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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山 되짚기(14)>홍인길 청와대 전 총무수석
˝YS, 공천 돈거래 얘기에 노발대발˝
"83년 단식 때 YS, 죽기를 각오했다…총칼로 죽인다고 협박하면 배 내놓을 사람"
2012년 01월 18일 (수) 윤종희 기자 yjh_1120@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종희 기자)

민주산악회(민산) 되짚기 14번째 주인공은 홍인길 청와대 전 총무수석이다. 홍인길 수석은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친척 관계다. 홍 전 수석 할머니와 YS의 할아버지가 남매간으로 홍 전 수석과 YS는 6촌간이다. 그가 살던 집도 YS의 생가 바로 뒤편에 있다. 이처럼 YS와 가까웠던 탓인지 홍 전 수석으로부터 YS와 관련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는 2011년 12월 7일 부산 협성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시사오늘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취재진에게 홍 전 수석은 "무얼 타고 내려왔느냐"고 물었다. "KTX를 타고 내려왔다"고 답하자 "요새 고속철도가 자주 지연되는데 미안하다고 방송으로 사과하는 걸 듣지 못했다. 방송으로 이해해달라고 하는 걸 못 들어봤다"라는 경상남도 특유의 퉁명스런 말투가 돌아왔다. 오래전 야당 정치인으로 정부를 비판할 때도 그는 이처럼 퉁명스런 말투로 시작했다. 그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 했다.  홍 전 수석 성격의 한 면을 보여주는 '칼춤 사건'부터 물어봤다.

단식투쟁 중인던 YS 사라지자 칼부림

-YS가 단식투쟁을 하다가 서울대 병원으로 강제 이송되자 칼을 들고, 경찰 간부에게 ‘죽이겠다’고 한 사건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정말 살인을 생각하고 칼을 든 것입니까.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전에 서울시경국장이 강제 이송 같은 건 안 하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아마도 권력기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안 맞아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저는 만일 우리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가만히 안 있는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날 YS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병원차가 쉭하고 지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병원차를 보니 양쪽에 무슨 병원이라는 로고가 없는 겁니다. 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으로 뛰어 올라가니 장학로는 없고 일하는 아주머니는 지금 집에 남자는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혜숙이는 아버지 따라 같다고 하고."

서울대학 병원으로 강제 이송된 1983년 5월 25일은 YS의 단식 8일째였다. 상도동 집사였던 장학로는 그날 오전 경찰에 강제로 끌려 나가 외부에 억류됐다. 집에는 손명순 여사, 막내딸 혜숙, 운전기사 이충일 씨 만 있었다.

당시 상도동 부근에 살고 있던 홍인길은 “총재를 강제 이송시킬 것 같다”는 김덕룡 비서실장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YS 집으로 달려갔다.

도착하니 경찰병력이 집을 에워싸고 있었고, 대문 앞에는 앰뷸런스가 보였다. 그는 집안으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앰뷸런스가 사라지고 난 후 집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그의 시야에서 YS가 보이지 않자 이성을 잃었다. 홍인길은 전화연락을 하기 위해 인근 정육점으로 달려갔는데 거기서 안기부 고위 간부와 맞닥뜨렸다.

"사실 그 때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뭐라고 하는지 아무 것도 안 들렸습니다. 집에서 후다닥 내려와서 보니 제가 알고 있던 안기부 친구가 동네 정육점에서 전화를 하는데 '상황 끝났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 때 그 가게 한 편 도마 위에 40cm 정도 되는 칼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걸 집어 들고 '이 놈 새끼 목아지를 치겠다. 사실대로 말 안 하면 죽인다'고 했습니다."

홍인길은 일단 YS의 행방을 파악하는 게 가장 급했다. 만약, YS 행방을 파악 못하고 자신도 붙잡혀 간다면 모든 게 끝나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구두 뒷축 날아갈 정도로 극렬히 저항

