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메신저 공격, 무의미한 ‘소음’이다
[주간필담] 메신저 공격, 무의미한 ‘소음’이다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7.19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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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메신저 공격하면 百戰百勝…듀카키스와 나경원의 사례
메신저 공격, 필요악이 아닌 절대악…건강한 논쟁 필요해
與, ‘볼턴 매파’ 주장 말고 회고록 진위여부에 치중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메신저의 평소 사고방식이나 사적인 영역을 비난하는 것은 비겁하지만 편리한 방식이다. 대중들이 메시지의 진위여부까진 가늠하지 못하도록 사고체계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시사오늘 문민지
메신저의 평소 사고방식이나 사적인 영역을 비난하는 것은 비겁하지만 편리한 방식이다. 대중들이 메시지의 진위여부까진 가늠하지 못하도록 사고체계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시사오늘 문민지

언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메신저를 공격하면 된다. 메신저(발화자)의 평소 사고방식이나 사적인 영역을 비난하고, 나아가 그의 전문성을 의심하게끔 공정성과 편향성 문제까지 제기한다면 금상첨화다. 대중들이 메시지의 진위여부까진 가늠하지 못하도록 사고체계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비겁하지만 아주 편리한 방식이다.

그 필승법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메신저에겐 도덕적 흠결이 있다. 그러므로 사고방식도 편향적일 것이다. 결론, 그는 전문성이 없으며 그의 주장엔 일리가 없다.’

 

선거, 메신저 공격하면 百戰百勝


이 전략이 선거에서 활용된다면 어떨까.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 W. 부시는 1988년 미국 대선에서 이 같은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 부시 측은 ‘듀카키스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다’, ‘듀카키스의 아내가 성조기를 태웠다’는 식의 소문을 퍼뜨려 그의 애국심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듀카키스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면서 이를 무시했으나, 문제는 당시 미국인들의 최대 관심사가 국방 문제에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부시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같은 전략은 한국에서도 차용됐다. 지난 2011년 하반기 서울특별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제일 괴롭혔던 것은 ‘1억 피부과 논란’이었다. ‘나경원, 억대 피부클리닉 출입 논란’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나는 꼼수다’ 등 인터넷 방송과 몇몇 언론들은 서울시장 선거와 관계없는 나 후보의 사적 영역을 강조하며 그를 비난했다. 

당시 한 언론은 칼럼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정’의 책임자가 되겠다고 한 장본인인지라 여론의 화살은 곧장 그녀를 겨누고 있다”면서 “연회비 1억 피부과와 사회적 약자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피부 관리를 하자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나 이들을 위한 실천은 애초부터 거의 힘들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라는 흑색논리까지 서슴지 않았다. 

해당 논란으로 인해 나 후보의 ‘부자 후보’ 이미지는 강화됐고, 자연스레 상대 후보는 ‘서민’으로 규정됐다. 나 후보의 복지 공약은 시민들에게 제대로 검증되는 과정도 거치지 못한 채 폐기돼야 했다.  

 

메신저 공격, 필요악이 아니라 절대악이다


‘볼턴 회고록’을 비판하는 여당 의원들은 오로지 볼턴 전 보좌관을 향해 ‘매파(親전쟁 보수강경파)’라고 비난할 뿐이다. 공론장에서 이같은 토론 태도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뉴시스
‘볼턴 회고록’을 비판하는 여당 의원들은 오로지 볼턴 전 보좌관을 향해 ‘매파(親전쟁 보수강경파)’라고 비난할 뿐이다. 공론장에서 이같은 토론 태도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뉴시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지는 것처럼 보이기 싫을 때, 또는 세(勢)나 표를 확장하기 위해서, ‘종북’·‘빨갱이’·‘우익’·‘일베’ 등의 낙인을 찍고 “말을 들어볼 필요조차 없다”고 일축하는 것은 메시지의 오류를 하나하나 밝히는 것보다 쉽다. 고작 한 문장으로 메신저는 정상적인 반론이 불가능한 그로기 상태가 된다. ‘나는 빨갱이/일베가 아니다’를 입증하는 데 쓸데없이 더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하고, 그의 논증은 정상적인 검증 과정을 거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에 따라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공격의 대상은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 속에 담긴 거짓과 오류가 돼야 한다. 정치인은 취미생활로 ‘키배(키보드 배틀, 댓글싸움)’를 벌이는 일반 시민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치열하게 토론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데 기여해야만 하는 인물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볼턴 회고록’을 대하는 여당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들은 볼턴 전 보좌관을 한반도 평화를 망치려 드는 ‘매파(親전쟁 보수강경파)’로 비난하면서도, 회고록 내용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당 의원들은 일제히 볼턴을 향해 “허접한 매파”, “미국 군사 강경파”, “네오콘”, “무기 장사”, “헛소리”등의 수위 높은 표현을 사용하며 비난하지만, 정작 발언 내용의 진위 여부를 밝히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이에 우파 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더욱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메신저 공격으로 인해 국민이 두 갈래로 나뉘어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형국을 만든 단적인 예다.

정치 영역은 이분법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진리는 확언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흑백 논리를 펼치면서 독선적 자세를 유지하면, 아무 것도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메신저 공격'이 아닌 '메시지 비판'은 나라를 건강하게 한다. 그러나 그 반대는 말의 과잉이자 무의미한 소음 생산일 뿐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더불어민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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