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발암물질’ 나왔는데… “이쯤되면 막하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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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발암물질’ 나왔는데… “이쯤되면 막하자는 거죠”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2.02.08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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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 발암물질 노출 확인
정부·삼성 "인체 영향없다" 변명
백혈병 연관성은 오히려 높아져
'세계 3번째 나쁜기업'의 운명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대한민국의 자랑,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어느새 ‘대한민국의 수치’로 전락했다. ‘세계에서 3번째로 나쁜기업’에까지 꼽히며 트러블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태안 기름유출사건’, ‘옴레기’(옴니아 쓰레기), ‘김연아 에어컨’ 등 여러 사안에 걸쳐 계란으로 바위 치듯 삼성에게 항의하는 이들도 허다하지만, 그러나 이들에 대응하는 삼성의 전략은 한결같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다. 삼성을 상대로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4년이 넘도록 싸우고 있는, 한때는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이었던 이들까지도 무시해버리는 삼성의 전술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현재 5명의 백혈병 피해노동자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산재 관련 소송을 진행중이다. 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 기흥공장(웨이퍼 가공라인)에서 근무했던 고 황유미, 고 이숙영 2인에 대해 업무상 질환 가능성을 인정, 산재를 승인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온양공장(반도체 조립라인)에서 일한 김옥이, 송창호, 고 박지연씨에 대해서는 근거 불충분으로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이마저도 불복해 항소했고, 오는 3월 항소 2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쩍 쩍' 바위에 금가는 소리

산재를 인정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외침에도 그간 삼성전자와 근로복지공단은 백혈병 등 노동자들의 질병과 작업환경사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의 안전보건 컨설팅회사 ‘인바이런’에 작업환경을 조사하게 하고, 조사결과를 근거로 백혈병과 업무와의 관련성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는 관계자는  “연구결과에 대해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으나, 이 회사가 환경오염을 일으킨 기업들이 규제나 소송에 맞서기 위해 고용하는 대표적인 컨설팅 회사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6일, 그동안 작업공정에서 발암물질의 가능성을 적극 부인하던 삼성 측의 주장은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의 발표로이 무너져내렸다. 산보연은 “지난 2009년부터 2011까지 3년간 반도체 제조사업장들을 대상으로 연구조사한 결과 1급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산보연이 조사한 기업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페어차일드코리아 세 곳이다.

산보연의 발표에 따르면 웨이퍼 가공라인과 반도체 조립라인의 일부 공정에서 백혈병 유발인자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부산물로 발생했다. 특히 피부암이나 폐암 등을 일으키는 비소는 노출기준을 초과해 발생하기도 했다.

웨이퍼 가공라인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011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논문은 작업 공정에서 부산물로 벤젠, 페놀 등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발생하고, 작업자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여기에 이어 이번 산보연의 발표는 웨이퍼 가공라인 뿐 아니라 반도체 조립라인에서도 발암성 유해화학물질이 발생함을 확인한 것.

