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OECD 1위 성장’ 자찬과 경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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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OECD 1위 성장’ 자찬과 경제 위기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0.08.15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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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부총리도 경제 실상 호도
과잉 낙관, 서민고통 최소화해야
수출 급락에 실업률 최악…고용대란
역대 최대 재정적자, 불감증이 문제
아전인수 해석, 낯 뜨거운 자화자찬
‘내년 34위’ 쏙 빼놓고 “올해 1위”
反기업 족쇄, 외투기업 脫한국 급증
민간 활력 관건, 규제·노동개혁 없인 백약무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내용 일부를 '한국경제의 선방과 우수'로 호도했다. 민생(民生)과 기업, 수출이 전례없는 고통속에 빠져있는 가운데 빚어진 일이어서 파장이 적지 않다. 앞으로도 정부 핵심 인사들의 자세가 주목되고 있다. 

OECD의 일부 통계 수치를 마치 전체 국가경쟁력 승리 결과인 것처럼, 부풀려 포장해버렸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보다 경제가 어렵다며 혀를 내두르는데, 정부가 선방했다며 공식으로 자부한 격이니 시각 차이가 너무 크다. 

현재 한국 경제는 코로나 발 민생 위기가 현재진행형이고, 역대 최장 장마로 전국에 물난리가 나면서 경제 부담도 가중됐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형국이다. 수출부진에 실업대란과 재정악화, 여기에 예기치 않은 물난리까지 겹쳤다. 국가 관리에 적신호가 켜졌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내용 일부를 '한국경제의 선방과 우수'로 호도했다.ⓒ뉴시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내용 일부를 '한국경제의 선방과 우수'로 호도했다.ⓒ뉴시스

"어느 나라에 살고 계시냐" 비판론 

국민은 만연한 세금 살포 등 급진 포퓰리즘으로 인해 국가 부도사태에 직면한 그리스나 베네수엘라 등과 같은 상황에 대한민국이 내몰릴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현재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못지않은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 실상을 호도한다고 위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행위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정부는 OECD 보고서에서 입맛에 맞는 부분만 골라내 자화자찬식으로 섣부른 낙관론을 펼쳐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보다 선방했다고 호도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비상한 각오로 허리띠를 조여야 할 때다.

지금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책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자기 위안 삼듯 “다 잘되고 있다”고 하고 있다. 인식이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져서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리 없다. 

경제는 낙관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정부 당국자의 생각과 언어가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국민과 달라서는 안 된다. 지금은 ‘찬사’나 ‘기적’을 섣부르게 얘기할 때가 아니다.

온라인에선 문 대통령을 두고 "도대체 어느 나라에 살고 계시냐"는 비판까지 나왔음을 깊이 상기해야만 한다.

기업 살리기 - 일자리 창출 정공법을

전대미문의 재난이 닥쳤을 때 나라 곳간을 풀어 피해를 구제하고 경기를 살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경제가 살아나 세수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민간경제의 역동성 없이는 경제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상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기업 살리기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공법을 강구해야 할 때다. 사회 저변에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경직적 노동시장을 방치해서는 어떤 정책을 내놔도 백약이 무효다. 

그런데도 21대 국회는 문을 열자마자 기업을 옥죄는 상법·공정거래법 등의 개정안을 비롯 부동산과 금융 관련 규제 법안을 줄줄이 쏟아내고 있다. 한국적 경영환경을 우려하며 점차 이탈이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 유치는커녕 남아 있는 기업마저 모두 쫓아내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여당은 조속한 처리를 벼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경제 관련 법개정을 주문한 영향일 것이다. 이런 반(反)기업적 법안들이 통과될 경우 기업의 지배주주나 대표는 언제 어디서 고발과 법적 제재가 들어올지 항시 긴장할 수밖에 없다. '기업할 의지'가 꺾일 것은 자명하다. 

또한, 나라가 파탄 날 지경인데도 여야 막론하고 공짜 복지 등 포퓰리즘 정책만 난무한다. 정부와 여당은 빗나간 진단과 함께 여전히 세금 중독증에 빠져 정책 실패를 국민 세금으로 메우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종합적 기업환경 악화 

물론, 코로나 팬데믹으로 글로벌 경제가 전대미문의 침체를 맞은 가운데 우리가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은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사상 최악의 전염병에 최장기 장마까지 겹쳐 돈 쓸 곳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 연말 사상 최대인 45%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보다 3년이나 앞선다. 

