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신문 보기] YS 세대교체론과 김종인 40대 경제기수론, 진상은?…언론의 레토릭
[옛날신문 보기] YS 세대교체론과 김종인 40대 경제기수론, 진상은?…언론의 레토릭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5.09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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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6월, YS發 세대교체론의 향방…언론, '이인제 대망론'을 만들다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 발언 배경은?…YS "이인제 지칭 아냐"
김종인發 '40대 경제기수론' 경계해야 하는 이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시사오늘〉은 옛날 신문들을 통해 95년 6월 YS의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 발언으로 97년 대선까지 ‘세대교체론’ 열풍이 분 것을 반추해 봤다. 조사 결과, 언론들이 YS의 발언을 자의로 해석해 이인제 경기지사를 ‘YS 후계자’로 내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사오늘 김유종
〈시사오늘〉은 옛날 신문들을 통해 95년 6월 YS의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 발언으로 97년 대선까지 ‘세대교체론’ 열풍이 분 것을 반추해 봤다. 조사 결과, 언론들이 YS의 발언을 자의로 해석해 이인제 경기지사를 ‘YS 후계자’로 내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사오늘 김유종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두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의 ‘40대 경제기수론’ 발언이 연일 화제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통합당 총선 참패 이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 시효는 끝났다”면서 “가급적 70년대생 가운데 경제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이 후보로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40대 경제전문가 대선후보론’을 주장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특정 인물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지만, 언론들은 일제히 김세연·홍정욱 전 의원을 집중 조명했다. 이에 주식시장에선 이들과 관련된 테마주 주가가 뛰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의 발언과 그 파급효과는 1995년 6월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 발언으로 97년 대선까지 ‘세대교체론’ 열풍이 분 것을 연상케 한다. 95년경 대부분의 언론들은 YS의 세대교체 발언을 자의로 해석해 이인제 경기지사를 ‘YS 후계자’로 내세웠다. 당시 경기지사에 출마한 재선 의원에 불과했던 이 지사는 이를 계기로 대선주자 급으로 성장했다. 

일각에선 김 전 위원장이 YS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2년 뒤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세대교체를 연상시키는 통상적인 발언만 흘려주면, 언론이 ‘레토릭(정치적 수사법)’으로 보수 진영의 인물을 점찍어 키워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1995.06.19. 美주간지 〈타임〉, YS와의 인터뷰 발매


YS와의 특별인터뷰가 커버스토리로 실린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9일 발매됐다. 여기에 실린 YS의 “차기 대선에서 ‘새 세대’ 출신의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발언은 이후 정국을 레토릭 대결로 몰아갔다. ⓒ타임지 홈페이지
YS와의 특별인터뷰가 커버스토리로 실린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9일 발매됐다. 여기에 실린 YS의 “차기 대선에서 ‘새 세대’ 출신의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발언은 이후 정국을 레토릭 대결로 몰아갔다. ⓒ타임지 홈페이지

YS와의 특별인터뷰가 커버스토리로 실린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9일 발매됐다. 

해당 기사에는 △본인의 주요 업적 △지지율 하락 △지방선거 실시 및 지방자치제 부활 △DJ의 내각제 개헌론 반대 △국가보안법의 필요성 △남북정상회담 재론 등 정치사회 각 분야에 대한 YS의 지론이 담겼지만, 한국에선 단 한 단락이 화제에 올랐다. 

“나의 임기가 끝날 때가 되면 90%이상의 국민이 정계의 세대교체를 원할 것으로 확신한다. 차기 대선에서 ‘새 세대’ 출신의 후보가 당선될 것임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95.06.20.~95.06.26. 국내 언론, YS 발언 배경 집중 조명 


1995년 6월 20일 경향신문. ⓒ네이버 라이브러리
1995년 6월 20일 경향신문. ⓒ네이버 라이브러리

YS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날부터 모든 신문사의 1면을 장식했다. 20일자 신문엔 ‘YS의 세대교체론’을 주제로 한 기사가 대거 실렸다. 

언론들은 일제히 세대교체론의 배경에 주목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계산된 타이밍(조선일보)”, “내각제 움직임 제동(동아일보)”, “DJP 바람 차단 겨냥(경향신문)” 등의 표현을 사용했는데, YS의 발언을 야권의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JP(김종필 자민련 총재) 견제로 풀이한 것이다. 

