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조선의 망국병 종묘사직과 정권지킴이
[역사로 보는 정치] 조선의 망국병 종묘사직과 정권지킴이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08.16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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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종묘사직보다 중요한 것은 민생이다. 국민이 살아야 정권도 산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정권의 종묘사직보다 중요한 것은 민생이다. 국민이 살아야 정권도 산다. 사진제공=뉴시스
정권의 종묘사직보다 중요한 것은 민생이다. 국민이 살아야 정권도 산다. 사진제공=뉴시스

종묘사직. 조선 왕실 최대 목표는 조선 백성이 아닌 왕과 전주 이씨 왕족들의 안위였다. 조일전쟁이 터지고 선조가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압록강 의주까지 도망쳤다. 이유는 종묘사직을 지킨다는 명분이었다. 

선조가 전쟁 초기 백성에게 저지른 죄악은 수도 한양을 일본군에게 그냥 내준 데 있다. 당초 일본군은 조선의 도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조선 왕실은 그냥 임진강을 넘었다. 일본군은 수차례의 신중한 정찰을 통해 한양이 무방비라는 황당한 사실을 접하고 무혈입성했다. 평양도 마찬가지였다. 대동강이라는 천연의 요새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전투다운 전투도 치르지 못하고 고구려의 옛 수도인 평양을 적에게 내주었다.

선조는 이 순간에도 종묘사직을 위해 명나라 땅인 요동으로 귀부할 생각에만 몰두했다. 자신과 왕실의 안전을 보존하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백성들이 일본군에게 도륙을 당하는 데도 남의 나라로 도망갈 생각만 했던 용렬한 군주가 선조였다.

인조도 마찬가지였다. 서인의 반정으로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인조는 대의명분론에 빠져 친명배금외교로 조선을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아갔다. 명청 교체기의 국제 정세를 무시하고 오로지 종묘사직을 지키겠다는 집단 이기주의만이 남았다.

<인조실록> 인조 15년 1월 30일 기사는 인조가 청 황제에게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당하고 도성으로 돌아갈 때의 처절한 상황에 대해서 “사로잡힌 자녀들이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모두 말하기를,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했는데, 길을 끼고 울며 부르짖는 자가 만 명을 헤아렸다”고 전한다.

인조가 항복하면서 자신과 종묘사직을 지켰다고 자부했지만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와 수십만 명의 백성들은 청군의 포로가 돼 머나먼 만주로 끌려갔다. 비겁한 인조는 청나라가 자신을 버리고 소현세자를 왕으로 옹립할 가능성을 항상 두려워했다고 한다. 결국 소현세자 가족은 인조와의 극심한 갈등 끝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피보다 진한 것은 권력욕이었다.

고종도 종묘사직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고종과 민비는 근대화라는 세계사적 시대정신 대신 자신과 종묘사직을 사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 일본은 미국의 함포외교에 굴복해 강제 개항하자 적극적인 근대화 추진으로 세계 열강의 지위를 얻었지만, 고종은 일본의 침략에도 근대화 대신 종묘사직 지킴이를 자처했다.

부동산 대란, 사상 초유의 장기간 장마와 수해,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지지율 하락을 맞고 있다. 文정부는 국민이 체감하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자화자찬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각에서는 레임덕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 여권은 정권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영부인을 빗댄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정권의 종묘사직보다 중요한 것은 민생이다. 국민이 살아야 정권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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