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임의적 국민투표’를 위한 원포인트 개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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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임의적 국민투표’를 위한 원포인트 개헌이 필요하다
  • 신용인 제주대학교 로스쿨 교수
  • 승인 2020.08.0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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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정의당 등 군소정당 스위스 모델 참작 ‘권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신용인 제주대학교 로스쿨 교수)

지난 7월 30일 민주당은 단독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 법률안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토위 의결 후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 통과까지 불과 사흘밖에 안 걸릴 정도로 군사 작전하듯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이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8월 4일 본회의에서 나머지 부동산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미래통합당은 거대 여당의 이러한 입법 독주에 속수무책이다. 난동 수준의 입법이라고 비판만할 뿐 뾰족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176석 거대여당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 민주당은 4년 내내 여권이 원하는 입법과 정책을 얼마든지 독단적으로 강행할지 모른다.

​한편 군소 정당인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존재감마저 위협받고 있다. 거대 양당 체제 하에서 언론의 시선이 민주당과 통합당의 행보에만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섭단체의 무력감이 두 당을 짓누르고 있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필자는 스위스의 임의적 국민투표제가 떠오른다. 도입 경위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1848년 연방헌법을 제정할 때 대의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했고 국민투표로는 헌법 개정을 위한 필요적 국민투표만 두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지배세력인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이 자신이 원하는 입법과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 가톨릭 세력은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해 임의적 국민투표 도입을 요구했다. 이에 1874년 연방헌법의 전면개정을 통해 임의적 국민투표가 도입됐다. 이처럼 다수세력의 일방통행에 제동을 거는 수단으로 도입됐다는 점이 특색이다.

​스위스의 임의적 국민투표 요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연방의회의 법률안 등을 반대하는 경우 해당 법률안 등이 공포된 날로부터 100일 이내에 5만 명 이상의 서명으로 국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다.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해당 법률안 등은 폐지된다.

​2008년 스위스 연방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871년부터 2008년까지 사이에 임의적 국민투표에 회부된 안건은 모두 162건이었는데 그중 89건이 가결되었고 73건은 부결되었다. 임의적 국민투표에 회부된 연방의회의 법률안 등 중 절반 이상이 폐지된 것이다.

높은 국민투표 가결률은 스위스의 정치세력 간에 협상과 타협을 촉진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만일 다수세력이 특정 법률안 등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려고 하면 반대세력은 국민투표를 추진하려고 한다. 따라서 다수세력은 국민투표에 의해 번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반대세력과 충분한 협상과 타협에 주력하게 된다. 스위스의 임의적 국민투표제가 스위스의 정치체제를 승자독식의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협상과 타협에 의한 합의제 민주주의로 나아가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개정을 위한 필요적 국민투표 외에 임의적 국민투표를 두고 있기는 하다. 헌법 제72조의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민투표 회부권자가 대통령뿐이고, 그 대상도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한정돼 있어 스위스처럼 정치세력 간 협상과 타협을 촉진해 합의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국민 투표 회부권자를 대통령에 한정하고 국민을 제외하는 것은 국민주권의 실질적 구현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도 거대 여당의 일방적 독주를 국민이 직접 견제해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합의제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반대하는 국민 일정 수 이상(예컨대 유권자 100만 명 이상)이 국민투표를 발의하는 경우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하는 내용을 헌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

통합당, 정의당, 국민의당이 '임의적 국민투표'를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하는 것을 제안해 본다. 이때의 임의적 국민투표는 스위스의 임의적 국민투표처럼 국민이 직접 다수당의 입법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형태의 국민투표를 말한다. 세 당이 임의적 국민투표를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할 경우 민주당도 이를 거부할 명분은 없다고 본다.

​만일 그런 원포인트 개헌이 이뤄지면 임의적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이 직접 거대여당의 입법 독주를 통제할 수 있어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음은 물론 합의제 민주주의로 한 발짝 더 내딛게 되어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대결정치체제를 화합정치체제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통합당, 정의당, 국민의당이 스위스의 사례를 참작해 임의적 국민투표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기 바란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자의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신용인 제주대 로스쿨 교수

 

신용인 제주대 로스쿨 교수

現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전임교수
現 변호사

1966년 제주 출생
고려대학교 법학 학사
동 대학원 법학 석사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사법시험 합격
부산지방법원 판사

저서 마을공화국, 상상에서 실천으로
저서 <생명평화의 섬과 제주특별법의 미래>
저서 <참사람 됨의 인성 교육>
공저 <헌법소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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