이때까진 특정 인물은 거론되지 않았으며, YS와 DJ, JP의 ‘힘겨루기’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3金 구도-내각제 움직임 제동

김영삼 대통령이 19일 발간된 미 타임지회견에서 세대교체론과 내각제 개헌 불가 입장을 거듭 천명한 것은 지방선거과정에서 사실상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충청권 분할을 시도하고 있는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략) 지방선거과정에서 김 이사장이 정계한복판으로 진입하고 김종필 씨가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는 등 정국은 신(新)3김 구도가 형성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김 대통령은 제동을 걸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세대교체론과 대통령 직선제 고수입장을 확실하게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김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지방선거에서 예상되는 지역분할주의 흐름을 반전시키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6월 20일자 〈동아일보〉 기사
 

〈조선일보〉는 한발 더 나아가 “어조나 표현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고 확신에 찼다”면서 “임기 중반에 접어든 그의 후계자관이 이미 정립돼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고 추론하고 있다. 21일자 사설에선 세대교체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며 정치 원로들을 향한 ‘용퇴론’을 시사한다.


97대선, 새 세대 선출될 것…「후계자觀 정립 시사」 눈길

(중략) 그의 주장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어조나 표현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고 확신에 찬 것이어서, 임기 중반에 접어든 그의 후계자관이 이미 정립돼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물론 김 대통령은 어떤 인물이 새 세대에 해당되거나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인지에 관해서는 더 이상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6월 20일자 〈조선일보〉 기사
 

김 대통령의 세대교체론

김영삼 대통령의 세대교체론은 정치적으로 계산된 그 타이밍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 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것으로 본다. 지난 50여년간 권력의 정체현상을 보고 살아왔던 한국인들은 정치면에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세대적 진화에 목말라왔기 때문이다. (중략) 물론 그것은 김대통령의 처음 발언은 아니며 전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얘기는 했었다. 그러나 이번의 언급은 그 의지의 강도에 있어, 그것의 시기적 적절성에 있어 신선감과 함께 진전된 느낌을 주고 있다.

(중략)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이제 김 대통령을 비롯한 원로 세대들이 차세대의 등장을 방해 내지 방관하지 말고 오히려 북돋아 주고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의 원로들이 권위주의적으로 군림하는 한, 우리의 차세대는 결코 그 벽을 뚫거나 넘을 수 없었던 것이 우리 정치의 고질적 환경이었다는 것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6월 21일자 〈조선일보〉 사설
 

 

95.06.27. 제1회 지방선거…지역주의 기세 속 세대교체론 ‘무용’


95년 6월 28일 조선일보 지면. ⓒ조선일보 DB
95년 6월 28일 조선일보 지면. 제1회 지방선거 선거운동 과정에서 일부 후보들이 지역감정을 자극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문민정부가 도입한 첫 전국동시 지방선거로 인해 광역자치단체장 및 기초자치단체장들은 주민들의 투표로 뽑힌 지역의 수장이 됐다. 한 마디로 ‘지방일꾼’들이 중앙무대만큼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95년 지방선거는 ‘DJ의 지역등권론’과 ‘JP의 충청핫바지론’으로 인해 세대교체론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DJ는 전국 강연을 다니면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설파했다. 

“그동안 우리는 TK, PK가 국정의 혜택과 권리를 독점하는 지역패권주의 속에 살아왔으나, 이번 지방선거로 지역등권주의, 즉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으로 대등한 권리를 가진 지방화시대로 가고 있다.” (5월 27일 여수강연)

“등권주의란 특정 지역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과 똑같이 나눠 갖자는 것이다. 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동안의 권력 독점을 내놓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5월 39일 인천강연)

JP 역시 충청 사람들의 지역감정을 자극하며 YS 정권 심판을 주장했다. 

“경상도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들을 ‘핫바지’라고 한다. 아무렇게나 대접해도 소견도 없고, 오기도 없어 그런 거다. 2년 반 동안 우리를 괴롭힌 김영삼(YS) 정권을 혼내주는 게 우리의 선택이다.” (6월 13일 충남 아산 유세)

이들의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 YS의 민자당은 PK(부산·경남)를 석권했고, DJ의 민주당은 호남, JP의 자민련은 충청, 신군부 출신 무소속은 TK(대구·경북) 지역을 차지했다.

