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치상식] 민주산악회는 외교구락부에서 출범했다?
[잘못된 정치상식] 민주산악회는 외교구락부에서 출범했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7.07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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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황상 정식 출범식 불가능…DR “민산 첫 등반 날짜, 안기부 끌려갔다가 들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민주산악회가 정식 출범식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김영삼 회고록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민주산악회가 정식 출범식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김영삼 회고록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에서 민주산악회(민산)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짧디짧은 ‘서울의 봄’이 끝나고 전두환 정권의 공포정치가 전 국민의 숨통을 조여오던 시절, 민주화투사들이 벼랑 끝에서 붙잡았던 ‘희망의 끈’이 바로 민산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민산은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로 이어졌고, 민추협은 신한민주당(신민당)의 모태가 된다. 알려진 대로, 신민당은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1야당으로 등극, 국회 안팎에서 대통령 직선제 투쟁을 전개하며 결국 1987년 6·29 민주화선언을 이끌어냈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제일 앞 페이지에서 발견되는 조직이 민산이다.

그런데 이런 민산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산의 태동이다. 김영삼 회고록을 비롯한 다수 서적과 언론 기사에서는 민산이 1981년 6월 9일 서울 외교구락부에서 출범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당시 시대 상황이나 핵심 인사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민산이 외교구락부에서 출범했다는 ‘상식’은 허구임이 드러난다.

우선 처음으로 민산이 결성된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군을 장악한 전두환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그리고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잔혹하게 무력 진압했다. 정통성이 부족했던 전두환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통치권을 다져나갈 수밖에 없었으므로, 박정희 정권 때보다도 훨씬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펼쳤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화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조직의 창단식이나 발대식을 갖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당시 YS와 함께 민주화투쟁을 했던 김덕룡은 전두환 정권의 눈을 피하기 위해 민산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첫 등반 날짜가 6월 9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83년도에 저하고 몇 사람이 안기부에 끌려가 48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으면서입니다. 요원들이 우리가 간 날이 6월 9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몰랐는데 그 사람들이 우리 생일을 찾아준 거죠. 우리는 기억도 못했고, 기록도 안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항시 잡혀갈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민산이 처음으로 북한산을 등반했던 날짜가 1981년 6월 9일이라는 사실은 안기부에 의해 밝혀졌다. ⓒ시사오늘
아이러니하게도 민산이 처음으로 북한산을 등반했던 날짜가 1981년 6월 9일이라는 안기부에 의해 밝혀졌다. ⓒ시사오늘

출범식은커녕, 첫 등반 날짜조차도 안기부(現 국가정보원)에 의해 알게 됐다는 게 김덕룡의 증언이다. 또한 김동영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신용선에 따르면, 처음 산행을 하게 된 것도 특정한 목적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산은 김동영 의원의 명륜동 한옥 자택 사랑방에서 태동했습니다. 정치 규제에 묶인 후, 항상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 속에 살았던 김 의원이 화(火)를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지인 몇 분이 산에나 다니면서 마음을 달래자고 해 인근 북한산 등을 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의원이 마침 연금이 해제된 YS에게 산에 가자고 권유했고, 자연스럽게 김덕룡 홍인길 최기선 등 YS 비서진들도 동참하게 됐습니다. 한두 사람이 동참하다 점점 참여 인원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민산이 외교구락부에서 출범했다는 주장은 왜 등장했을까. 아마도 민산과 민추협을 혼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민산을 통해 동지들의 뜻을 확인한 YS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3주년인 1983년 5월 18일, △언론 통제의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들의 복직 △정치활동 규제의 해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개헌 수용과 야당인사 석방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23일간의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그 결과 YS는 가택 연금 해제와 함께 민주화투사들의 각성을 이끌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범야권연대’ 격인 민추협을 출범시켰다. ‘암흑의 시대’에 알음알음 민주화투사들을 모아 산행을 하며 훗날을 도모했던 민산과 달리, 민추협은 처음부터 ‘정치적 결사체’로 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던 셈이다.

때문에 민추협은 외교구락부에서 동교동계 김녹영 전 의원의 ‘민주화투쟁선언문’ 낭독과 함께 정식 출범할 수 있었다. 아마도 민산이 외교구락부에서 출범했다는 몇몇 서적과 언론 기사는 민산과 민추협을 혼동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미래통합당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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