기업환경도 여전히 어둡다. 지난해 한국을 등지고 떠난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들의 철수 이유는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높은 인건비, 까다로운 규제 등 종합적인 기업환경 악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태는 심각하다. 한국의 마이너스 성장률 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OECD 지적처럼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덕이지 내수나 수출이 살아난 덕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오르고 수출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무리다. 

재정 건전성 심한 훼손

한국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는 확연하다. 재정 건전성은 우리 경제를 지켜온 방파제였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튼튼한 재정이 있어 가능했다. 그런데 재정 건전성이 심한 훼손을 당한 것이다.

최후까지 남겨야 할 실탄인 재정 여력이 고갈 직전에 이른 것은 뼈아프다. 상반기 재정적자는 110조5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세수는 23조원이나 감소했다. OECD도 한국경제에서 소득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높은 증가율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상반기 재정적자 급증은 경기부진으로 세수가 위축된 가운데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등 지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3차례 추경 집행, 고용유지지원금 및 구직급여 지급 등이 영향을 준것으로 보인다.

긴급 방역, 마스크 수급 등 꼭 써야 할 곳도 있었지만 상당액을 지자체장들의 생색내기용으로 소진한 것은 무책임한 포퓰리즘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여름철 장마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지자체장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하루살이 정치’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상 최초 4차 추경 의미 

앞으로가 더 문제다. 코로나 사태 극복이란 명분을 내세워 천문학적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통과시킨 게 엊그제인데, 수해용 4차 추경 방안이 거론된다.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미 ‘빈 곳간’이라 추가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이번에 4차 추경을 편성하면 사상 처음으로 한 해에 네 번이나 추경을 쓰는 ‘불편한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성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은 8월 들어 다시 ―23.6%로 고꾸라졌다. 7월 실업자 수는 113만8000명으로 21년 만에 최대고, 취업자 수는 5개월 연속 감소세다. 

올해 들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기침체 국면에 빠져 있고, 3분기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한 수출과 내수 위축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고용보험 실업급여 지급액이 지난달 1조 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정도다. 

외국기업들에 ‘매력 없는 나라’

국내 기업 환경은 지난해 KOTRA가 외투기업 애로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경영환경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6.7%에 불과했다. 2013년(45.6%)의 절반 수준이다. 한마디로 한국이 외국기업들에 점점 ‘매력 없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장래가 불투명한 홍콩을 대신할 아시아 금융허브 도시로 도쿄, 싱가포르, 상하이 등이 거론되는 반면 서울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역대 최장기간 장마와 폭우가 겹치면서 이재민과 농어민들의 한숨 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고용에 미치는 충격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숙박·음식점업, 도소매업, 교육서비스업에서 적게는 9만개, 많게는 23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코로나19로 외출과 모임이 줄고 관광객 유입도 급감한 탓이다. 

성장률 수치 안주 경계해야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고 있음에도,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실상 호도'는 고질병이 됐다. '집값 안정세' '성장률 선방'이란 문 대통령의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에 이어 홍남기 경제부총리까지 고용 사정을 호도하고 나섰다. 

허언(虛言)이 상습화하는 것 같다. 고용이 매달 최악 기록을 갈아치우는데도 “개선”, 본질을 외면한 채 특수한 지표 한두 개로 “선방”이라고 계속 우긴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확장 재정에 의한 신속한 경기 대책과 한국판 뉴딜의 강력한 추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올해 경제성장률 1위로 예상될 만큼 가장 선방하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37개국 가운데 34위라는 부분은 쏙 빼놓았다.

물론, OECD가 세 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나 봉쇄 없이 방역에 성공해 경제 피해를 최소화한 대목은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현 국면을 너무 낙관하거나 성장률 수치에 안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향후 경제 전망도 낙관할 수 없다. OECD는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기 침체가 사실상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2차 확산에 대한 경고 수준도 더 높였다. 수출 중심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은 여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현실 왜곡·호도하면 불신만 키워

세부적으로 보면, 취업자 감소 폭이 3월 이후 7월까지 5개월 연속 감소해 나아지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같은 통계의 다른 항목을 보면 역대 최악이다. 7월 실업자 수는 113만8천 명으로 7월 기준으로 1999년 이후 21년 만에 최대이다. 실업률도 4.0%로 2000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 5개월 새 국내 500대 기업 직원 수도 1만명 이상 급감하는 등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다. 경제 현장에 총체적으로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는데 대통령이 나랏빚으로 만든 경제 수치를 국민 앞에 자랑할 때인가.

