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불수사도북 종주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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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불수사도북 종주 도전기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0.06.15 10:1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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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산 다섯 개가 나란히 있길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도봉산 신선대에서 우이암 방향으로 찍은 사진 ⓒ 최기영
도봉산 신선대에서 우이암 방향으로 찍은 사진 ⓒ 최기영

처음에는 가볍게 산을 타기 시작하다가 몇 개의 산을 이어서 타는 종주를 하기 시작하며 산을 더 알아가는 것 같다. 

서울, 특히 강북 지역에는 명산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곳이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이다. 정말 지독한 종주 마니아들이 그 다섯 개의 산을 한 방에 타곤 한다. 45km 이상의 산길을 걸어야 하고, 20시간 이상이 걸린다. 당일 종주 산행 코스로는 산을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장 힘들고 어려운 코스로 꼽힌다. 

주말에 오를 산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함께 산을 타곤 했던 한 선배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불수사도북 종주'를 하기로 했다며 같이 해보자고 말했다. 요즘 등산을 게을리한 탓에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엉겁결에 약속하고 말았다. 

산행을 앞둔 전날인 목요일, 저녁 술자리 약속이 있었다. 금요일 밤부터 산행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자제하면서 일찍 술자리를 파하고 다음날 산행을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한번 술이 들어가면 흥이 오르도록 먹어야 하는 오랜 습관은 그날도, 다음날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숙취가 가시지 않았던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가방을 챙겨 약속 장소였던 공릉역으로 향했다.

수락산으로 가는 길. 도시의 불빛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훨씬 밝은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 최기영
수락산으로 가는 길. 도시의 불빛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훨씬 밝은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 최기영

우리 일행은 일단 저녁을 함께 먹었다. 금요일 저녁 공릉역의 밤은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그때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불금의 유혹을 뿌리치고 공릉산 백세문에서 첫 번째 봉우리인 불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와봤던 산이었지만 어두운 산길은 몹시도 헷갈렸다.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저 아래에 있는 도시의 밤이 보이기 시작했고 첫 번째 봉우리인 불암산 정상에 도착했다. 불암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깊은 밤의 산바람은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도시의 불빛을 모두 합쳐놓은 것보다도 훨씬 더 밝은 보름달이 휘영청 떠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불암산을 내려와 수락산으로 향했다. 갈 길이 먼데 벌써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저녁밥을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허기가 지고 갈증이 났다. 선배는 산을 타기 전 자신은 체질적으로 땀이 별로 나지 않아서 물을 별로 마시지 않는다며 가방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일 요량으로 작은 생수 한 통만을 챙겼다. 그런데 선배의 몸에는 팥죽 같은 땀이 흐르고 있었고 결국 내가 마시던 물까지 빼앗아 갔다. 그의 가방 안에는 시원한 막걸리 한 통이 있음을 알고는 순순히 그 생명수 같은 나의 물을 건네주었다.

수락산 정상에서 시원하게 얼린 막걸리 한잔과 간식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랬다 ⓒ 최기영
수락산 정상에서 시원하게 얼린 막걸리 한잔과 간식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랬다 ⓒ 최기영

드디어 우리 셋은 두 번째 봉우리인 수락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서 휴식을 취하며 마셨던 시원한 막걸리와 과일은 정말 꿀맛이었다. 

수락산을 내려오면서 또 한 번 꽤 긴 길을 코스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내려오던 길을 다시 올라가야만 했다. 조금의 에너지라도 아껴야 할 판국에 자꾸 헛심을 썼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도정봉을 거쳐 회룡역 방향으로 두 번째 하산을 했다. 날은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했다. 선배와 같이 왔던 친구분은 거기서 산행을 포기했다. 그렇게 남게 된 우리 둘은 의정부 호암사 방향으로 길을 잡아 사패산을 향하며 힘겨운 산행을 이어갔다. 

