들었다. 

‘조국 사태’을 기점으로 전국이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이분됐지만, 친여세력은 지지자를 자극시켜 정부여당을 옹호하는 ‘데모’에 참여시켰다. 이러한 책임 방기는 결국 ‘조국 홍위병’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상 초유의 기형적 관제위성정당, 열린민주당의 원내 진입을 불러왔다.

여당 싱크탱크이자 ‘대통령의 복심’이 원장직에 있는 민주연구원은 한일갈등을 “총선에 긍정적”인 요소로 해석했고, 민주당 후보의 캠프에선 “코로나 확산 핑계로 부모님 세대를 투표장에 못 가게 하자”는 지령이 나왔다. 어떻게 하면 현존하는 갈등을 권력 유지에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몰두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춘과 김부겸의 ‘지역주의 타파’ 구호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지역감정보다 더 심각한 갈등을 방치하고 때론 부추기는 정부여당에 침묵하면서, 어떻게 ‘국민통합 대통령’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그들의 대망론은 이 지점에서 실효성 없는 공약마치 공허했을 뿐이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영남 주자 두 사람이 진정 국민통합 대통령을 꿈꾼다면, 갈등의 현주소를 살펴봐야 했다. 이념·성별·계급 등 유리한 갈등은 악용하거나 외면하고, 단 하나의 갈등만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선 무책임한 일이다. ⓒ뉴시스
민주당의 대표적인 영남 주자 두 사람이 진정 국민통합 대통령을 꿈꾼다면, 갈등의 현주소를 살펴봐야 했다. 이념·성별·계급 등 유리한 갈등은 악용하거나 외면하고, 단 하나의 갈등만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선 무책임한 일이다. ⓒ뉴시스

어려움 속에서도 영남에서 당선된 7명의 당선자를 보면 답은 나온다. 

울산 지역 민주당 유일 당선자, 이상헌(울산 북구) 후보는 ‘지역 일꾼론’을 내세웠다. 부산에서 당선된 전재수(북구 강서구갑), 최인호(사하구갑), 박재호(부산 남구을) 후보도 중앙 정치에 대한 언급을 줄이고 ‘지역 맞춤형 일꾼’을 강조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역주의 극복’을 마케팅 삼아 대권을 잡겠다는 이는 떨어지고, 지역 일꾼에 머물겠다는 인물은 당선됐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선된 두 의원은 반성 없이 다시 대망론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영춘 의원은 지난 2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부겸 의원이 영남권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당권을 잡아달라고 공개 제안했다. 김부겸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 25일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다녀온 직후 “영남에 똬리를 튼 보수 일당 체제를 깨기 위해 다시 싸우겠다”고 했다. 

요컨대 본인들의 패인(敗因)을 오로지 ‘지역주의’에 뒀을 뿐, 왜 지역주의라는 망령이 4년 만에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는지에 대한 통찰은 전무했다. 갈등은 갈등이 있을 때 득세한다.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다. 시절이 평화로웠다면 지역주의도 침잠했을 터다. 

지난달 본지와 만난 한 정치 원로는 한국 정치사회를 두고 “과거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모리배들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이념을 악용하는 모리배로 가득 차 있다”며 혀를 찼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영남 주자 두 사람이 진정 국민통합 대통령을 꿈꾼다면, 갈등의 현주소를 살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이념·성별·계급 등 유리한 갈등은 악용하거나 외면하고, 단 하나의 갈등만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선 무책임한 일이다. 난세를 극복하면 영웅이 되지만, 난세를 악용하는 자는 모리배가 될 뿐이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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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준 2020-05-01 21:49:09
무슨 소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