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기본소득과 부동산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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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기본소득과 부동산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7.21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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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부의 재분배’ 아닌 ‘노동의 종말’에서 출발해야
노동의 종말, 기업 생산성 증가와 ‘노동 유연화’로 뒷받침해야 
기본소득·부동산 문제에서 드러난 정부여당의 舊운동론 시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정부 여당의 기본소득 입장과 부동산 정책을 보면 ‘자본’을 대하는 정부 여당의 태도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기업과 자본가는 악의 축이다’라는 구시대적 586 발상을 아직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시사오늘 김유종
정부 여당의 기본소득 입장과 부동산 정책을 보면 ‘자본’을 대하는 정부 여당의 태도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기업과 자본가는 악의 축이다’라는 구시대적 586 발상을 아직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시사오늘 김유종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화두가 된 지 약 두 달이 흘렀다. 아직 논의는 크게 진전된 것이 없다. 미래통합당 측은 ‘화두 던져놓기’에 그쳤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경기지사 외엔 “취지는 이해하지만 부작용도 살펴봐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해둔 상태다.

여권의 ‘대권 잠룡’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부겸 전 의원은 지난 9일 당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소병훈, 허영 등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기본소득 법제화에 나섰다. 민주당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의중을 내비친 셈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사상 최초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대선 정국’으로 전국이 포퓰리즘 공약에 휩쓸리기 전에 기본소득을 논하려면 2020년이 적기(適期)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정부 여당 또는 진보 정당들의 시각엔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기본소득, ‘부의 재분배’ 아닌 ‘노동의 종말’에서 출발해야


기본소득 논의를 ‘분배’에서 출발한다면 누구도 쉽게 설득할 수 없다. ⓒ뉴시스
기본소득 논의를 ‘분배’에서 출발한다면 누구도 쉽게 설득할 수 없다. ⓒ뉴시스

먼저, 기본소득을 왜 도입해야 하는지 ‘출발점’의 문제다. 

정부 여당은 기본소득제야 말로 ‘소득양극화’를 완화시킬 대안, 즉 ‘부의 재분배’ 제도로 여긴다. 

민주당 이규민 의원은 지난 10일 SNS를 통해 “현재 많은 선별적 복지제도는 장기적으로 계급구조의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다”면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했다. 조세율을 높여 기본소득을 시행하면 ‘소득 양극화 타개’ 및 ‘계급구조 개선’이 된다는 의견이다.

이는 더불어시민당(민주당 비례대표 위성정당) 출신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시각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기본소득은) 사회의 부를 대다수 국민들이 함께 누리도록 하는 제도다. 이젠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사회의 부가 계속 쌓여 간다. 이 쌓여있는 부를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기본소득을 통해 모두가 풍요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용혜인 의원, 지난 2일 〈시사오늘〉과의 인터뷰 

그러나 기본소득 논의를 ‘분배’에서 출발한다면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우선 증세의 대상이 되는 소득 상위 계층과 일부 중산층의 조세 저항에 강하게 부딪힌다. 또한 4대 보험이나 사회서비스 및 기타 복지제도, 즉 선별적 복지의 주 대상이 되는 저소득층에서도 반발할 수 있다. 

요컨대 찬성 측이 주장하는 ‘부의 재분배’는 선별 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 이는 ‘왜 기본소득이어야만 하느냐’는 의구심을 채워주지 못한다. 끊임없는 찬반 논의 끝에 결국 표의 유불리만 따지다가 공중에서 소멸될 가능성만 높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요구하려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 ‘노동의 종말’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동임금으로 먹고 산다’는 일반적인 경제 패러다임을 시대에 맞춰 전환시켜야 하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의 1994년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피곤도 모르고 임금도 필요 없는 기계들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는 구절은 이미 현실이 됐다.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제조업·소매업·서비스업 등 모든 분야의 일자리는 대량으로 사라지고 있다. 현재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아마존·구글·페이스북 등의 대기업은 일반 제조업에 비해 고용률이 5분의1에 그친다. 

