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작은 거인’ 故 심완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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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작은 거인’ 故 심완구는 누구인가
  • 김병묵 기자
  • 승인 2020.06.09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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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와 울산 민주화 운동 선두에…시장 시절 광역시 승격 이끌어
민주당 이적에도 영원한 상도동계 “YS, 따르게 되는 신념의 정치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시사오늘
〈시사오늘〉이 8일 별세한 심완구 전 울산시장의 행적을 되돌아봤다. ⓒ시사오늘

심완구 전 울산시장이 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는 심 전 시장은 울산 정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된다. 〈시사오늘〉이 고인의 행적을 간략히 되돌아봤다.

1938년 울산에서 태어난 심 전 시장은 부산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야당 인사로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1967년 신민당에 입당했고 1971년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과 함께 제7대 대선 울산지역 부정선거 항의 시위의 중심에 섰다. 〈경상일보〉 보도에 따르면 심 시장은 "최형우 선배로부터 울산에 와 선거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갔다"며 "울산에서 부정선거가 드러났을 때 이 기회를 통해 공화당의 부정선거를 전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72년 심 전 시장은 신민당 총재 비서관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정치규제로 인해, 규제를 당하지 않은 신민당 출신들과 함께 민주한국당 창당에 참여해 제11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심 전 시장은 민한당 당적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경남지역엔 재창당된 신민당과 민한당의 암묵적 공조가 있었는데, 부산에서 출마했던 김정길 전 의원의 슬로건 '아빠는 신한민주당, 엄마는 민주한국당'이 그러한 분위기를 상징했다. 심 전 시장과 김 전 의원 등은 당선 직후 신민당으로 복당했다.

심 전 시장은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재선했다. 심 전 시장은 YS의 신뢰와 함께 상도동계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YS가 당시 3당 합당에 반대하는 최 전 장관을 설득하기 위해, 울산에서 민주화운동 당시부터 함께했던 심 전 시장을 보낸 것도 유명한 일화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선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낙선했다. 상대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만들었던 통일국민당 차수명 전 의원이었다.

심 전 시장은 제14대 총선 낙선 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전력공사 상임고문을 역임하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 초대 민선 울산시장에 당선됐다.

울산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심 전 시장은 1997년 기초 자치단체였던 울산시의 광역시 승격을 이끌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장 유치와 울산대공원 조성 등도 심 전 시장 재임 시절의 성과다. 그 외 울산의 도시기반 시설을 확충하며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8년 심 전 시장은 3선 도전을 포기하고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다. 그 배경에 대해 심 전 시장은 "울산시 발전을 위해 여당행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여당 합류 조건으로 심 전 시장은 울산에 필요한 예산을 내걸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울산으로 산업시찰을 왔을 때 심 전 시장의 강력한 건의로 배정된 울산신항만 건설이다.

당적 변경으로 인해 심 전 시장을 상도동계로 분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심 전 시장이 처했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심 전 시장의 처남이자 YS의 최측근인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이 한보 사태에 연루되어 구속 기소된 상태가 그것이다. 

때문에 당시 신한국당 내에서도 심 전 시장의 당적 변경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적었고, 심 전 시장도 별다른 설명 대신 구속된 홍 전 수석을 구명 해달라는 정도의 당부만 남겼다고 알려졌다. 

심 전 시장은 지난 2016년 YS 서거 1주기 당시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도 "과연 오늘날 정치인들이 YS를 따라갈 수 있는 리더십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집념과 철학을 가진 신념의 정치인이다. 그래서 영원히 어른을 따르게 되는 것 같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바 있다.

심 전 시장은 이후 2002년 1998년 토지구획정리사업 인가 결정 등과 관련해 평창종합건설로부터 청탁과 함께 3억 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2002년 검찰에 구속됐다. 2004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3억 원을 확정받은 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사면됐다.

심 전 시장은 2007년 제17대 대선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제18대 대선에선 김덕룡·문정수·노병구·홍인길 등 일부 상도동계 인사들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다. 또한 지방선거에선 과거 울산 시장직을 놓고 맞붙은 적도 있던 송철호 울산시장을 지원, 당선에 일조한 뒤 제7기 울산시정에 다양한 자문을 하는 등 정치·행정 원로로 활동해왔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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