결국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는 인물론 없이 YS 대 DJ·JP, 즉 ‘세대교체론 대 지역분할론’으로 대결로 변질됐고, 철저히 지역주의의 승리로 끝났다. 이에 대해 AP통신 역시 “이번 선거의 승자는 지역주의고 패자는 김영삼 정권이다”라는 평을 남겼다. 

국내 언론들도 입을 모아 ‘지역주의 기승’으로 인한 ‘3김 정치 부활’을 비판했다. 이때 〈한겨레〉는 YS의 세대교체론이 정치권에 새로운 형태이자 변수로 등장할 것이라는 추측을 제기했는데, 이 의견은 후에 실체화된다.

정쟁구태속 새 선거문화 가능성-6 27선거가 남긴 것

(중략) 부정적인 측면은 주로 정치권에서 나타났다. 

정당 지도자들이 앞장서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고, 지역일꾼을 뽑아야 할 지방선거가 대권경쟁의 전초전처럼 변질돼 버렸다. 지역등권론, 세대교체론, 핫바지론등이 대표적이다. 정책이나 인물보다 당수를 보고 표를 던지도록 인위적으로 유도한 것이다. 정당간의 흑색비방 성명전도 여전했다.

-6월 28일자 〈조선일보〉 기사

6·27 민심 95 지방선거 결산

(중략) 김영삼 대통령은 애초 김종필 총재를 퇴진시켜 3김 시대의 종식을 꾀했으나 오히려 이번 선거로 '신 3김 시대'가 도래했다. 3김의 역학관계에서 본다면 김대중 이사장과 김 총재의 'YS 포위' 공격이 성공을 거둔 형국이다. (중략) 그렇지만 이런 선거 결과는 선거전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닥친 지역주의 바람의 영향이 크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중략) 이번 선거의 쟁점 사항이었던 내각제 개헌론, 세대교체론은 앞으로 차원을 달리하면서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6월 28일자 〈한겨레〉 기사

 

95.10.09. YS, 日 인터뷰서 “깜짝 놀랄 세대교체” 발언


10월 9일, YS는 그의 세대교체론에 쐐기를 박는다. 그는 이날 〈일본경제신문(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와 관련해 입을 열었다.

“국민이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를 내세워 승리할 것이다. 차기 대선 후보는 도덕적이고 진지해야 하며, 남북대립의 가운데서 강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해당 신문은 3면 인터뷰 해설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사족을 덧붙였다. 

‘이인제 경기도지사는 김 대통령의 측근중의 측근이며 법조인출신으로, 지사가 되기 전 국회의원으로서 높이 평가받는 등 김 대통령이 소장파 중에서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다.’

YS의 발언과 일본 언론의 사담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정국을 ‘YS 후계자 찾기’라는 소용돌이 속에 집어넣게 된다. 또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속했던 이인제 지사를 대선 후보로 성장시키고, 그의 정치적 욕망을 부추기는 계기가 된다. 

 

95.10.10.~97.12.17. “YS 후계자 찾아라”…이인제 ‘주목’


95년 10월 11일자 한겨레 지면. YS 후계론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네이버 라이브러리
95년 10월 11일자 한겨레 지면. YS 후계론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네이버 라이브러리

정치권에서는 ‘YS가 이미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후계구도를 가다듬고 있다’, ‘YS가 집권당 대선 후보 선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 한다’, ‘세대교체론으로 DJ를 완전히 몰아내려 한다’는 등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DJ의 신당, 새정치국민회의를 비롯한 야3당은 일제히 펄쩍 뛰었다. 

“경선을 통해 결정할 일을 대통령이 나서서 후보를 지명하거나 나이 운운해서는 ‘1인 독재정당’밖에 더 되겠는가. 대통령은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야지, 눈만 뜨면 ‘깜짝 놀랄 일’만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깜짝 놀랄 일은 ‘삼풍사건(삼풍백화점 사건)’으로 끝냈으면 좋겠다.” (국민회의 박지원 대변인, 95년 10월 11일.)

“김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세대교체를 말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이 되지못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국민회의 김옥두 의원, 같은 날.)

