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南北 ‘대결시대’ - 최악 시나리오 철저 대비를
[이병도의 時代架橋] 南北 ‘대결시대’ - 최악 시나리오 철저 대비를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0.06.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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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근본적 성찰 필요
환상 걷어내고 전면 재검토를
北, 역사적 책임까지 감당해야
비핵화는 실종되고 한국은 '인질'
모든 통신선 끊고 南을 敵으로 규정
군사대치 퇴행…6·15 20주년에 군사 위협
북미정상회담 동력 상실 파탄지경
한반도 상황 악화는 막아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한반도 정세가 갈수록 심상찮다. 북한이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평화는 중대 기로를 맞았다.

관건인 북미 간 새 대화 동력을 찾기도 사실상 불가능한 국면이다. 북한은 유엔제재 완화를 간절히 바라지만, 미국은 '비핵화'만 고수한다. 

위기에 봉착한 권력이 택하는 손쉬운 선택은 외부의 적을 상정해 내부 결집을 도모하는 것이다. 최근 북한이 취한 일련의 충격적 조치들은 현상을 타파하고자 하는 몸부림에 다름아니다. 

북한은 ‘대남사업’을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남한 전체를 敵으로 규정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남한을 ‘적’으로 규정한 것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20년 만이다. 문재인 정권의 남북대화 국면도 대결 국면으로 바뀌게 됐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의 6·15 공동선언에 이어, 2007년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의 10·4 평양선언, 문재인-김정은 정상의 2018년 4·27 판문점선언과 9·19평양선언에 이르기까지 공들여 쌓은 화해 협력의 탑을 허무는 조치들이다.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20년 역사를 지워나가는 모양새다. 남북 간 합의의 일방적 파기로,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 

한반도 정세가 갈수록 심상찮다. 북한이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뉴시스
한반도 정세가 갈수록 심상찮다. 북한이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뉴시스

안일한 대북 전략이 자초

문제는 앞으로다. 이런 사태는 북한의 ‘비핵화 쇼’에 놀아나 시간만 벌어준 안일한 대북 전략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긴 호흡으로 대북정책을 재정립할 때다. 북한은 바뀌지 않았다. 북한 체제의 본질이 그렇다. 본질을 잊은 접근법은 위험하다.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외교안보정책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신뢰 회복도 시급하다. 그래야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고 국민 안전과 국익을 지킬 수 있다.

한반도 평화는 남북 모두에게 주어진 무거운 역사적 과제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향후 서해상을 비롯한 전방 곳곳에서 긴장을 고조시켜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평화를 걷어차고 대결을 자초한 책임도 역사에 고스란히 기록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3년간 탄도미사일 발사,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 총격 등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에도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구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굴종적인 대북 자세는 국가안보에 백해무익하다.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야 한다. 합의와 약속을 밥 먹듯 뒤집는 북한에 끌려가기만 해선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통일은 요원하다. 문 정부가 모처럼 북의 ‘몰상식’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가짜 평화’로 판명난 지난 3년의 실패를 되풀이하자는 무지와의 결별이 우선돼야 한다.

내부 목적…관계 단절 실행 

한마디로, 북한은 최근 비이성적인 외곬 행보의 연속이다. 남북 신뢰든, 외교 관행이든 깡그리 무시한 오만의 극치다. 

북한 최고 지도부는 최근 “조선반도가 핵전쟁 유령이 항시적으로 배회하는 세계 최대 열점지역으로 화했다”고도 했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듯한 북한의 강경노선은 급선회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북한은 트럼프와의 핵협상 실패와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무역 단절로 식량난을 비롯한 생활고가 심각하다. 북한 사회 내부의 불만을 가라앉힐 해결책이 없다. 전쟁을 할 수는 없으니 외부에 대한 적개심으로 긴장을 고조시켜야 한다. 그래야 통제가 쉽다. 독재 전제주의국가에선 더욱 그렇다.

북한이 남북관계 단절을 위한 사실상의 실행 조치에 착수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을 비공개 특사로 파견하겠다는 제의도 폭로하면서,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연락사무소 폭파 ‘만행’까지 저질렀다.

남북연락사무소뿐만 아니라 동·서해 군 통신선, 통신시험시설, 정상 간 핫라인까지 끊었다. 

미·북 싱가포르 회담 2주년을 맞아 양측이 내놓은 입장을 보면 당시의 합의가 이미 사문화(死文化)했음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본질적 내용이 북한 비핵화인데, 북한 정권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비핵화’ 역주행

북한의 최근 담화에는 미국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관한 새 계산법을 내놓지 않으면 싱가포르 합의를 파기하고 무력 시위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북한이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설 경우 북·미 관계는 그야말로 파국이다. 