"저는 그 사람 팬티 끈을 뒤에서 꽉 잡아 쥐었습니다. 그렇게 해야지 앞으로 못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면 급소에 압박이 가해지거든요. 그런데 순식간에 전경들이 둘러쌌습니다. 제가 잡고 있는 친구는 '서울대 병원으로 모셨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걸 그대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전경들이 제게 다가오면 발로 막 차버렸습니다. 불쌍한 애들만 맞았지요. 그래서 제가 경찰 간부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경찰 간부가 저보고 칼을 놓으라고 해요. 제가 '칼 놓으면 연행하려고 그러느냐. 만약 나를 연행하면 한 놈은 잡아서 진짜 죽인다'고 소리쳤지요. 그랬더니 '저희들이 모실테니 칼 내려놓으라'고 계속 그래요. 그러다가 제가 칼을 놓고 쌀 집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봉고차 쪽으로 걸어가니까 경찰들이 따라 오더라구요. 제가 '오지마라. 서라'고 하면서 쌀집에 있는 저울추를 집어서 던졌더니 경찰들이 화들짝 놀라며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시사오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홍 전 수석 몸 전체에 흐른 긴장감은 극한점까지 도달했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봉고차를 타러 갔는데 자꾸 몸이 뒤로 넘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몸에 힘이 없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까 신발 뒷축이 다 없어졌더라구요. 발로 차다보니까 그게 다 날라간 것입니다. 집에 가서 신발 갈아 신고 일단 노량진 경찰서에 가서 집권당 사무총장 권익현 씨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권익현씨가 '정말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당시 노태우 내무부 장관과 사인이 안 맞은 것 같아요. 권익현 씨가 경찰에게 제가 병원으로 빨리 가도록 지시했고 그렇게 해서 서울대병원에 갔습니다. 병실에 들어가니까 혜숙이하고 둘이서 있더라구요." YS는 그날 서울대 병원 12층 VIP 병동으로 이송됐다.

YS 단식투쟁 중 극심한 복통 호소

-YS가 정말 아무 것도 안 먹었나요.

"그 양반이 죽기로 각오했습니다. 저도 밥을 못 먹었습니다. 현철이가 오면 잠깐 나가서 먹었습니다. 그러면 냄새 안 나게 하려고 깨끗이 입을 씻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온 뒤 3일 후에 YS가 복통으로 죽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 때 김광호 마취과 박사가 지나가는 말로 '관장은 했을텐데'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안했다고 하니 놀라더라구요. 그래서 좌약을 넣고 관장 했더니 좁쌀 같은 새까만 게 대여섯 개 나왔을 뿐입니다. 그게 꽉 막아서 복통을 일으킨 것입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단식이 ‘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 측의 체크결과 YS는 물과 소금만으로 단식을 계속, 건강이 상당히 악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 정권과 병원 측이 단식중단을 요구했지만 YS는 이를 거부, 단식을 계속했다.

"김수한 추기경은 기도 하다가 당신이 살아야 민주주의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서야 겨우 '정치인 식사문제'가 신문에 났는데 당시엔 언론도 제 구실 못할 때이고. 그 때 기자들이 삐삐 차고 올 때인데 동아일보 기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진짜 기자인가 의심스러워서 제가 동아일보에 연락해서 확인까지 했습니다."

단식 10일째인 5월 27일 권익현은 병실로 김영삼을 찾아와, 단식을 중단하고 외국에 나갈 것을 권유했다. 김영삼은 권익현의 제의를 일축했다. 그러자 단식 12일째인 5월 29일 권익현은 또다시 병실을 찾아가 연금이 해제됐음을 알렸다. YS는 연금해제를 위해 단식을 한 게 아니므로 계속해서 단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무렵 YS의 단식투쟁이 국내는 물론 해외로 알려지면서 국내외 인사들이 동조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단식 17일째인 6월 3일 병원 측은 최소한의 응급조치를 거부할 경우 생명이 위험하다고 경고했고, 병원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이 생명보존을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김영삼은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단식 23일째인 6월 9일 김영삼은 단식을 중단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는 당시 비서실장이던 김덕룡이 대독했다.

“나는 부끄럽게 살기위해 단식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앉아서 죽기보다 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단식을 중단하는 것입니다.…나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을 알렸을 뿐입니다.”

이 같은 YS의 단식은 전두환 군사독재에 침묵했던 민주인사들의 양심을 깨우는 기폭제가 됐고, 재야 정치인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YS, 국민여론에는 꼼짝 못해

-일각에서는 YS가 김대중 전 대통령(DJ)에 비해 덜 탄압받았다고 하는데.

