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하륜과 이숙번의 엇갈린 운명…어른 나훈아가 없는 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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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하륜과 이숙번의 엇갈린 운명…어른 나훈아가 없는 야권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10.11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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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울린 나훈아가 21세기의 하륜이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지난 추석과 국민을 울리며 빛낸 나훈아가 21세기의 하륜이다. 이제 비겁한 침묵을 깨고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어라.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추석과 국민을 울리며 빛낸 나훈아가 21세기의 하륜이다. 보수 원로들은 이제 비겁한 침묵을 깨고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어라. 사진제공=뉴시스

태종 이방원 집권의 일등 공신은 하륜과 이숙번이다. 하륜은 조선의 어른이었고, 이숙번은 이방원의 돌격 대장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최후는 정반대였다. 하륜은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이숙번은 자만에 빠져 토사구팽의 신세가 됐다.

이들은 장자가 아닌 이방원을 경복궁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피에 손을 묻히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하륜은 중원의 새 주인 명나라와의 외교 교섭에서 자신의 역량을 뽐냈다. 조선 건국 직후 명 태조 주원장이 표전문이 불손하다며 갑질을 하자 1396년 계품사 신분으로 명나라에 가서 표전문 작성의 전말을 해명하는 공을 세웠다.

또한 과도기의 허수아비 왕인 정종의 왕위승습에도 공을 세웠다. 하륜은 제1~2차 왕자의 난 직후 명 태조가 죽자 국상에 진위 겸 진향사로 가서 정종의 왕위승습을 승인받아 후일 태종 집권의 명분을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

하륜은 이방원이 골육상쟁을 불사하고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웠다. 당시 그는 충청도 도관찰사로 친히 군대를 이끌고 한양으로 진군해 반대파를 제거했다. 제2차 왕자의 난에도 이방원의 좌장으로서 맹활약하며 권력의 초실세로 등극했다.

하륜은 태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조광조가 꿈꿨던 왕권과 신권의 조화라는 이상은 태종의 뜻이 아니었다. 하륜은 태종의 마음을 꿰뚫고 왕권만이 살아 숨 쉬는 나라 조선을 만드는데 총력을 다했다. 

특히 왕권 강화의 백미인 6조 직계제는 하륜의 작품이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정책 집행자인 각 판서들의 권한이 강화됐다. 이들은 곧바로 왕에게 업무를 보고하고 하명을 받는 신속한 정책 결정과 집행이 가능한 효율적인 정치문화가 탄생했다. 반면 재상의 권한이 축소돼 불필요한 정쟁을 방지할 수 있었다.

또한 화폐 개혁을 통해 저화를 발행해 재정의 확충을 도모했다. 백성과의 소통을 위한 신문고 설치로 민의 수렴의 창구가 마련됐다. 하륜은 정계 은퇴 이후에도 국가의 부름이 있으면 이를 마다하지 않고 노구를 이끌고 조선과 백성을 위한 헌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륜은 명 영락제가 즉위하자 등극사로 가서 조선왕조의 완전인준을 표하는 고명인장(誥命印章)을 받아왔다. 이는 하륜이 그동안 구축한 명나라 인맥 인프라가 거둔 쾌거이다.

하륜의 최후도 극적이다. 그는 70의 노구를 이끌고 왕명으로 함길도에 있는 선왕의 능침을 순심하고 복귀하던 중 죽었다. 조선의 큰 어른으로서 평생을 나라과 백성을 위한 삶이 하륜의 일생이었다. 

반면 이숙번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이는 스스로 자초한 토사구팽의 전형이었다. 본래 문과에 급제한 문관이었지만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무장으로서 맹활약해 정권의 초실세가 됐다. 당시 이숙번은 경복궁에 병력을 출동시켜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을 제거했다. 그는 박포와 조사의의 난에도 혁혁한 공을 세워 탄탄대로 출세의 길을 걸었다. 마침내 태종의 총애를 받아 병조판서의 자리에 올라 조선의 병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겸손을 배우지 못한 것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단축시킨 화근이 됐다. 이숙번은 자신의 공이 워낙 크다는 허황된 자만한 모습을 보였다. 반대파가 이를 놓치지 않고 탄핵을 주도했다. 태종도 강력한 신하가 자신의 후임인 세종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경상도 함양에 유배시켰다. 

하지만 아직 그의 정치인생이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편찬하면서 개국 초의 사실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잠시 편찬에 참여했다. 그게 끝이었다. 조선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편찬이 끝나자 다시 유배지에 보내져 그 곳에서 영욕의 삶을 마감했다.

지난 추석 연휴는 가수 나훈아가 홀로 빛났다. 15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트로트계의 양대 산맥 나훈아는 공연 도중 여야 정치권을 향해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KBS가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면 좋겠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고 일갈했다.

온 나라가 들끓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 나훈아의 쓰디 쓴 한마디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여권은 분노했고, 무능한 야권은 특유의 낯간지러운 숟가락 얹기에 나섰다. 하지만 나라의 진짜 주인인 국민은 어두운 시대를 대변한 어른의 꾸짖음으로 들었다. 특히 비겁한 야권 원로들의 침묵에 反한 이 시대 어른의 진정한 꾸짖음에 열광했다. 

야권의 원로들은 비겁하다. 말로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논하면서 행동은 구시대 그대로다. 한 마디로 잘난 맛에 도취한 이숙번이 넘쳐난다. 국민의 언어가 아닌 여의도의 언어로 자신들의 옛 영광을 즐긴다. 정작 대한민국이 필요한 어른은 잘난 맛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이숙번이 아닌 하륜이다. 70의 노구를 이끌고 국가의 부름에 최선을 다하다 객사한 하륜이 필요하다. 지난 추석과 국민을 울리며 빛낸 나훈아가 21세기의 하륜이다. 보수 원로들은 이제 비겁한 침묵을 깨고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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