경제 위기 때 정부는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현실을 엉뚱하게 왜곡·호도해선 곤란하다. 정부와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울 수 있다. 바로 지금 문재인 정부가 이런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 현장과는 달리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보유세 부담을 높였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선 아직도 낮은 편"이라고 했다. 

홍 경제부총리도 페이스북에 “5월부터 고용 상황이 매달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썼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 동향과 관련해서다. 취업자 수 감소 폭이 조금씩 둔화되고 있다는 게 근거였다.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실업률이 7월 기준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실제 고용현장에서는 주당 36시간 이상 일하는 풀타임 일자리가 135만 개나 사라졌고, 경제·산업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40대는 계속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홍 부총리의 페이스북에는 청년 넷 중 한 명이 실업자(확장실업률 기준)라는 점 또한 일언반구가 없다. 그러면서 호전된다고 한다.

최근 ‘한국판 뉴딜’ ‘임대차 3법’ 등에서 여당에 끌려다닌 경제관료들의 무력하고 나약한 모습에서 미래 한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게 된다. 경제부총리는 그들의 사표(師表)가 돼야 할 막중한 자리다.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 

성급한 낙관론, 정책 신뢰 훼손

국민 가슴에 염장을 지르는 듯한 문 대통령 발언이 속출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장관과 참모들이 문 대통령 눈과 귀를 가리고 엉터리 보고를 했거나, 문 대통령이 현실을 외면한 채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경제전망과 관련해 현 정부 고위층이 성급하게 낙관론을 펼쳤다가 정책 신뢰만 훼손한 사례는 이미 한두 번이 아니다. 이는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기업과 근로자들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다. 최근 고용악화 여파만 봐도 실업급여 지급액은 6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5월부터는 매달 1조원 이상이 실업급여로 지급되고 있다. 고용보험기금은 3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정부는 올 들어서만 세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고용대책을 내놓았다. 또 160조원을 투입하는 ‘한국판 뉴딜’을 통해 19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고용한파는 좀처럼 가실 줄 모르고 청년과 자영업자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나랏돈이 아무리 풀려도 기업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멋대로 써도 되는 눈먼 돈이 아니다. 국민이 땀 흘려 벌어서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정부와 지자체)이 재정을 집행할 때는 자기 돈처럼 아끼고, 철저히 관리하며,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기본자세다. 

지자체 수해복구 예산 바닥

우리 경제는 1분기에 -1.3%에서 2분기엔 -3.3%로 추락 폭이 확대됐다. 통제되지 않는 글로벌 팬데믹, 미국과 중국의 갈등 격화 등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내 경제환경의 악화는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의 철수가 상징한다. 지난해 한국을 등지고 떠난 외투기업 수가 전년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서 철수한 외투기업은 2016년 58개, 2017년 80개, 2018년 68개 등 연간 100개를 밑돌았으나 지난해에는 173개로 크게 증가했다.

한편, 국내 재정 부문에서는 최악의 폭우로 전국에서 피해가 속출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수해복구에 쓸 예산이 바닥났다. 올 초부터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등으로 재난관리기금까지 고갈됐기 때문이다. 지자체들은 앞다퉈 중앙정부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이미 3차 추경까지 편성한 정부도 여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총선 이후 당·정이 모든 가구에 4인 기준 100만원씩의 코로나 지원금을 풀 때부터 우려됐던 상황이었다. 애초 기재부가 설계했던 '소득 하위 50%' 지급 방안이 민주당 요구로 '전 국민 지급'으로 확대되면서 소요 예산이 14조원으로 불었고, 이 중 2조여원을 광역시·도에 부담시켰다. 지자체들은 돈이 모자라자 태풍·홍수 등 재난에 대비해 비축해두는 비상기금에까지 손을 댔다. 그 결과 이번에 호우 피해가 집중된 경기, 강원, 충남북, 전남북은 비상금 창고가 텅 빈 상태에서 9년 만의 최악이라는 수해를 맞았다. 