"YS가 초산테러를 당했고 국회에서도 제명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YS를 건드려서 좋은 게 없었습니다. 부마사태가 나지 않았습니까. YS는 더 이상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YS는 총칼 가지고 죽인다고 하면 배를 내놓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국민여론에는 꼼짝 못하는 사람입니다. '국민여론이 이렇습니다'하면 꼼짝 못했습니다. YS는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깨끗한 대통령입니다.YS가 40대 기수론을 주장했는데, 좌우지간 치고 나가는 데는 최고입니다. 개헌서명 천만 명을 받자고 한 것도 YS 아니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생각하는 차원이 다릅니다. 거짓말 안하고…"

   
▲ 김영삼 전 대통령과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자료=홍인길 전 수석 제공

YS·DJ, 둘이서 만나면 항상 YS가 이겨

홍 전 수석은 1990년 3당 합당 때 YS를 떠나려는 동지들을 눈물로 막아 '가신의 눈물'이란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여년이 지난 지금 YS의 3당 합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3당 합당은 그 시대의 흐름이었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야합이라고 비판을 하고는 했는데, 국민이 야합한 사람을 어떻게 대통령으로 만들었겠습니까. 시대가 선택한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YS가 그 골을 풀었습니다. 군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당시 야권에는 김영삼 김대중 등 양대 산맥이 있었으니까 (하나 되기 어려웠고 그 바람에 군사정권이 연장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런데 YS와 DJ가 둘이서 만나면 항상 YS가 이깁니다. YS는 별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하니까 꿀릴 게 없습니다. DJ가 미국 갔다 와서는 YS에게 양보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그는 그러면서 YS가 사람을 잘 믿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일화를 소개했다.

"14대 대선 때 정주영 현대 회장이 YS를 도와준다고 했데요. 그런데 정주영 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했습니다. 그러다 정주영 회장이 국민당 총재가 돼서 YS와 얘기를 나눴어요. 그 때 제가 YS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정 회장이 '총재님 걱정하지 마세요. 애들하고 장난도 못 치나요'라고 했데요. YS가 그 얘기를 믿더라구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전 회장은 1992년 초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제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전국구의원으로 당선됐다. 같은 해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YS와 경쟁했다. 홍 전 수석에 따르면 YS는 이런 정 전 회장이 대선에서 자신을 끝까지 도와줄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YS, 정주영이 도와줄 걸로 끝까지 믿어

-YS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같은 수끼리는 칼을 안 빼는 게 맞습니다. 서로가 상처를 입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功)과 과(過)를 상쇄해야 합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욕하면 안 됩니다. 손잡고 함께 가자고 해야 합니다. 제가 YS 만나서 '빠삐용' 얘기를 해줬습니다. 건배사인데 '모임에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용서하자'는 것입니다."

-YS가 내년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YS가 지지후보를 밝히면 안 됩니다. 국가의 위난이 있을 때 '이 건 아니다' 그 한마디에 나라가 평정될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DJ에 대한 평가는요.

"누구의 비서로 있던 사람이 어느 누구를 평가하는 건 잘못입니다. 역사가 천년 후에 기록할 것입니다."

민주화 보상은 2중 보상

-YS계 인사들 중에는 DJ는 집권 후 자기를 도왔던 사람을 잘 챙겨줬지만 YS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리는데. 또 DJ계는 민주화보상도 받았는데 자기들은 그렇게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 건 이중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미 민주화 돼서 정권 잡아서 국회의원도 하지 않았습니까. 공기업에도 가고 했습니다. 이미 민주화 보상 받은 건데 2중으로 받은 것이죠. 정무직이라는 자리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YS가 집권하고서도 각자 능력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자리로 가고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다 했다고 봅니다."

이날 홍 전 수석은 YS가 공천과정에서 돈이 오고 간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 한 얘기도 들려줬다.

