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 김재규 재심 청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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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 김재규 재심 청구 논란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06.07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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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와 전두환 시대 개막의 일등 공신…죽 써서 개 준 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혼노지의 변과 1026의 주범 미쓰히데와 김재규 사진제공=뉴시스
혼노지의 변의 역적 미쓰히데와 10·26의 주범 김재규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월 19일부터 일본에서 방송 중인 NHK 대하드라마 <기린이 온다>는 일본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배신의 화신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일대기를 펼치고 있다. 미쓰히데는 이른바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아울러  내부의 배신자를 절대 조심하라는 뜻을 가진 “적은 혼노지에 있다!(敵は 本能寺に あり!)”라는 격언을 만든 장본인이다.

미쓰히데는 센고쿠 시대 미노 아케치 성주 사이토 도산의 가신이었다가 당대 최고의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활약한 무장이다. 그는 뛰어난 정무 능력을 인정받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노부나가의 최측근으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일본은 100여 년에 걸친 전국시대에 휩싸여 대혼란을 겪고 있었다. 미쓰히데도 미노(美濃)의 아케치 성주인 다이묘 사이토 도산의 가신이었다. 하지만 도산이 죽자 자신을 인정해 줄 주군을 찾아 강호를 떠돌아다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들어 가신이 됐다. 

미쓰히데는 수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고, 1572년에 오미노쿠니에서 시가(滋賀)군을 영지로 받아 사카모토성을 축성했다. 드디어 성주가 된 것이었다. 미쓰히데의 영광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그가 전공을 세울 때마다 영지를 하사했고, 미쓰히데는 히데요시와 2인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본인 스스로 뛰어난 전략가였고, 미쓰히데와 히데요시와 같은 지장(智將)들을 휘하에 거느리면서 1573년 교토에 입성해 무로마치 막부를 무너뜨렸다. 이제 오다 노부나가 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미쓰히데는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하기로 했다. 그는 노부나가만 제거하면 천하는 자기의 것이라는 오판을 했다. 그는 노부나가의 주력군이 원정길에 나선 틈을 타 혼노지를 급습했다. 미쓰히데의 배신에 오다 노부나가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결했다. 역사는 이를 혼노지의 변이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미쓰히데는 오다 노부나가 사후를 대비하지 못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존재를 간과하는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 히데요시는 주군이 혼노지의 변으로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미쓰히데 제거 작전에 나섰다. 

반면 미쓰히데는 정권 인수에 대한 ‘플랜 B’가 없었다. 또한 주군을 배신한 역적이 됐기에 사무라이의 명예와 의리를 중시하는 다이묘들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할 여유도 갖지 못한 채 복수심에 불탄 히데요시의 대군을 맞아 대패했다. 결국 미쓰히데는 자신의 영지인 사카모토로 도망가던 중, 토착 농부의 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제 천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것이 됐다. 미쓰히데의 입장으로선 속된 말로 ‘죽 쒀서 개 준’ 격이 됐다. 일본은 아직도 미쓰히데를 희대의 역적, 배신의 화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도 혼노지의 변과 같은 사례가 있다, 유신 체제의 종말을 가져온 한국 현대사의 최대 변곡점 10·26 사태다. 이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전 중정부장이 만찬장에서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비극이다. 내부의 적은 혼노지에 있다는 격언이 20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됐다.

김재규 전 부장은 미쓰히데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주군의 절대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했다. 또한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예상치 못한 급습으로 최고 권력자를 살해했다는 것.

아울러 주군 사후 ‘플랜 B’ 부재로 몰락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미쓰히데가 혼노지의 변 직후 정권 장악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처럼 김재규 전 부장도 궁정동 만찬장에서 나와 자신의 근거지인 중앙정보부 대신 자신이 장악하지 못한 육군본부행을 선택해 체포되는 실책을 저질렀다.

두 사람의 결정적인 실책은 '주군 배신'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명분을 잃었고, 라이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 미쓰히데는 주군 시해의 주범으로 다이묘의 신뢰를 잃었고, 주군 복수라는 명분을 내세운 히데요시의 반격을 이겨낼 수 없었다. 미쓰히데의 배신은 히데요시를 천하통일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김재규 전 부장도 자신의 표현대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지만 결국 대통령 시해범이 돼 유신 정권 핵심 인사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박정희의 양자로 불리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반격으로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다. 또한 일개 육군 소장이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제5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최근 한국 현대사의 최대 변곡점인 10·26 사건의 주범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심 신청이 논란이 됐다. 지난달 26일 고(故)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유족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김 전 부장의 행위가 내란 목적이 아닌 단수 살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이 이번 재심 청구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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