싱가포르 회담은 남·북 판문점선언에 기초하고 있는데, 판문점선언 역시 비본질적 일부 내용만 실행에 옮겨졌을 뿐, 가장 중요한 ‘완전한 비핵화’는 역주행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해온 민간의 전단 살포를 갑작스레 꼬투리잡아 우리 정부의 ‘사죄와 반성’을 요구하는 북한의 행태는 적반하장이자 자가당착이다. 핵·미사일 도발, 해안포·기관총 사격을 거듭하며 6·15 공동선언, 4·27 판문점 선언, 9·19 군사합의를 사문화시킨 당사자는 북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핵무장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북한과 역대 남한 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 등으로 남북 관계는 부침을 거듭해왔다. 

잇단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성큼 다가오는 분위기였지만, 하나의 지나간 역사가 될 위기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과 남북 대화·교류 정체, 이에 따른 북한의 불만 누적으로 대치 국면으로 되돌아갈 판이다. 

북-미 대화 재개에 악영향

차제에 우리는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적당히 현상유지를 하며 '분리'돼 사는 불편한 이웃인지, 언젠간 무너뜨려야 할 '주적'인지, 아니면 70년 넘는 분단을 극복하고 더불어 어울려 살아야 할 형제인지 말이다. 

더욱이, 최근 미·중 갈등의 격랑 속에 낀 한국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한동안 거론치 않은 북한에 대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원칙을 다시 꺼내며 대북 경고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지난해 2월 북미 간 하노이 노딜 이래 남북, 북미 관계는 교착을 면치 못하고 있고, 미국 대선이란 변수는 진전을 더 어렵게 한다. 국제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여론이 악화돼 미국 대선 이후에도 북-미 대화 재개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북미 간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미국까지 겨냥한 고강도 무력시위에 나서는 경우다. 이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운동에 미칠 부정적인 여파를 최소화하려고 강력 대응에 나설 수 있다.

한·미 공조 더욱 중요

대북정책의 전반적인 수정과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 각 부처의 유기적이고 적극적인 대처와 함께 초당적으로도 위기극복에 머리를 맞대야만 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한국전쟁 70주년인 오는 25일을 전후해 탈북자 및 보수단체가 계획 중인 대북 전단 100만장 살포다. 경기도는 접경지역을 위험구역으로 지정해 출입을 원천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정부가 전단 살포에 대해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2014년 10월 연천 총격 사건이 재연될 수도 있다. 당시 북한은 탈북자 단체가 연천에서 전단이 든 풍선을 날려 보내자 총격을 가하고, 그 총알을 남측으로 넘기는 도발을 했다. 

한·미 공조는 더욱 중요해졌다. 방위비 분담 협상, 미·중 갈등의 영향 등으로 최근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는 한·미 관계를 다지고 동맹을 더 굳건히 해야 한다. 탄탄한 군사 억제력은 그 자체로도 긴요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론 외교 협상력도 끌어올린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과 대형 변수 

북한의 '저질' 언동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2인자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담화를 통해 '북남관계의 총파탄'을 공언한 이후 2주간 극단적 조치들을 이어가고 있다.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며 모든 연락채널을 차단했고, 개성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으며,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에 군부대를 다시 주둔하는 한편, 서해상 군사훈련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4·27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모두 무력화하겠다는 것으로, 남북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한반도 긴장 상태 또한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게 됐다. 북한이 모든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인민군 총참모부에 행사권을 넘겼다는 건 대남 군사행동을 지시·승인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6·25전쟁 70주년이나 7·27 정전협정일, 북한정권 수립일인 9·9절, 10·10 노동당창건일 등에 즈음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나 휴전선 부근에서 국지적 군사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 또 7차 핵실험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으로 도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가 현 정부 출범 이후 최고조로 대북 비판 수위를 끌어올리면서, 국방부와 통일부도 북측 상대역인 총참모부, 통일전선부의 비난 담화에 맞대응한 것도 그 때문일것이다. 

북한은 이와 관련,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취약한 상황을 공략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은 이미 새 전략무기 공개와 '충격적인 실제 행동'을 언급한 바 있다. 실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역시 정세를 급변시킬 대형 변수가 될 수 있다. 

최근의 남북관계 경색에 더해 북미 간 협상이 진전은 커녕 퇴보 조짐을 보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북한이 '싱가포르 합의 파기'를 선언하지 않고 '대가'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협상 여지를 완전히 차단한 것은 아니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관계 왜곡 역설적 입증 

최근 북한이 취한 일련의 행태는 유엔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북한 경제상황이 한계로 치닫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상 국가로 보기 힘들다. 