심지어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은 보건 방역의 위기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집약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방식은 특정 위기에 취약하며, 미래에 지금처럼 ‘셧 다운’ 되지 않기 위해선 무인화(AI)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과 무인화 기업은 멀지 않은 미래요,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다. 

 

노동의 종말, 기업 생산성 증가와 ‘노동 유연화’로 뒷받침해야 


기본소득 논지를 ‘노동의 종말’에서 시작하면 전개 양상도 달라진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인간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기 위해, 기업은 인간을 해고하거나 최소 비정규직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본지와의 만남에서 비정규직 및 ‘플랫폼 노동’이 노동시장을 점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있었지만, 포스트 코로나에는 그게 더 앞당겨질 거다. 다양한 회사와 고객들을 상대로 일하는 비정규직 형태의 플랫폼 노동자들이 더 많아지게 된다.” -안철수 대표, 지난 8일 〈시사오늘〉 인터뷰

이때 국가는 기본소득을 통해 국민들의 사회안전망을 보장해주고, 기업들에겐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유연화를 뒷받침해줘야 한다. 노동유연화를 통해 무인화·자동화 시대에 발을 맞추고, 노동의 불안정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이러한 추세를 외면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기본소득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오로지 ‘기업만 때려잡으면 돈이 나온다’는 발상이다. 기업 생산성 높이는 일 없이 정규직 비율과 노동임금을 상승시키면서 기본소득 금액도 높여 나가겠다는, 마치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와 같은 허무맹랑한 주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부동산 규제에서 드러난 정부여당의 舊운동론 시각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을 보다보면 ‘자본’을 대하는 정부 여당의 태도에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을 보다보면 ‘자본’을 대하는 정부 여당의 태도에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뉴시스

물론 정부 여당의 기본소득을 향한 ‘애매한 태도’는 신중론일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을 보다보면 ‘자본’을 대하는 정부 여당의 태도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기업과 자본가는 악의 축이다’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아직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솟구치게 된다.

아래는 이를 뒷받침해 주는 김태년 원내대표의 발언이다.

“서울·수도권에서는 수십 년 동안 돈을 모아도 집을 살 수가 없다. 집 가진 사람도 대도시에서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을 보고 박탈감을 느낀다. 갈 곳 없는 유동자금은 집값 상승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주택시장이 기획과 투기, 요행으로 가득 차서는 안 된다. 주택을 볼모로 한 불로소득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처럼 현 정부는 실거주 외의 소유 주택을 ‘순수 자산’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다주택자들을 투기꾼이라며 비난하고, 세금으로 협박하며 ‘당장 집을 팔아라’는 시그널을 계속해서 전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도권 집값은 상승하고 있으며, 기업들의 유동성 자금은 여전히 부동산으로 향하는 모순만 지속될 뿐이다. 

한때 운동권의 성서(聖書)와도 같았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따르면,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가치는 늘 평가 절하돼 왔다. 따라서 과거 ‘386 운동권’의 노고는 산업화 시절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하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어쩌면 이들에게 목전에 다가온 ‘노동의 종말’은 ‘한낮의 벼락’같은 일일 지도 모른다. 이들이 순결하게 여기는 ‘노동’이 더 이상 재화를 생산하지 못하고, 신성한 ‘노동’을 이들이 기피했던 불로소득 형태의 ‘기본소득’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패러다임 대전환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2000년 발행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386세대는 ‘억압받는 노동자’에 대한 부채의식과 감정 동기화 비율이 높았다. 1960년대 이후 군사 정부의 ‘경제개발 우선정책’이 낳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라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으로 뭉쳐 있다는 결론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기본소득과 부동산 문제 인식 기저에는 자본가·기업과 서민의 ‘대척 관계’가 규정돼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지속가능성이 아닌 단순한 반감(反感)만을 원동력 삼아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단점도 제기된다. 

그러나 친(親)서민을 표방하는 정부의 기대와 민심은 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서울신문〉 의뢰로 지난 14~15일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자는 43.5%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30.4%보다 13.1% 포인트 많았다. 동시에 기본소득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45.2%로 찬성(37.6%)보다 다소 높았다. 어쩌면 국민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해당 여론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 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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