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北공무원 피살 사건, 골든타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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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北공무원 피살 사건, 골든타임 아쉽다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0.10.01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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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논쟁보다 살리지 못한 점 통탄할 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북한의 연평도 공무원 피살 사건 논란은 추석을 넘어 국정감사 기간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비무장 민간인이 북한군으로부터 피살당한 이번 사건은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해양수산수 소속의 숨진 공무원 이모 씨는 올해 47세로 두 아이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서해 소연평도 앞바다에서 어업지도선 탑승 서기를 맡고 있었다. 국방부와 해경 등에 따르면 실종됐다고 알려진 것은 지난 9월 21일 낮 12시 50분경 소연평도 남방 2.2km 해상 부근에서였다. 당일 새벽 무궁화호 10호 조타실에서 당직을 서던 중 자리를 비운 뒤 점심시간인 오전 11시 30분 경이 돼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자 주변에서 실종 신고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색이 시작된 가운데 이 씨의 근황이 포착된 것은 다음날 (9월 22일) 오후가 되어서였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부유물에 의지해 표류하던 중 실종 예측 지점과 33km 떨어진 북측 해역의 황해남도 강령군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는 정보가 입수된 것이다.

이 씨는 이후 취조를 당하다 밤 9시 40분경 상부의 지시를 받은 북한군으로부터 피격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뒤이어 밤 10시 11분경 방독면과 보호복을 입은 북한군들이 이 씨의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에 태운 정황이 감시 장비를 통해 식별됐다고 국방부는 보고 있다. (9월 24일 이같이 브리핑했지만 하루 지난 25일 북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과가 담긴 통지문을 보내 부유물만 소각했다고 반박하자 객관적으로 다시 들여다볼 예정이라며 판단을 유보 중에 있다.)

앞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다시금 상기되는 상황에서 피해자 유족 측에서는 이 씨가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북한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기까지 정부가 골든타임을 두 번이나 놓쳤다며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이 씨의 친형 이래진(55) 씨는 지난달 29일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 동생이 업무 수행 중 실종돼 30여 시간 해상에서 표류하기까지 대한민국은 무엇을 했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결국 “북한의 NLL(서해북방한계선)로 유입돼 체포됐고 우리 군이 목격했다는 6시간 동안 살리려는 어떤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지막 죽음의 직전까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두 번이나 존재했지만 가만히 있었다”는 비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이 친서를 주고받는 사이인 것이 새롭게 알려지면서 골든타임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지난달 8일 문 대통령은 ‘국정원-통일전선부’ 라인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답장이 온 것은 지난달 12일로 정상간 핫라인이 가동되고 있음이 가늠되고 있다.

유족 측의 지적처럼 우리 군에서 9월 22일 오후 3시 30분경 이 씨가 북한에서 발견됐다는 정황을 처음 포착할 당시 이유 불문하고 살리는데 총력을 기울였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했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골든타임의 기회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관점에서다. 청와대 또한 이 씨에 대한 첫 서면 보고를 받은 시각이 피살되기 3시간 전인 22일 오후 6시 30분경이었다는 점에서 정상 간 핫라인을 가동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후속 조치도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9월 22일 밤 10시 30분경 북한군으로부터 피살됐다는 첩보가 청와대에 보고된 후에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종전 선언을 희망한다는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녹화연설이 전 세계에 방송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9월 23일 낮 1시30분 이 씨에 대한 피살 상황이 공식 발표되고 나서도 다음날 대통령은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하는 등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 씨가 사망한지 엿새째가 되는 9월 28일이 되어서였다.  “희생자가 어떻게 북한 해역으로 가게 됐는지 경위와 상관없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국민의 신변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로서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며 “국민의 생명보호를 위한 안보와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정부의 책무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재발방지 대응책 마련보다 월북이라 단정하는데 급급해하는 듯한 정치적 상황은 씁쓸해 보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책무는 대통령이 강조했듯 정부에 있다.

지금은 비무장 민간인인 우리 국민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 통탄할 때다. 피살의 진상규명을 북한에 묻고 단순 통지문이 아닌 공식석상의 사과를 받아야 할 때다. 국제적 이해관계에 얽힌 저자세 외교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구호가 최우선이기를 기대해본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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