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포스트 코로나에 매몰된 ‘프리젠트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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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포스트 코로나에 매몰된 ‘프리젠트 코로나’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05.20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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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생존자를 늘리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포스트 코로나19, 그리고 프리젠트 코로나19. 균형감이 필요해 보인다 ⓒ pixabay
포스트 코로나19, 그리고 프리젠트 코로나19. 균형감이 필요해 보인다 ⓒ pixabay

어딜 봐도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뿐이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정치권, 재계, 학계 등은 너 나 가릴 것 없이 포스트 코로나19를 외치기 바쁘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를 동시에 겪는 전대미문의 초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새로운 성장동력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K방역 등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인 만큼, 포스트 코로나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누가 봐도 옮은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무대에 자리잡은 자국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등 '뉴노멀'은 대외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선 굉장히 불리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판은 완벽히 깨졌다. 탈세계화 바람이 일며 더욱 고착화될 것으로 여겨졌던 기존 뉴노멀은 각 나라가 전염병에 대응하고자 불가피하게 국제 공조를 시도하면서 균열이 생겼다. 겉으로는 보호무역주의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됐다. 성숙한 국민의식으로 성공적인 방역을 달성하고, 한국판 뉴딜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속도를 붙이고 있는 우리나라에 이전보다 유리한 분위기가 형성된 게 분명 사실이다. 이른바 'K프리미엄'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미래의 달콤함에 취해 현재의 의미를 놓쳐버린 안타까운 사례가 최근 들어 자주 목격된다. 바로 노동자 사망사고다. 올해 초 KCC 여주공장에서 혼자 마무리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대형 유리판에 깔려 숨졌고, 지난달에는 수십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가 터졌다. 이달에도 노동자 사망사고는 속출했다. LG화학 대산공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으며,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에서는 하청업체 직원이 기계에 끼어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밖에도 현대중공업, SK건설 등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끊이질 않았다.

경기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근로자의 날을 맞아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산재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음에도 최근 노동자 사망사고 빈도가 오히려 높아진 이유는 사용자들이 코로나19 확산 방지에만 집중하다 보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전염병 사태에 따른 경기 침체,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소모품화된 일선 현장 노동자들이 물리적·사회적 안전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 어떤 경제학자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을 때 유일하게 월가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지적했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미래를 내다보는 대신 현재의 '프래질'(Fragile)과 '안티프래질'(Antifragile)을 면밀하게 파악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반노동적 정서가 고착화된 가운데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와 직면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는 분명 프래질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은 포스트 코로나에서 '블랙스완'(Black Swan)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 코로나를 앞두고 노동유연성 제고와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우리가 봉착한 문제들을 외면해선 결코 안 될 일이다. 괴테는 '인간은 현재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모른다. 보다 나은 미래를 막연하게 상상하거나, 헛된 과거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포스트 코로나에 매몰돼 '프리젠트 코로나'(Present Corona)의 중요성을 망각해선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임을 명심하고 현재와 미래의 균형감을 확보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노동자 사망사고에서 엿볼 수 있듯, 포스트 코로나가 제공할 '다음 기회'(Next Opportunity)를 온전히 누리고 그에 따른 수혜를 입을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인 상황이다. 다음 기회의 혜택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생존한 사람들만을 위한 혜택이다. 이 과정에서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고 스러지는 개인과 기업들에게 그 혜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와 프리젠트 코로나 간 균형감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우리는 생존자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생존자를 늘리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우리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과 그에 따른 결과 역시 포스트 코로나의 혜택을 누릴 생존자들이 안게 될 것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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