3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2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공감대 형성과 함께 화해 무드를 어렵게 합작해 낸 당사국이 과연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성급하기 짝이 없는 충동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난국 타개를 위한 문 대통령의 비공개 대북 특사 파견 제안까지 "간청했다"고 왜곡하며,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외교의 기본을 무시한 처사다. 

김여정은 지난 2년간 우리 정부가 남북 합의보다 한미동맹을 우선했고 대북제재의 틀을 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비핵화의 ‘비’자는 한마디도 없었다. 더 이상 비핵화에 매달리지 말고 북한 편에 서라는 것이다.

문 정부가 저자세로 일관한 것이 남북관계를 얼마나 왜곡시켜 왔는지 역설적으로 입증해 준다고 할 것이다.

일방 철거는 합의 위반

특히,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전격 폭파한 것은 문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소통과 협력으로 문제를 풀자고 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 간 합의에 따라 그해 9월 사무소가 문을 연 지 2년도 안 돼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방 철거는 엄연한 합의 위반이다. 

북한은 이를 ‘첫 단계의 행동’이라고 강조하며 후속 도발도 예고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북한은 남북 군사합의 파기를 예고한 데 이어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도 심의했다고 밝혔다. 휴전선이나 서해 일원에서의 저강도(低强度) 국지 도발은 물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등 전략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안보 당국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와 관련, 더는 참지 않겠다는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경고는 응당하다. 

또한, 북한 총참모부는 비무장화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해 요새화하는 조치를 작성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승인을 받겠다고도 밝혔다. 

대대적인 대남 전단 살포 계획도 시사했다. 지상·해상·공중 완충 구역 내 군사 활동 재개와 공동경비구역(JSA) 근무병 총기 휴대, 철거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복구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평화와 협력을 상징하던 개성과 금강산이 첨예한 군사 대결의 장으로 후퇴할 위기다.

외교안보라인 책임 물어야

이 판국에서도 “연락사무소를 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는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의 언급에 이어 참여연대까지 나서서 “정부의 강력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니, 과연 제정신들인지 모르겠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남북 관계가 이 지경으로 악화된 데에는 국정원장과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에게도 책임이 있다. 외교안보라인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부정확한 상황 판단과 방향 설정을 해온 외교안보라인은 대폭 교체해야 한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대남 강경노선으로 돌아섰는데, 외교안보라인은 근거 없는 낙관론에 매달려 대남도발 대응에 실패했다. 

국방장관 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대북정책의 파탄을 솔직히 인정하고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우리 군은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면서 북한이 군사적으로 도발한다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강력한 응징에 나서야만 하게 됐다. 이성을 잃은 막가파 작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만이 북한의 착각을 바로잡고 진정한 남북 화해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국내 상황, ‘외부의 적’ 탓으로

난국 타개의 실마리는 우리 정부를 향한 북한의 불만에 담긴 핵심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사태의 도화선인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이 예민해하는 사안인 것은 맞지만, 이 문제가 지금까지의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뒤집을 중대 사건이라 보기는 어렵다. 

2년여전 남북 정상의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프로세스가 개시됐고, 자신들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중지 등을 포함해 남북 간, 북미 간 긴장 완화와 비핵화를 위해 나름 성의를 보였으나, 유엔 제재는 완화되기는커녕 기약조차 없다는 절망감에서 이번 일이 비롯된 측면이 짙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운 남한 정부가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 이전에 제재 완화마저도 꺼리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견인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며 세월만 보냈다는 원망도 켜켜이 쌓인 듯하다. 남북 관계 개선을 치적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압박이기도 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와 제재 장기화, 코로나19 상황이 겹치면서 어려워진 국내 상황을 ‘외부의 적’ 탓으로 돌림으로써 내부 결속을 강화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의제는 '평양 시민 생활 보장을 위한 당면한 문제'였다. 

우리는 4·27 직후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전단 살포도 막았지만, 북한은 사실상 달라진 게 없다. 작년 11월에는 서해 완충수역에서 해안포를 쐈고, 한 달 전만 해도 아군 GP에 총탄이 날아들었다. 

‘벼랑 끝 전술’ 회귀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현재의 정세와 내부 상황 등을 두루 고려해 ‘벼랑 끝 전술’로 회귀하는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선봉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체제 2인자의 자리를 굳히고 있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있다.

