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책임 없이는 대출도, 투자도 없다
[기자수첩] 책임 없이는 대출도, 투자도 없다
  • 김병묵 기자
  • 승인 2020.09.1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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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대출권은 금융 책임감 흔드는 “위험한 선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대출권'이 화제다. 하지만 선의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격언을 떠올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실제 현직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본대출권에 대해 "너무 위험한 선의"라고 평하기도 했다.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대출권'이 화제다. 이 지사는 14일 모든 시민들이 1~2% 정도의 낮은 이자로 일정 금액 대출을 받을 수 있고 국가가 채무 이행 보증을 서도록 한 장기저리대출보장제도인 '기본대출권' 도입을 주장했다.

이 지사의 주장은 국민 모두에게 낮은 이율의 저리장기대출을 받을수 있게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국가가 일종의 담보 역할을 자처하여, 어쩔 수 없이 높은 이율의 고리대를 받는 이들을 위한 '대출사각'을 줄이자는 것이 골자다.

좋은 취지다. 하지만 선의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격언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실제 현직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본대출권에 대해 "너무 위험한 선의"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같은 당 송영길 의원은 같은날 "취지는 공감하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본대출권에 대한 우려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송 의원의 말처럼 역시 도덕적 해이다. 단순한 부실대출 발생 그 이상의 문제가 숨어있다. 기본대출권의 도입으로 인한 가장 큰 예상 부작용은, 국가의 개입으로 인해 개인 금융활동의 책임감이 줄어들고 '신용'의 가치 하락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자신의 경제는 거의 자신의 책임아래 있다. 국가는 어디까지나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보조 수준에서 개인의 경제에 개입한다. 법을 통해 최대한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사건의 발생에 대한 안전망을 펼치는 정도다. 당연히 자신의 투자결정이나, 대출을 받기 위한 신용은 국가가 책임져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금융권에 조금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라임 무역금융펀드 관련, 금융사들은 유래없었던 금융당국의 100% 보상권고를 받아들였다. 물론 억울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지만,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불량한 선례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사실상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개입됐다.

해당 사건 관련, 익명을 요구한 현직 투자증권 관계자는 지난 달 기자와의 만남에서 "불완전 판매와 같은 경우는 당연히 전부 보상돼야 하는 일"이라면서도 "현장에서 (상품을) 판매해본 경험을 감안하면, 모든 책임이 판매사에게 지워지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비단 투자뿐 아니라 대출에도 해당된다. 이 지사가 주장하는 기본대출권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으로 꼽히는 부분이 정부가 대신 대출자의 신용리스크를 짊어져준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이자를 대신 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결국 그만큼 대출자로부터 금융상의 책임을 덜어주는 일이다.

그간 금융활동에서 개인의 책임감에 대해선 사실상 금융기관이 신용등급을 정해 관리해왔다. 자신이 질 수 없는 책임 이상은 금융활동을 하지 못하게 한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지사가 '금융 카스트'라고 비난했던 신용등급제는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오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대출권의 등장은 이러한 '신용'의 가치를 아래서부터 무너뜨릴 수 있다. 자칫 위험성만 높은 현금보조로 전락한 기본대출은 결국 대출에 대한 '책임감'만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금융활동에서 심각한 수준의 도덕적 해이와 직결되면서 건강한 금융경제에 타격을 준다. 이 지사는 도덕적 해이에 대해 '국민들을 믿는다'는 답을 내놓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5일 이와 반대되는 결과를 내밀었다. KDI는 이날 정책성 서민금융상품이 결국 채무를 진 당사자의 채무구조 개선엔 큰 효과가 없었다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같은 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분들보다 자신이 채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에 둔감해진 분들이 더 많다. 책임감을 잃는다"고 토로했다.

특히 이 지사의 기본대출권론은 코로나19와 같은 경제위기상황에선 더욱 위험하다. 코로나는 은행의 저리대출을 이미 한계점까지 늘려놨다. 신용대출도 이미 9월 들어 1조원이 폭증하는 등 나날이 늘어나는 상태다. 현재 은행의 부실대출율엔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로 알려졌다. 도덕적 해이가 아니더라도 저리대출의 증가는 달갑지 않다.

반면, 이 지사가 반박하는 '국가 파산론'이나 '재벌 이자불납론'은 본질로부터 약간 비껴가 있다. 우려의 본질은 금융활동이 책임감을 잃으면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났을 때 되돌리기가 훨씬 어렵다는 지점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고 진정성을 인정받으려 했다면, 이 지사가 금융현장의 목소리부터 경청했으면 어땠을까.

 

담당업무 : 공기업·게임·금융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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