이밖에 이번 연구 결과로 백혈병과 업무와의 ‘연관성’이 높아졌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질이 아닌, 생산과정의 ‘부산물’로 발암물질이 발견됐다. 부산물은 조립과정에서 사용하는 수지가 공정온도에서 분해되면서 발생된다. 그동안 삼성은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질에만 초점이 맞춰,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등은 1급 발암물질이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또 이번 연구는 자동화된 작업환경에서 이뤄진 만큼 작업환경이 비교적 열악했던 과거에는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정도가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반올림은 7일 성명을 내고 “백혈병과 림프종이 발병한 피해당사자들이 작업할 당시(1990년대와 2000년 초중반)에는 최근 자동화된 작업환경과 달리 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했던 수동의 열악한 작업환경이었고 환기시설도 열악했다”며 “과거 열악한 작업환경속에서는 더욱 많은 양의 벤젠등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물론 이번 발암물질 검출에 대해 산보연은 “노출기준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삼성 역시 “측정된 부산물의 양은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종업원의 건강과 관련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관리해나가겠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검출량이 ‘극미량’으로 사실상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정부와 삼성측의 주장과 달리, 발암물질은 노출기준 미만이어도 작업환경이나 노출 경로 등에 따라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CGIH)는 ‘노출기준’에 대해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돼도 건강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 농도”일 뿐이며, “안전농도와 위험농도의 경계치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유전독성 발암물질은 독성을 나타내는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역치(threshold)’가 없고, 다만 일반적으로 용량이 증가할수록 염색체에 미치는 손상도 함께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발암물질 한 분자로도 유전적 변이가 유발할 수 있고 종양발생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11년 6월 23일 피해노동자들의 산재를 인정한 1심 판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판결은 과거 삼성반도체 공장(기흥공장)에서 사용된 벤젠, tce, 전리방사선 등에 노동자들이 노출허용기준 미만으로 노출됐어도 장시간 지속적으로 노출돼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봐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때문에 정부와 삼성의 모습이 정보의 축소전달에만 노력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은 어쩔수 없다. 산보연은 연구보고서 전문은 공개하지 않은 채 반도체 사업장 일부에서 발암물질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만을 배포했다. 더욱이 보도자료는 제목에서부터 ‘발암물질이 극미량 부산물로 발생’ 이라는 문구를 삽입해 발생 정도가 심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또 조사 대상 기업과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공장이 어디인지, ‘삼성’ ‘하이닉스’ 등 업체의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삼성은 뒤늦게 8일 ‘그룹 차원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표명했지만 지난해 8월 삼성이 대놓은 대안처럼 미봉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반응이 있다. 삼성은 당시 ‘퇴직 임직원 암 발병자 지원제도’를 발표하고, 반도체 등의 공정에서 1년 이상 근무, 2000년 1월 1일 이후 퇴직한 임직원에 한해 백혈병, 림프종 등 14가지 암으로 투병하는 이들에게는 10년간 최대 1억원의 치료비를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소란을 잠재우려는 눈속임으로, 특수건강검진 대상자에게만 지원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반올림 측은  “이는 결코 가벼이 넘겨서는 안된다. 전체 반도체 사업장에 대해 특별한 관리방침이 제시돼야 하고, 과거 열악한 환경속에 백혈병 등이 발병한 피해자들은 즉각적으로 직업병을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삼성은 ‘백혈병 피해노동자’들의 문제와 관련, 지난달 27일  ‘세계에서 가장나쁜기업 3위’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날 그린피스 스위스 지부와 시민단체 베른선언(Berne Declaration)은 전세계 연인원 8만8천여 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삼성은 1만9014표를 받아 나쁜 기업 3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삼성이 ‘나쁜기업’ 후보로 오르 것은 백혈병으로 죽은 노동자들을 책임지지 않고, 50년 간 노동조합을 탄압한 역사가 있다는 이유다.  가장 나쁜 기업을 뽑는 ‘퍼블릭 아이 어워드’(the Public Eye Awards)는 삼성을 소개하며  “한국의 최고 부자 재벌은 공장에서 금지된 극독성물질을 노동자에게 알리지 않고,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결과 노동자 140명 이상이 암을 진단 받았고, 적어도 50명 이상의 젊은 노동자가 죽었다”며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그 책임을 부정하고, 환자와 사망자 및 그들의 친지들의 명예를 실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삼성전자는 주최측에 서한을 보내 “삼성은 종업원의 복지를 매우 중요시하며, 세계 수준의 안전보건 환경을 유지하고 있고, 이 분야에 대해 특별히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문제들을 검토해왔다”며 그 근거로 2011년 발표된 인바이런사의 연구를 인용, “암 사례들과 작업장 노출 사이의 연관성은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올림에 의하면 삼성 공장에서 일한 뒤 백혈병이나 암 등의 병에 걸린 사례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130여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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