남한을 상대로 돌변하며 압박 강도를 높여간다. 나름 남한이 신뢰를 저버렸다는 명분을 들고나오긴 하지만, 꼬투리 하나를 잡아 판을 키우며 입지와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수순 밟기로 보인다. 전단 문제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삼킬 정도로 그 기반이 쉽게 무너질 상호 신뢰였는지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지나친 북한 눈치 보기란 비판을 들으면서도 살포 방지 입법을 예고한 데 이어, 관련 탈북민 단체 2곳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법인 설립 허가취소 절차에 착수했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과 남·남 갈등 격화 위험 속에서도 정부가 잇따른 관련 조처로 '성의'를 보이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북한이 원색적인 비난과 비아냥을 이어가니, 마치 판을 깨려는 구실을 기다린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심지어 대외 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엔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선임자들보다 더 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난하는 글도 등장했다. 

개성공단 지역이 다시 요새화하면 완충지대가 사라져 전방 지역 긴장 고조는 불 보듯 뻔하다. 남북이 어렵게 이룬 합의와 신뢰를 하루아침에 수포로 만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퇴행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미국 대선판 흔들 가능성

따라서,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 대선판을 흔들 가능성은 상존한다. 남한을 때리며 한미를 함께 압박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북한의 목표는 경제 실패 책임을 외부로 돌려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남측을 압박해 대선에만 매달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대북 경제제재를 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잘못된 계산이다. 미국에 북한은 중국 문제의 하위 변수일 뿐이다. 중국과 전방위에서 힘겨루기를 진행 중인 미국이 북한이라는 구멍이 커지는 것을 용납할 리 없다. 

북한이 일시적으론 얻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한미의 대북 피로감을 키우고 그나마 남아 있는 신뢰를 날리는 악수가 된다. 

북한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결실을 맺지 못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툭하면 미사일 도발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당사자가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런 행동은 한반도 평화를 해칠 뿐 아니라 남북화해를 지지하는 남측 여론까지 등 돌리게 할 수 있다. 북한은 더 이상 대남 압박을 멈추고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선(先)비핵화 원칙 확고히 지켜야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적성국가 정상과의 역사적 대좌라는 이벤트에 홀려 미군 유해 송환과 비핵화 폭파 쇼를 대가로 김정은에게 너무 큰 기대를 줬다. 

하지만 그 사이 북한 비핵화는 어디론가 사라져 공허한 수사(修辭)로만 남았고, 북한은 다시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시험 중단이라는 레드라인(금지선)을 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도 당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을 설득해 북-미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고, 제재는 지속됐다. 

그 후 문 정권이 북한 핵무기 문제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으면서 북한 입장을 추종하는 것을 보면,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김정은 정권이 실제로 핵개발을 포기할 기미는 없다. 전단지 문제 등에 대해 저자세를 보인다고 북측의 태도가 달라질 것인가. 섣부른 회유책보다 한·미 공조에 따른 선(先)비핵화 원칙을 확고히 지켜야 할 때다. 

미국 대선이 끝나더라도 북미 관계의 급진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미국은 최근 ‘2019 국제종교자유 보고서’를 발간하고 “북은 종교적 박해의 영역에서 아주 공격적이고 지독하다”면서 “미 정부는 완전한 관계정상화를 하려면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인권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종교의 자유 및 인권문제를 관계정상화와 연계한 것은 올해 보고서가 처음이다.

탈북민 보호 · 전단 살포 저지방안을

최근 북한 조치의 표면적 도화선이 된 전단정책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한 북한의 거칠기 짝이 없는 대남 공세가 연일 그칠 줄 모른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논설에서 이번 사태를 "북남관계를 깨뜨리려고 작심하고 덤벼드는 우리에 대한 도전이고 선전포고나 같다"고 규정하고, 남북 관계가 파산된다고 해도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파국적 사태의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핵화 협상 상대국인 미국에도 비난의 화살을 겨냥했다. 

북한이 밝힌 대적사업의 직접적 표적은 ‘쓰레기들의 반공화국 적대행위’, 즉 탈북민단체의 전단 살포 같은 반북(反北) 활동이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탈북민 단체가 지난 10년 동안 북한으로 날려 보낸 전단이 최소 2천만장이다. 2016년 2월 11일에는 한 단체가 102만장을 날려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북한은 당장 태영호 의원 같은 탈북민 출신 인사들에 대한 테러나 접경지역에서의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며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다. 정부로서는 군사적 대비태세를 면밀히 점검하고 탈북민 경호·보호조치도 강구해야 한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경찰 등 행정력을 동원해 전단 살포를 저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전단 살포를 막은 사례는 적지 않다.