"(13대 총선 당시에) 박종률이 서울 서초구에 나왔는데 구로에 나가기로 했던 김덕룡이도 서초에 나온다고 했어요. 덕룡이는 서초를 안 주면 탈당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래서 박종률에게 서초는 포기하고 전국구를 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박종률이 (지금까지 선거운동에 들어간 돈) 5천만 원만 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양천구 출마를 노리는 재력가인 박수복이라는 사람에게 양천에 공천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돈을 받았는데 양천에는 김무성이도 가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중앙일보사 빌딩에 샘이라는 다방이 있었는데 박수복이 불러서 5천만 원 받아서 박종률에게 줬습니다. 그렇게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무성이가 양천에서 공천을 못 받아서 YS에게 일련의 사건을 보고 한 것 같아요. 어느 날 YS가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 겁니다. 들어갔더니 막 화를 내요. 그래서 제가 '왜 그런지 말을 좀 하소' 했더니 5천만 원 얘기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믿고 니를 둘째로 믿었는데 니가 돈 5천만 원 먹었다면서'라고요. 그래서 제가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에 '그럴거면 앞으로 총재가 다 하소. 그렇게 잔잔한 것 가지고 하나하나 얘기해야 한다면 총재가 그럼 다 하소'라고 했습니다. YS는 제 설명을 듣고 '그런 식으로 정리했으면 정리했다는 얘기를 왜 안했냐'고 그랬어요. 나중에 제가 박종률에게 시켜서 돈 받은 얘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홍인길은 박종률이 그 사건으로 애를 많이 먹였다고 털어놨다.

“박종률은 배가 많이 나와 우리가 ‘분복’이라고 불렀어요. 내가 박종률을 만나서 ‘분복, 니 돈 받은 것 총재한테 얘기 안 할 거야?’해도, 자기가 돈 받은 걸 총재(YS)한테 얘기를 안 하는 겁니다. 나중에 한참 지난 후에 일본에 가서 털어놨다고 해요. 그래서 오해가 풀렸죠.”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에서 부산 출마를 권유했는데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상 그 때 정계은퇴 선언을 했는데.

   
▲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시사오늘
"허주(김윤환)가 돌아가셨을 때 상가에 다녀왔는데 그 때 마음을 굳혔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나이가 들면) 정치 그만두고 고향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앙당에 나이든 사람이 왔다갔다하는 건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이중재 선배가 (나이가 들어서 중앙당에 나타나는 걸 보고) 제가 그러지 말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 선배가 '아들이 공천되면 일절 안온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했습니다. 오봉(이중재)이 참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머리도 잘 돌아가시는 분이고."

-그래도 명예회복 차원에서라도 출마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때가 지나면 그만둬야 합니다. 그 때 여론조사 해보니 결과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내자에게 물어보니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사람들이 아쉬워 할 때 그 때 그만둬야 합니다. 버리는 것도 잘 버려야 합니다. 잘 못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적재적소에 버리면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때를 놓쳐서 측은하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나는 행복합니다."

홍 전 수석은 현재 협성문화재단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단은 장학사업을 비롯해 많은 사회 공헌 사업을 하고 있다.

-민주산악회 시발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그 때 사람 모으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산으로 가는 방법뿐이 없었습니다. 김동영 형님이 명륜동에서 사람들 모아서 도봉산에 가고 한 게 시초입니다. 처음에는 몇 사람 안됐습니다. 복진풍 모내기는 그 뒤에 있었습니다. 김동영 형님 집이 민산 시발로 보는 게 맞습니다. 주로 북한산에 갔습니다. 그런데 민산에 군 별자리 회원이 들어오면 바로 군사정권에서 빼가서 취직을 시켰어요. 군 별자리는 몇 번 나오다가 그런 식으로 탈퇴가 됐죠. 한 해군 제독도 도고온천 사장으로 갔는데 나중에 내려오라고 해서 YS와 같이 간 적도 있습니다."

서청원이 박근혜 위하는 건 YS에게 배워

-서청원 전 의원도 민산에서 배웠는지 청산회를 크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지금 청산회 하는 것도 민주산악회에서 배운 것입니다. 서청원이도 중간에 들어와서 편집인 하다가 남대문 경찰서에 잡혀가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서청원이 친박(박근혜)인 것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요.

"어느 누구를 위해서 열심히 하는 건 좋은 겁니다. 사람 배신하면 안 된다는 걸 오야붕(YS)에게 배운 겁니다. 도와준다고 했는데 안 도와주면 그게 문제 아닙니까. YS가 약속은 잘 지킵니다. 특히 YS 밑에서 배운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철저합니다."

-YS가 민산을 해체한 것에 대한 평가는요.

"민산을 그대로 놔두면 잘 못 될 수도 있었습니다. YS 아니면 누가 땡처리 해버리겠습니까. 하나회를 누가 척결하겠습니까. 금융실명제 누가 할 수 있었겠습니까. YS는 돈 10원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노태우 자서전, 손주환이 쓴 듯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3천억 원을 YS에게 지원했다고 했는데요.