날이 밝아지니 산길이 환하게 드러났다. 이제는 길을 잘못 드는 일은 없을 것이고 죽어도 북한산에서 죽자며 완주를 위한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아침 7시경 이날 세 번째 목적지인 사패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우리가 밤새 걸었던 불암산과 수락산의 모습이 시원하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야 할 사패능선과 포대능선, 도봉산이 보였다. 

사패능선에서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길. 어느새 신록이 우거진 숲길이 저리도 아름다운데 우리는 고통을 참으며 이 길을 걸어야만 했다. ⓒ 최기영
사패능선에서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길. 어느새 신록이 우거진 숲길이 저리도 아름다운데 우리는 고통을 참으며 이 길을 걸어야만 했다. ⓒ 최기영

사패산에서 도봉산으로 가는 길이 그리도 오르막이 많고 힘든 길임을 이날 처음 알게 됐다. 사패능선을 벗어나 산불감시초소가 나오면서 도봉산 포대능선으로 들어섰다. 아침을 지나며 기온이 올라갔고 우리의 피로감은 더해졌다. 포대능선 전망데크에 올라서자 완전히 기진맥진한 채  한참을 누워있었다.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있는 힘을 다해 Y계곡을 지나 드디어 네 번째 목적지였던 도봉산 신선대에 도착했다. 우리 둘은 손가락으로 '4'를 표시하며 인증사진을 찍었다. 이날 우리의 종주를 응원하기 위해 모임의 몇 사람이 이날 북한산 사모바위에서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우리를 마중하겠다고 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도봉산에서의 인증사진을 보내며 곧 보자고 했었다. 

그런데 우이암으로 가는 하산 길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길을 묻는 우리에게 매우 진지하게 우이암 표지석 방향 말고 '저 아래로 가면 더 빨리 우이암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불암산과 수락산에서 헛심을 쓴 탓에 우리의 귀는 솔깃했다. 조금이라도 남은 길을 줄여보자며 우리는 그 어르신이 알려준 길로 한참을 내려왔다. 그런데 그 길은 도봉역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1km를 다시 올라 우이능선을 만나야 했다.

생각지도 못한 헛심을 그렇게 다시 한번 실컷 쓰고 나니 우리의 사기는 뚝 떨어졌고 몸은 마치 배터리가 방전돼 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북한산 백운대를 바라보고 있는 우이동에서 산행을 멈추기로 했다. 산행을 시작한 지 16시간 만이었다. 아쉽지만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북한산에서 우리를 기다릴 일행에게 전화해 완주 실패를 알렸다. 그 막걸리는 먹지 못할 것 같다고….

네 번째 목적지였던 도봉산 신선대에서 선배와 인증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4’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다. ⓒ 최기영
네 번째 목적지였던 도봉산 신선대에서 선배와 인증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4’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다. ⓒ 최기영

정말 원 없이 걷고 원 없이 땀을 흘렸다. 포기를 하고 나니 산에 더는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그리고 우리만의 뒤풀이를 시작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먹고 소주와 맥주를 말아 시원하게 들이키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서울 강북의 다섯 산은 언제나 그렇게 나란히 서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언제든 그 산을 다시 오를 수 있다. 오늘만 살 것처럼 아등바등하지 않고, 또다시 이어질 내일을 준비하며 사는 것처럼 말이다. 선배와 나는 금세 추억이 된 그 날의 산행 이야기로 웃으며 서로의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헤어졌고 이른 저녁부터 나는 정말 깊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그날의 산행 이야기를 SNS에 올렸다. 한 후배가 '왜 그러셨어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나는 '산 다섯 개가 나란히 있길래…'라고 답했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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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신 2020-06-15 10:55:32
준비덜된 리딩에
동참소식에 천군만마를 어얻은 듯 했어요.
하고보니
불수사도. 4산을 진행한것도
본분장님 덕분이었습니다.
산행기
가슴 절절히 봅니다..

이창남 2020-06-15 10:42:05
고생했네..
그라고 추카하네..
언잰간 꼭 종주하리라 믿네.
역시 산전주전 작가다운 줄거리 잘읽었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