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국의 조국과 도둑맞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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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조국의 조국과 도둑맞은 정의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10.06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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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사태, 유예 기간 끝난 ‘조국 사태’ 이자…정부가 휘두르는 ‘정의의 철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로 촉발된 진보 정권의 위선(僞善)을 비판하는 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일명 ‘조국 흑서’가 한 달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다. 시발점이 된 ‘조국 사태’는 무려 1년 전 일이다.ⓒ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로 촉발된 진보 정권의 위선(僞善)을 비판하는 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일명 ‘조국 흑서’가 한 달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다. 시발점이 된 ‘조국 사태’는 무려 1년 전 일이다.ⓒ뉴시스

2020년 10월의 시작, 대한민국은 여전히 ‘조국의 조국(祖國)’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로 촉발된 진보 정권의 위선(僞善)을 비판하는 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일명 ‘조국 흑서’가 한 달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다. 판매량은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약 7만 1000부를 찍었다. 출판업계의 불황 속에서도 일주일 만에 ‘10쇄 인쇄’에 들어간 것이다.

시발점이 된 ‘조국 사태’는 무려 1년 전 일이다. 야권은 지난해 ‘추석 밥상’에 조 전 장관을 올리기 위해 집중 공세를 펼쳤다. 2017년 ‘대선 정국’의 ‘문모닝’을 재현하듯, 야권이 일제히 ‘조모닝’을 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조국 문제로 총선서 무너지겠구나.’ 직감한 정치부 기자들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민주당의 180석, 전무후무한 여당 압승이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찾았다. 전염병 사태가 촉발한 ‘정국안정’ 욕구. 위기 상황에서 발현된 강력한 중앙정부에 대한 일시적 갈망. 실제로 ‘코로나 총선’이 끝나자마자, 추미애 장관의 ‘아들 휴가 특혜’ 의혹으로 조국 전 장관은 다시 정치권에 소환됐다. 해소되지 못한 채 덮어둔 정부의 ‘불공정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마치 코로나 덕분에 연기된 대출금 상환 날짜가 임박한 것처럼.

추 장관은 본인의 논란을 두고 SNS에 “왜 유독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들을 타깃으로 보수야당과 언론이 집요하게 정치적 공세를 펼치는지 안다”면서 모든 것을 ‘정치 공세’로 규정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조국 사태와 추 장관의 논란을 같은 선상에 두기엔 억울하다’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주변 인물이 엮인 정도, 적용된 혐의의 수, 수사 및 재판 과정 등 모든 것을 비교했을 때 두 사건의 경중(輕重)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정치 공세에 가까운 ‘추미애 의혹’은 국민이 준 ‘유예 기간’ 동안 갚지 못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조국 사태’의 이자다. ⓒ뉴시스
정치 공세 측면이 큰 ‘추미애 의혹’은 어쩌면 국민이 준 ‘유예 기간’ 동안 갚지 못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조국 사태’의 이자다. ⓒ뉴시스

추 장관에 대한 야당의 공세는 일견 과한 측면도 있다. 지난달 끝난 대정부질의와 오는 7일 시작될 국정감사까지, 두 달 동안 정국이 ‘기승전추’가 되면서 6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투입된 ‘4차 추경’은 잊혀졌다. 단 한 명의 이야기로 그 이상의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자원 낭비’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추미애 의혹’은 국민이 준 ‘유예 기간’ 동안 갚지 못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조국 사태’의 이자다. 평등과 공정, 무엇보다 ‘정의(正義)’를 내세운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계속해서 야권의 땔감이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정부 여당은 여전히 ‘정의’를 무기로 휘두른다. 대한민국 최대 권력가인 정부 여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검찰개혁에 반대하면 ‘부정한 토착왜구’란다. 때 아닌 친일 대 반일 프레임이다. 열성 지지자들은 나아가 ‘공무원 피살 사건’의 피해자 가족을 비난하고, 여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성비위에 도리어 피해자를 공격한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도덕적 우월주의와 맹목적인 애국주의에 경도돼, 그것을 ‘정의의 철퇴’라고 여기고 있다. 

권력의 편이 휘두르는 정의의 철퇴를 지켜보자니,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 마지막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맙소사. 이제부터 부자들 사회에선 가난장난이 유행할 거란다. (중략) 그들은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지난달 방문한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드라마화가 결정했다던 유명 소설, 주식 버블을 타고 부자가 되는 비법서들 사이에 ‘조국 흑서’가 놓여 있었다. 청년들은 서점 구석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앉아 경제 서적과 흑서를 읽었다. 조국의 조국이 1년 넘게 발화를 촉발하는 사회에서, '금전적 성공'만큼 '정의 실현'에 대한 욕망이 들끓고 있었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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