고용과 내수 동반침체 악순환

올해 상반기 나라살림도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총수입은 작년 동기보다 20조 원 줄고 총지출은 31조 원 늘어 통합재정수지가 90조 원 적자를 나타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빼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10조5000억 원 적자였다. 둘 다 2011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은 경기 부진으로 세금은 덜 걷히는데 코로나19에 대응한다며 6월에만 56조5,000억원을 지출하는 등 혈세를 펑펑 썼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 여당이 나라 살림은 살피지 않고 확장재정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에서는 수해대책으로 3조~5조원 규모의 4차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방역 당국의 코로나 통제에 힘입어 소비와 투자는 호전되고 있으나 수출도 여전히 마이너스다. 수출 침체는 제조업에 직격탄을 가해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실업자(6월 기준)는 122만8천명으로 1999년 통계작성 이래 가장 많고, 실업급여 지급액은 7월까지 6개월째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다. 

가중되는 실업난이 무섭다. 이미 고용과 내수가 동반침체의 악순환에 빠져 우리 경제가 빈사상태에 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용한파가 길어지면서 이른바 취업포기자도 늘고 있다.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구직활동 없이 ‘쉬었음’이라고 답한 사람이 231만9,000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경제활동인구에는 구직 포기자 즉 실업 상태임에도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실업자'가 대거 포함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경제원로들 의견 수용을

지금의 상황은 '재정 만능주의'에 빠진 정부의 불감증이 키운 셈이다. 코로나 사태나 수해처럼 비상 상황이 터질 때마다 나랏돈을 쌈짓돈 꺼내 쓰듯이 하는 행태는 그만둬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국경제가 3분기부터 헤쳐 나가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국가 부채 증가 속도가 생각보다 가파르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을 최대한 줄여 코로나19에 따른 경제난 해결과 수해 지원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눈앞의 어려움을 회피하지 말고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의 ‘코리안 미러클 발간 보고회’에서 나온 경제원로들의 쓴소리도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한덕수 전 국무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전직 관료들의 현 정부 정책에 대한 걱정은 자못 진지했다. 

과도한 국가부채가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주면서 미래세대에도 과부담을 지우고, 집값대책이라고 내놓은 방안은 온통 수요·공급의 원칙 등 경제의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있고, 중과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 경계론도 나왔다. 이를 신중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OECD 정책 권고도 중요 

기업·가계 등 민간자금을 생산적 투자로 유도하기 위한 환경 조성이 시급한 이유다. 정부는 재정중독에서 벗어나 규제 완화와 감세 등을 통해 민간 활력을 높이는 데 나서야 한다. 

기업이 혁신과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경영 환경이 만들어져야 투자가 살아나고 고용도 늘어나 대량 실업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정부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판 뉴딜을 하자고 외치면서 정작 기업 발목을 잡는 정책에 매달리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제라도 반기업 정책에서 벗어나 각종 규제를 걷어내고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해 기업들이 더 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OECD의 정책 권고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OECD는 장기적인 재정 운용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되 추가 여력은 5G와 인공지능 등 디지털 부문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증세 등을 통해 중장기적 건전성에 신경을 쓰면서 성장률을 높이는 쪽에 투자하라는 얘기다. 

OECD는 지난 11일 한국에 대해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경고하며 내년 성장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뒤처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재정확대라는 외바퀴로는 경제가 본궤도로 올라서기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 중요한 의미의 '충고'로 되새겨야만 한다. 

정책 기조, 장기적 안전 위주로

앞으로는, 코로나 사태의 고통을 가장 크게 받는 계층 보호에 좀 더 면밀하게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국판 뉴딜의 중추인 디지털 뉴딜의 성공을 위해 규제 혁신은 필수적이다. 

정부는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바꿔야 할 것이다. 청년 의무 채용, 연봉제·성과급 중심의 새로운 임금 체계 등을 도입해 실업자와 미취업자의 취업 기회를 확대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한계에 처한 업종·기업을 정리하고 신산업을 키우는 일 역시 병행해야 한다.

정부여당이 이번에 기업경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상법과 공정거래법의 일방적 개정을 밀어붙이려하는 것은 코로나 위기에 맞서 살려고 안간힘을 쏟는 기업에 반기업 족쇄를 채우려는 것에 다름아니다. 해도 너무한다는 탄식이 그래서 나온다. 정부여당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재 같은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정부가 견지해야 할 최우선 정책 기조는 시야를 장기적이고 크게 가져가는 것이다. 사태를 길게 보고 정책을 안전 위주로 짜야 한다. 재정 여력이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그런 정책 입안 자세가 중요하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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