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년 국회의원’들에게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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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청년 국회의원’들에게 바라는 것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6.05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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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정치 답습하면 청년 정치의 종말 올 수도…뭔가 다른 모습 보여주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13명의 2030 청년 정치인들이 제21대 국회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뉴시스
13명의 2030 청년 정치인들이 제21대 국회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뉴시스

제21대 총선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청년’이었습니다. 유례없이 무당층이 많았던 이번 선거에서 각 당은 20~30대 청년들의 표심이 승패를 가를 변수라고 판단했고, ‘청년 인재’ 영입을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그 결과 제20대 국회 때 3명뿐이었던 20~30대 청년 국회의원은 제21대 국회에서 13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부터 눈길을 끌었던 ‘스타 청년 정치인’들이 대거 원내에 진입하면서, 국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높아진 기대감만큼이나 우려도 따릅니다. 사실 ‘청년 국회의원’은 매 선거 때마다 언론을 달구는 ‘단골손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아직까지 정치권에 남아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국민들이 청년 정치인에게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청년 정치인에게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행보를 기대합니다. 기득권에 젖어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려 하는 20~30대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영논리에 빠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마저 잃어버린 기성 정치인들을 ‘깨우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청년 정치인들은 기성 정치인들의 악습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보수정당의 청년 정치인은 낡고 낡은 ‘색깔론’으로 상대 정당을 공격했고, 진보정당에 몸담은 청년 정치인은 ‘같은 편’이라는 이유로 부정의와 불공정을 외면했습니다.

20~30대를 대신해 표리부동(表裏不同)한 기성 정치인들을 꾸짖기는커녕, 각 정당의 ‘거수기’로 전락하며 오히려 국민들에게 더 큰 실망만을 안겼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청년 국회의원들은 ‘청년’이라기보다 ‘정치인’에 가까웠습니다.

그나마 과거에는 청년 정치인의 수가 적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주어졌습니다. ‘정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젊은 정치인이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느냐’며 이해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전체 의석의 4.3%만이 20~30대로 채워졌다면서 ‘제21대 국회에서도 청년이 외면 받았다’는 분석을 내놓지만, 사실 13명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닙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언정,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수죠.

그런데도 13명에 달하는 20~30대 국회의원이 제21대 국회에서도 거수기 역할만 한다면, 과거처럼 20~3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기성 정치인들의 주장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더 이상 청년 정치인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13명 청년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청년 정치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20대의 나이에 3선 개헌을 시도하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 앞에서 “개헌을 하면 안 된다”고 직언하고, ‘사사오입 개헌’이 통과되자 당을 떠나는 결기를 보였습니다. 30대 때는 반(反) 군부 투쟁에 나서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죠.

이러자 국민들은 불의(不義)한 현실을 젊은 정치인 특유의 정의감으로 돌파해나가는 YS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냈습니다. 재선(不義)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젊은 정치인에게 힘을 실어준 거죠.

이처럼 13명의 20~30대 청년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면, 분노를 넘어 조롱의 대상이 돼버린 정치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국민들은 ‘알아서’ 청년 정치의 전성기를 열어줄 겁니다.

반면 이번에도 ‘기성 정치인의 나이 어린 버전’ 같은 행동을 보인다면, 국민들은 더 이상 청년 정치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30대의 한 사람으로서, 13명의 20~30대 청년 국회의원들이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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