"제가 얼마 전에 목욕탕에 가서 들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그 XX가 미친X 아니가' 하더라구요. 그 때 얘기 하지 지금 다 지나가서 왜 하냐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서전을 일찍 냈으면 본인이 쓴 것이지만 늦게 낸 것을 보니 다른 사람이 써서 노태우 이름으로 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노태우 전 대통령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나요. 제가 보기에는 손주환 등이 쓴 것 같습니다. 손주환은 영원한 노태우 맨입니다." 손주환은 YS의 부인인 손명순 여사와 사촌 남매지간이다.

화제를 돌려 한보 사건에 대해 물어봤다. 홍 전 수석에게 한보사건은 가장 아픈 기억일지 모른다. 그는 감옥에 들어가는 불명예까지 얻었다. 하지만 한보사건이 홍 전 수석은 물론 YS 정권에 대한 평가와도 무관할 수 없기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과 달리 그의 답변은 담담했다.

-과거 한보 사건과 관련해 억울한 것은 없습니까.

"억울한 건 없습니다. 그런데 한보는 지금 잘 되고 있지 않나요? 공장 가동하려는데 돈 안 준 것은 잘못이었다고 봅니다. 그 때 가동시켰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철강 파동 있었는데. 저는 아들하고 마누라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점에서 충분합니다. 사실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재산 이동된 게 없었습니다. 감추고 한 게 없습니다. 그 바람에 추징금도 면탈 받았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한 4년 걸려서 샀습니다. 매달 적금 부어서 샀지요."

한보 사건,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아

한보 사건은 1997년 초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홍인길이 10억 원대 정치자금을 한보그룹으로부터 받은 행적이 드러났다. 이 일로 재임 중 단 한 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YS는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한보철강도 쓰러졌다. 홍인길은 자신이 받은 정치자금을 과거 민주화투쟁을 함께 한 여야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 빠듯한 예산에 힘들어하는 청와대 내 여러 부서에도 골고루 나눠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당시 검찰 수사 결과 홍인길의 재산은 얼마 안됐다. 이미 공개돼 있던 분당의 자택과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거제도 선산, 부산에 지역구 관리용으로 썼던 전셋집, 그리고 장남 결혼식 축의금으로 들어온 6,800만원이 전부였다.

-YS가 한보 사건과 관련해 전혀 몰랐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그 때 깃털 발언으로 몸통이 누구냐는 궁금증이 폭발했는데요.

"이미 얘기한 바 있는데, 그 게 권력이란 허무한 거다. 정치라는 게 권력에서 손 놓으면 날아가는 깃털과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언론에 잘못 나갔습니다. 내가 그래서 기자들에게 '사람을 그렇게 왜소하게 만들어서 되겠냐'고 했습니다. '내 등치가 얼마인데 깃털이라고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참, 그 편집이 절묘하더라구요. 그런데 YS는 전혀 몰랐습니다."

이날 홍 전 수석에게 세간에는 YS가 주먹이 약해서 옆에 김동영, 최형우, 홍인길처럼 체격이 큰 인물을 뒀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YS, 주먹으로 경찰 때리기도

"YS는 간으로 똘똘 뭉친 사람입니다. 얼마나 간이 크다고. YS 주먹이 셉니다. 황용하, 나중에 경찰청장까지 했는데 YS 주먹이 얼마나 센지 알 겁니다. 서울의 봄 이전에 DJ가 YS에게 왔다가 돌아가는데 그 때 (DJ를) 잡으려고 하니까 YS가 황용하를 주먹으로 때린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동영 최형우 등 상도동 핵심세력들이 돈이 떨어지면, 손명순 여사한테 가서 돈을 타오라고 복진풍에게 시켰다는 얘기에 대해 물어봤더니 홍 전 수석은 "복진풍이는 백년에 하나 날까말까 한 사람이다. YS가 연금 당해 있는데 족자 얻어 간 사람 아닌가. '총재님 이걸 가져가야 바꿔 먹고 살 수 있지 않습니까'라면서. 넉살 좋은 걸로 유명하다. YS에게 몇 개 필요하다고 더 써달라고 한다니까. YS가 복진풍 농장에 갔다 왔는데 나중에 그게 YS 땅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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