대북전단 살포는 이미 판문점선언에 ‘중지’를 명시한 만큼 탈북단체의 자제 노력이 없다면 가능한 법제화를 통해서라도 서둘러 막아야 할 사안이긴 하다. 정부와 여권은 김여정의 성명 직후 전단 살포 금지 법안 추진에 나섰고, 이에 대한 찬반을 놓고 여야 대립과 여론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육두문자에 가까운 김 부부장의 성명이 발표되자 통일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단금지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청와대도 “대북전단 살포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라고 맞장구쳤다. 여권에선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주권국가의 자존심을 팽개치고 평양의 하명에 따르려는 굴종”이란 비난이 쏟아질 만했다.

정부여당이 이들을 진지하게 설득하지도 않고 아예 법으로 틀어막고 처벌하겠다고 나선 것은 본말이 전도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북한 주민들도 다른 쪽의 사정을 알 권리가 있다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방침과 배치되는 반인권적 행보가 될 수도 있다.

군사적 대비 급선무

이제, 문재인정부 들어 주로 남측의 양보에 기반해 유지돼 오던 남북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정부는 차제에 저자세 논란을 빚는 대북 정책 기조의 효용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북한에 끌려다니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의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문 정부는 올해는 남북 관계만이라도 진전을 보겠다며 의욕적으로 북한에 보건 분야 등의 협력을 거듭 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가능성을 상정해 군사적으로 확고히 대비해야 할 일이 급선무가 됐다. 

곳곳이 '구멍'이다. 정작 청와대가 최근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 후 내놓은 대북 전단 살포 관련 입장문은 상징적이다. 북한의 대적(對敵)사업 위협이나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등에 대해선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남북교류협력법, 공유수면법, 항공안전법 등을 동원해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막으려 든다.

더욱 가관인 건 우리 군 당국이다. 국방부는 정경두 장관 주관으로 열린 전반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9·19 남북군사합의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있으나 마나 한 군사합의”라며 파기 운운했는데, 우리 군은 긍정 평가한 것이다. 안보의 최전선에 있는 군이 현실과 동떨어진 안이한 인식을 보인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비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제20대 국회에서 비준이 안 된 것 역시 이행 비용조차 추산되지 못할 정도로 허술했기 때문이다. 다시 국회 비준을 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요구하는 경협을 국제사회 눈치를 보지 않고 비핵화 없이 강행하겠다는 '꼼수'와 다름없다. 

상황 타개 - 과감한 처방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유동적이어서 북한의 군사적 돌발 행동은 더욱더 우려스럽다. 

미국은 북한의 대남 연락채널 단절에 대해 " 실망했다"는 입장을 표명해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대선까지는 현상을 유지하면서 북한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치중할 공산이 크다.

북한이 강하게 나온다면 한국과 미국은 상응하는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한미연합훈련이 재개 또는 강화되고 전략무기들이 한반도에 상시 전개될 것이다. 평양 시민들조차 생활고를 겪는 형편에 북한은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인가. 

만에 하나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 같은 직접 공격을 생각한다면 그 전에 김정은은 자신의 운명과 체제까지 걸 각오를 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이 추가로 도를 넘는 행동을 한다면 단호히 대처하되, 이와 별도로 대북전단살포금지법(가칭)의 신속한 입법을 시작으로 현 상황 타개를 위해 남북문제와 관련해서 때론 '우리가 선조치하고 미국과는 사후협의'하는 과감한 태도를 갖출 필요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신고립주의' 성향과 맞물려, 미국이 독일의 방위비 지출에 불만을 터뜨리며 주독미군 감축을 공식화한 만큼, 주한미군에 어떤 변수가 될지도 모를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면적 정책 수정 불가피

지금이야말로 북한 비핵화를 확고한 목표로 재확인하면서 대북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새로 짜야 할 시기다.

북한과의 대화에만 매달리는 대북정책의 한계는 분명해졌다. 북한의 대남전략 변화에 대응하려면 전면적인 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 

정부와 군 당국,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는 북한이 남한을 적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빈틈없는 대비 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다양한 도발 시나리오에 대응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춰 철통 같은 안보태세를 이뤄야 한다. 강력한 응징으로 북한의 도발을 중단시키고 북핵을 완전히 폐기해야만 한반도 평화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남북문제는 입장을 서로 바꿔 생각하지 않으면 해결이 요원한 난제다. 북한은 크게 반성해야 하고, 남한도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북한 당국은 도를 넘는 대남 압박을 멈추고 남북 합의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방적 조치를 즉각 중단하고 민족 협력의 길에 다시 나서야 한다. 지금은 남북한과 미국이 지난 2년 동안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시행착오를 바로잡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 때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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