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혁신은 금융권만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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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혁신은 금융권만의 몫이 아니다
  • 김병묵 기자
  • 승인 2020.06.12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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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금리 장기화…당국은 ‘혁신’ 채찍질
규제 해제 등 정부·국회·금융 발 맞춰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시사오늘 그래픽=김유종
금융혁신은 금융권 혼자의 과제가 아니다. 관련 규제 해제와 법 개정 등, 정부와 국회의 착실한 뒷받침이 있어야 제로금리로 대변되는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넘어설 수 있다. ⓒ시사오늘 그래픽=김유종

"요즘 들어 금융 현장과 금융당국 사이에선 협의보다는 통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조차도 당국이 은행 측 입장도 들어봐 주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일방적으로 정책을 통보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해 가을, 한 시중은행의 핵심 관계자가 사석에서 들려준 얘기다.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정국에서 금융당국의 행보를 보면서, 이 관계자의 토로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코로나 19 판데믹으로 인한 사상 초유의 사태는 금융권으로 하여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하고 있다. 끝모르는 경기 침체는 초저금리 시대를 열었다. 기준금리가 0%대, 이른바 '제로금리'다. 

제로금리는 은행의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부분)을 줄여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초저금리가 고착화된 유럽에선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로 인해 지난 2019년 하반기 약 4만여 명의 인원을 감축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행이 앞장서서 시중은행들에게 저금리 대출을 독려하고 있다. 낮은 수익성은 물론 회수율도 미지수인 대출이 늘어나다 보니 현장에선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도 모두가 힘든 와중이라 금융권에선 특별히 불평의 목소리도 내기 어렵다.

금융위원회에선 이러한 난국을 '금융혁신'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대마진이나 수수료 위주의 영업 방식을 바꿔야 산다는 이야기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1일 "그동안의 전통적 수익 모델이 앞으로의 금융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이자이익이나 자산 운용 수수료 등에 의존한 영업 방식의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 위원장의 발언은 타당한 메시지다. 이미 수년전부터 은행 업계 내부에서 제기되던 고민의 목소리기도 하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금융위의 '맞는 말'이 채찍질처럼 들린다. 모든 책임과 부담을 금융권에만 지우는 듯한 모습이 계속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근래 벌어진 금융권 악재에서 금융권에만 책임회피성 중징계를 내려 논란이 일었던 일이 대표적이다.

이제 막 문을 연 제21대 국회에선 여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규제 법안'이 줄지어 발의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5일 금융위는 삼성 등 금융부문 자산이 5조 원을 넘는 금융산업 그룹을 규제하는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 취지와는 별개로, 지금 같은 금융 비상 상황에 꼭 필요한 법률인지에 대한 물음표가 붙는다.

여권의 한 당직자는 1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금융권을 압박하거나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법안을 추진할 리 없다. 건전한 생태계에서 금융권의 더 큰 발전을 기대한다"고 설명했지만, 야권의 다른 당직자는 "마지막 보루인 금융권마저 규제로 묶어버리면 그나마 트인 숨통도 막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은 위원장의 혁신 주문이 있었던 다음 날인 12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창립 70주년 기념사에서 아예 현 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을 천명했다. 전날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2022년까지 금리 동결을 선언했었다. 제로금리가 장기화될 것은 확실시된다.

제로금리 시대에 금융혁신이 필요한 것도 맞다. 하지만 이번에도 금융권에 '떠넘기기 식'의 채찍질과 통보만 해서는 곤란하다. 관련 규제 해제와 법 개정 등, 정부와 국회의 착실한 뒷받침이 있어야 제로금리로 대변되는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넘어설 수 있다. 금융혁신은 금융권 혼자의 과제가 아니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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