“세대교체를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세대교체를 떠들어 오히려 지역할거세력들을 도와주고 있다.” (김원기 상임고문)

“이 시기에 느닷없이 이런 발언을 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는지 저의가 의심스럽다. 대통령후보를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결정하려 한다면 그야말로 전제군주식 발언이다.” (민주당 이규택 대변인)

“YS가 그동안 개혁과 사정을 떠들었지만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깜짝쇼로 끝났고 이번 문제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나. ‘깜짝 놀랄 세대교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오만과 독선, 자가당착과 한심한 의식에서 나왔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민련 안성열 대변인)

언론들도 앞다투어 ‘여권잠룡’ 기사를 써냈다. 일본 언론에 거론된 이인제 경기도지사를 중심으로 한 4~5명의 정치인이 떠올랐으며, 순수 외부 영입인사의 가능성도 점쳐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이 지사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의 거취에 주목했다.  

김 대통령 발언 파문…놀랄만한 후보 누구인가

(중략) 특히 주례 보고로 김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정확히 읽고 있을 김윤환 대표가 마침 9일, 자신은 대권에 뜻이 없다면서 당내에서 거론되는 인물이 아닌 이라고 발언한 것은 다분히 김 대통령과의 교감 아래, 차기 후보에 뜻을 둔 당내 중진들을 향해 나도 아니고 당신들도 아닌 것 같다 는 신호를 보낸 것 아니냐는 느낌도 준다.

(중략) 청와대 안에서도 제한된 범위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전부터 김 대통령은 벌써 취임 당시부터 후계 문제에 관한 구상을 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이며 예비 후보군까지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는 이야기가 은밀히 거론돼 왔다. 그 후보군 속에는 이를테면 닛케이 신문이 거명한 이인제(46) 경기지사를 비롯, 현 정부 초기에 국무위원급으로 임명됐다가 재산공개로 물러난 K씨나, 현역의 K의원 등이 들어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런 은밀한 논의가 실제 김 대통령의 의중과 일치하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10월 11일자 〈조선일보〉 기사

"할말 없다" 김윤환 이한동 최형우 '서울 탈출'

민자당은 김영삼 대통령의 세대교체 천명에 매우 놀라워 하는 분위기다. 여느때보다 구체성을 띠고 있는 후계관련 발언에 담긴 '속뜻'을 가늠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김 대통령의 발언에 민감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당내 실세중진들은 애써 말을 아끼면서도 애가 타는 표정들이다. 

(중략) 주인공 자격이 상실되는 김윤환 대표위원, 이한동 국회부의장, 최형우 의원은 한결 같이 묵묵부답이다. (중략) 3인은 10일 약속이나 한 듯 서울을 떠나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버렸다. (중략) 양김 및 당내 중진을 동시 견제하려는 양수겸장의 발언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깜짝 놀랄만한 세대교체'의 유력한 주인공으로 꼽히는 이인제 경기지사가 이 같은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게 흥미롭다. 이 지사는 "양김을 겨냥한 것이면서 동시에 중진을 견제하는 의미도 담겨 있을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10월 11일자 〈경향신문〉 기사 
 

특히 〈중앙일보〉는 ‘대권’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YS 발언의 주인공을 찾는 내용의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이들은 YS 후계자 찾기를 ‘보물찾기’로 묘사하며 조건 미달의 후보자를 하나씩 추려갔다. 

기사에선 “김윤환·최형우·이한동·이홍구·이회창은 60이 넘어 탈락”이자 “김덕룡은 호남 출신이라 여당 후보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후보군을 좁혀 갔다. 말미에는 영남 출신의 강삼재 사무총장과 충청·경기 기반의 이인제 지사만 남았지만, ‘페이스 메이커’의 가능성도 시사하며 끝맺었다. 

[대권] 1. 깜짝후보 누구인가

사실 깜짝 놀랄 젊은 후보는 일단 60대를 배제한다. 민자당 내에서 지금까지 후보로 거론됐던 이는 모두가 60대다. 김윤환(金潤煥) 대표가 63세다. 최형우(崔炯佑), 이한동(李漢東)의원이 모두 60세다. 이홍구(李洪九)총리, 이회창(李會昌)전 총리도 환갑이 지났다. 일단 그들은 김 대통령이 생각하는 차기후보가 아닌 셈이다. 결국 40,50대다. 

