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건설 明暗②] ‘로봇’ 걷고, ‘드론’ 떠도…현장은 ‘非안전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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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건설 明暗②] ‘로봇’ 걷고, ‘드론’ 떠도…현장은 ‘非안전지대’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07.15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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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증가하는 건설현장 산업재해
재주는 곰이 부리는데…功은 누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국내 건설업계가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사태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고,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고자 '스마트건설'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도태되면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행보로 이어진 셈이다. 하지만 위기 의식이 너무 지나쳤을까, 현장에서는 여러 부작용들도 속출하고 있다. 스마트건설 기술 저변 확대가 오히려 현장노동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특정인들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엿보인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건설산업으로 가는 과도기, 스마트건설의 빛과 그림자를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대우건설 기술연구원이 운영 중인 드론관제시스템 ⓒ 대우건설
대우건설 기술연구원이 운영 중인 드론관제시스템 ⓒ 대우건설

최근 국내 건설업계가 스마트건설 기술 저변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변화이자, 브랜드 이미지 고급화와 사업 다각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다.

다만, 일각에서는 스마트건설의 어두운 이면을 주목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스마트건설 체계를 구축하는 과도기에서 소모품화된 일선 현장 노동자들이 물리적·사회적 안전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몇몇 업체의 경우 본사 또는 일부 경영진들이 자신들의 성과를 빛내기 위한 용도로 스마트건설을 악용하는 사례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3월 말 산업재해 발생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근무 중에 다치거나 숨진 노동자 수는 2만5784명으로, 전년 대비 5.82%(1419명) 증가했다. 이중 산업재해로 인해 숨진 노동자는 562명으로, 전년보다 3.69%(20명) 늘었다. 이를 야기한 건 건설업이었다. 건설업 산재 사망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20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추세는 올해 상반기 통계에도 지속될 전망이며, 나아가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지난 4월 SK건설의 부산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같은 달 말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로 40여 명 규모 사상자가 나왔고, 이후에도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대형 업체들의 건설현장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펼치고 있는 건설업 산재 사망 사고 감소 정책이 공염불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 주무부처는 지난해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강화 대책, 건설현장 추락사고 방지대책 등을 통해 건설현장 사망사고를 오는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며, 지난 4월에는 '건설안전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건설업 산재 사망자 수를 오는 2022년까지 250명으로 낮추겠다는 구체적 목표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임에도 건설현장 사망사고가 되레 증가세로 돌아선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스마트건설이다.

지난 4월 29일 경기 이천의 한 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 화재참사 현장. 사상자 대부분이 일용직 현장 노동자였다 ⓒ 뉴시스
지난 4월 29일 발생한 경기 이천의 한 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 화재참사 현장. 사상자 대부분이 일용직 현장 노동자였다 ⓒ 뉴시스

지난달 17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스마트건설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동욱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은 기조강연에서 "건설산업 패러다임이 ICT와 IoT 기반 초연결·지능화로 변화하고 있다. 미래 현장에서 스마트건설의 가치는 기존 대비 약 36% 커질 것"이라며 "스마트건설은 건설산업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다. 기존 건설산업이 비용절감, 생산 효율화 등에만 주력했다면 이제는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해결책 구축을 위한 다양한 스마트건설 기술을 융복합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마트건설에 대한 투자 목적은 경쟁력 제고 차원이 아닌 고객 가치 확대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과는 달리, 현재 건설현장에서 스마트건설은 기존 건설산업과 마찬가지로 비용절감과 생산 효율성 증대를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실제로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스마트건설 기술은 안전관리와 관련된 기술이 아닌 BIM(건설정보 모델링)과 드론이다. 이중 BIM은 충분히 현장 노동자 안전관리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추가 비용 발생 △업무 효율성 감소 △생산성 저하 △현장 안전관리자 전문성 부족 등을 핑계로 각 업체들이 현장에서 안전관리 부문 사용을 꺼리고 있는 실정으로 전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스마트건설 기술이 오히려 현장 노동자들을 안전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스마트건설 체계 구축이 본격화되면서 비대면 등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기술이 선제적으로 도입돼 정작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에는 소홀했으며, 스마트건설을 주도하는 대형 건설사들이 국내외 업황 부진과 포스트 코로나 대응을 이유로 기술 개발의 포커스를 인건비 절감과 신사업 추진에 맞추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현황분석에 따르면 건설산업 산재자 수는 2017년을 제외하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꾸준히 증가세다. 건설산업 사망자 수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늘었다. 물론, 건설업 사망자 수의 경우 2018년(485명) 감소세로 전환, 지난해에는 428명까지 줄어 최근 5년 중 최저치를 기록하며 개선된 모양새를 보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의아한 대목이 발견된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9년 전체 건설업 산재 승인 건수는 2만7126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는 1만1037건으로 전년 대비 6000건 이상 급증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1%다. 보통 건설산업 재해는 5인 미만, 30인 미만 등 소규모 사업장에서 주로 발생하며,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산재자와 사망자 수가 적은 편이다. 지난해 대규모 사업장에서 산재가 대폭 증가한 건 이례적 현상이라는 의미다. 이는 건설 기술은 발전해도 산재와 사망사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술 발전이 재해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각 기업들이 스마트건설을 비용절감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이나 효율성 향상이 스마트건설의 장점인데, 굳이 그 반대인 단점을 가진 안전관리에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스마트건설 체계가 완전히 구축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과도기에 있고, 발전된 기술이 점진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점차 일종의 소모품으로 취급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pixabay
ⓒ pixabay