이인제 지사는 올해 47세다. 민주계인 그는 김 대통령이 남달리 아껴 왔다. 그가 후계자군중 한 명이라는 소문은 벌써부터 있어 왔다. 특히 김 대통령은 선거를 치러본 사람을 선호한다. 그 점에서도 이 지사는 조건을 충족시킨다. 민자당이 대패한 지난 지방선거에서 그는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이 지사는 충남논산 출신이다. 지역적 배경은 경기다. 과연 비호남지역표를 묶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진짜후보」가 아닐 수도 있다.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뛰면서 상대를 혼란케하는 주자를 말한다. 진짜는 뒤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김덕룡(金德龍)의원도 거론된다. 그의 나이 54세다. 요즘도 그는 대통령의 남다른 애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뭐래도 대통령의 분신이다. 「개혁을 이어 갈」 인물이기도 하다. 김 대통령은 특히 그 점을 중시한다. 누차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호남 출신이다. 여당 후보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더욱이 그는 「놀랄만한」후보가 아니다.

(중략)외부영입도 배제할 수 없다. 40,50대의 당외 인물이 누구냐는 대통령 자신밖에는 누구도 점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윤환 대표도 외부영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어느 분야든 60은 돼야 명망을 얻는다. 「보물찾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10월 11일자, 〈중앙일보〉 특집기사 

당시 YS의 발언이 이 지사에게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불러왔는지는 문화계를 보면 알 수 있다. 무려 95년 말 이 지사와 DJ의 대선 경쟁을 다룬 가상의 정치소설, 정덕성 작가의 〈소설 대통령 김대중〉이 출판된 것이다. 

정 작가는 이 소설에서 실제 노동부장관을 역임한 이 지사를 ‘외무부장관 출신의 4선 이윤제 의원’으로 묘사해 눈길을 끌었다. 소설은 DJ가 대선에서 이윤제(이인제)라는 역경을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내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론 비교적 신예 축에 속하던 이 지사가 단숨에 DJ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로 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97.12.18. 15대 대선…‘이회창vs이인제’ 구도에 DJ 당선


결국 이 지사는 높은 인지도와 언론의 지지를 힘에 업고 지난 97년 신한국당 소속으로 15대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2등으로 낙선했다. 그는 경선 결과를 승복하는 듯 했지만,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하락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독자 출마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약 40.3%를 얻었고, 38.7%의 이회창 후보를 간신히 1.6%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이에 19.2%를 얻은 이인제 후보 때문에 보수표가 갈라져 DJ가 당선됐다는 비판론도 일었다. 이인제 후보가 독자 후보로 나서지 않았다면 DJ가 아닌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하지만 15대 대선 당시 이 지사는 20%에 육박하는 표를 얻어 중도층의 존재감을 증명시켰다. 또한 제3지대에서 만만치 않은 득표력을 보여줌으로써 아직 ‘잔영이 남아있는 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09.10.24. YS, 〈시사오늘〉 단독인터뷰


2009년, 본지는 YS를 단독으로 만나 95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인제 전 지사를 염두에 두고 ‘세대교체론’을 언급했는지 그 진상을 직접 물었다. ⓒ시사오늘 권희정
2009년, 본지는 YS를 단독으로 만나 95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인제 전 지사를 염두에 두고 ‘세대교체론’을 언급했는지 그 진상을 직접 물었다. ⓒ시사오늘 권희정

그로부터 14년 후, 본지는 YS를 단독으로 만나 95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인제 전 지사를 염두에 두고 ‘세대교체론’을 언급했는지 그 진상을 직접 물었다. 

“(웃으며) 그건 사실관계가 맞지 않다. 딱히 누구를 지칭한 게 아니다. 세대교체가 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지.”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852)

이렇게 진실은 14년 후에야 밝혀지게 된다.

이인제 전 지사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통령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해 끊임없이 대선에 도전하도록 종용한 것은, 결국 1995년 YS 발언을 확대 해석한 언론의 영향이 컸던 것은 아닐지 반추해본다.

YS의 '이인제 후계자론'이 퍼지는 과정은, 특히 작금의 통합당 김종인 전 위원장 '40대 경제기수론' 발언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특정 인물을 후보군에 올려놓는 언론이 주목해야 할 사료(史料)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더불어민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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