스마트건설의 그림자는 일선 건설현장에서만 엿보이는 게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기술탈취다. 일반적으로 건설업하면 떠오르는 원청의 갑질은 단가 후려치기, 추가 비용 전가, 대금 지연 지급, 이자 미지급 등 하도급 갑질이나, 기술탈취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는 스타트업·중소기업들도 만만치 않다. 계약 조건으로 하청업체에게 기술 공유를 요청하거나, 계약 체결 전 기술 자료를 빼내 기술탈취 행위만 하고 본계약은 맺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같은 사례는 최근 스마트건설 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더욱 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한 대형 건설사가 재하청격 업체로부터 환기설비 관련 전문기술 자료를 탈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서는 등 업계에서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또한 특허청이 지난 3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아이디어 탈취행위'가 새롭게 부정경쟁행위로 추가된 이후 관련 신고 건수가 가장 많이 접수된 업종은 IT(11건, 32%)로 집계됐으며, 2위는 건설(6건, 18%)이 차지했다. IT업 못지않게 최근 건설업에서 스마트기술 관련 논의가 활발하고, 그만큼 하도급거래 과정에서 기술탈취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재주 부리는 사람 따로, 공(功) 챙기는 사람 따로인 건 개별 건설사 안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스마트건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추진하는 신사업에 대한 공로가 특정 경영진에게만 집중되는 것이다. 사내에서는 이로 인한 사기 저하를 염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내 굴지의 한 대형 건설업체는 수년 전 그룹 오너일가 일원을 신사업 총책임자로 임명했다. 이후 해당 인사가 나오기 전에 추진된 모든 신사업과 관련 스마트건설 기술 개발의 성과가 그에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는 이를 발판으로 고속승진에 성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해당 건설사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그가 신사업 총책임자로 취임하기에 앞서 '사업의 내용'에 포함된 신사업이나 이미 연구개발 실적으로 명시된 기술들 중 현재 그의 공으로 평가되는 게 일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임직원들의 성과가 오너일가의 성과로 치부되는 사례는 비단 건설업뿐만 아니라 재벌 대기업 계열 업체들 대부분에서 업종을 불문하고 나타난다. 문제는 건설업계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인 스마트건설이 특정인의 공명을 위해 이용되는 것 자체가 특정 건설사는 물론, 업계 전반에 잠재적 리스크로 다가올 수 있고, 임직원들의 사기에도 지장을 줄 여지가 상당하다는 데에 있다.

앞선 대형 건설업체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건 분명 사실이다. 비합리적인 인사이동이 많아서 개인 커리어를 고려하면 불이익이 많기 때문"이라며 "그런 와중에 다들 열심히 노력해 일군 성과가 오너일가에게 집중되는 걸 보고 있으면 가끔씩 허탈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다른 업체로 이직한들 여기보다 나을 거라는 확신도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다음편에서 계속〉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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