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한국형 재정준칙 암운(暗雲)
[이병도의 時代架橋] 한국형 재정준칙 암운(暗雲)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0.10.10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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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 폭탄' 떠넘기는 맹탕 준칙
정치 논리에 휘둘려 ‘고무줄’로 변질 가능성
나라·기업·가계 온통 빚더미, 실효성 확보가 관건
‘대통령 코드’ 맞춘 재정준칙, '면피용' 왜 만드나
빚내 돈 뿌리겠다고 선언…유명무실
백지상태에서 준칙 다시 짜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기업이건, 국가건 빚더미 위에 앉으면 내일이 위태롭다. 나랏빚이 급증하는 지금이야말로 재정준칙 도입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현재 나랏빚은 물론 기업과 가계 빚도 역대 최고치로 치솟을 정도로 나라 전체가 빚덩이에 올라서고 있다. 특히, 국채발행 증가로 인한 재정 악화는 20여년 전의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재정준칙은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고 국가 신용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의 마지노선을 의미한다. 세계 각국은 이미 재정 부실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재정준칙을 도입한 나라만도 159개국에 이른다. 117개국은 헌법이나 법률로 재정을 통제한다. 

준칙(準則)은 기준이 될 만한 규칙 또는 법칙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우리 정부의 재정준칙 안(案)은 말만 준칙일 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내용이 추상적이고 느슨하며 예외가 많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이건, 국가건 빚더미 위에 앉으면 내일이 위태롭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기업이건, 국가건 빚더미 위에 앉으면 내일이 위태롭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확장재정 정책에 '코드' 비판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가 한국과 터키 둘뿐이니 ‘우리도 만들었다’는 선언적 의미의 준칙만 내놓은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확장재정 정책에 코드를 맞춘 준칙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지난 수십년간 국가채무 비율의 마지노선으로 삼은 40%를 포기하고 60%로 늘린 것부터 그렇다. 

심지어 이 재정준칙조차 적용 시점은 문 정부 임기 이후인 2025년부터로 잡았다. 자기 임기 중엔 아무 제약 없이 펑펑 쓰기만 하다가 다음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결국 나랏빚 폭탄을 떠넘기는 면피용에 불과하다. 

벌써부터 '무늬만 재정준칙'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세제와 예산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기재부가 ‘기획과 재정’이라는 막중한 소임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기재부는 나라살림을 책임진 곳이지만 본연의 역할을 포기했다. 이번 재정준칙안 마련에서 눈덩이 나랏빚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정치권에 편승했다. 속을 들여다보니 방만한 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다. 이래선 어떤 재정준칙을 내놔도 건전성을 회복하지 못한다. 

추상적·포괄적 개념…유연성에만 방점

기재부의 이번 재정준칙 안(案)을 세부적으로 보면, 경제 위기 때는 준칙을 아예 적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경제 위기’라는 단어부터 추상적·포괄적 개념이다. 또한, 5년마다 국회 동의 없이 시행령으로 한도를 바꿀 수 있게 했다. 

엄격함 대신 유연성에만 방점을 찍은 준칙이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급증하는 나랏빚에 제동을 걸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권의 태도가 너무 안이하다.

결국 있으나마나 한 수준의 재정준칙이 나온 것이다. 확장 재정 기조를 저해해선 안 된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재정준칙 적용 시점을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를 감안해도 2025 회계연도 재정준칙으로 지나치게 멀리 잡았다는 점을 거듭 지적치 않을 수 없다. 

이에 편승, 현 정권이 포퓰리즘에 기대어 돈을 무작정 살포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될 수 있다. 그리스·베네수엘라 몰락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법제화 과정 기대난(期待難)

사실, 문재인 정부 돈씀씀이는 이전 정부와 확연히 다르다.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는 143조~180조원 정도가 늘었다. 

하지만 문 정부는 417조원이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재정 역할이 불가피하지만, 혈세를 너무 펑펑 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 하다.

어느 정권이든 정치는 재정 포퓰리즘에 빠지기 쉽고 이는 국채 찍어내기로 연결된다. 따라서 재정적자나 국가채무비율의 상한 준수를 엄격하게 강제하지 않을 경우 재정준칙은 유명무실하다. 

이 때문에 선진국은 재정준칙을 헌법이나 법률에 못 박고 있다. 독일은 재정적자를 GDP 대비 0.35% 이내, 프랑스는 0.5%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법제화(국가재정법 개정) 과정에서라도 재정준칙의 구속력 강화와 조기 시행을 당부하고 싶지만, 거대 여당의 폭주와 기죽은 야당을 보면 그 또한 기대 난망이다.

동시 충족 아니라 종합 고려한다는 식

사실, 재정준칙은 시안 마련 단계에서 부터 저항에 부닥쳤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깐깐한 내용이 들어가는 걸 꺼렸다. 예산을 더 펑펑 쓰고 싶은데 자칫 준칙이 발목을 잡을까봐서다. 

기재부는 이 장벽을 돌파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유연성이란 명분 아래 줄곧 탄력적인 운용 방침을 밝혔다. 

준칙 제정을 요구하는 여론은 선심성 지출과 팽창 예산이 해마다 반복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채무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공식 국가채무는 729조원이지만 공공기관 부채, 연금 채무를 포함하면 2198조원으로 이미 GDP의 115%에 달했다. 총부채 약 5000조원인 ‘부채 공화국’의 중심에 정부가 있는 것이다. 저(低)투자와 저성장, 경제활력 저하의 큰 원인이면서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안(案)은 ‘재정안전 지킴이’가 되기 어렵다. 국제기준에 맞춘 것인지, 정부 발표대로 ‘한국형 준칙’으로 한번 만들어본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국제 기준에 비해 느슨하고 예외도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기준의 동시 충족이 아니라 종합 고려한다는 식으로 기준을 낮췄다. 

그것도 다음 정권이나 지키라는 식이라면 재정준칙을 만드는 이유가 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권 잡은 뒤 180도 말 바꿔

재정준칙은 구체성과 함께 어느 정도 강제성이 뒤따라야 제 구실을 한다. 제 구실을 해야 미래 세대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40%가 깨졌다”고 정부를 공격하며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다. 당시 민주당은 신규 국가채무를 GDP의 0.35% 이하로 유지하는 매우 엄격한 재정건전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뒤엔 180도 말을 바꿔 마구 빚을 내 돈을 뿌렸다. 

이에 따라,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가채무비율이 2040년 97.6%, 2060년엔 158.7%로 악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내후년엔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는다. 현재의 부채비율이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고 해서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재정은 국가 생존의 최후 보루이자 위기의 버팀목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보건·경제 복합 위기를 맞아 국가 경제와 민생을 지탱하고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은 재정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기에 가능하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도 재정 여력이 있었기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앞으로가 문제다. 

재정파탄 경고

나라 재정에 경고등이 켜진 것은 문재인정부 들어서다. ‘재정 중독’에 젖어 빚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재정자금을 살포했다. 그 결과 국가채무는 올해 846조9000억원으로 불어난다. 2016년 말 626조원과 비교하면 220조원이나 늘어난 액수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국채 비율도 2025년이면 60%에 근접해, 다음 정부의 재정정책은 선택 폭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5년 동안 늘어나는 국가채무는 박근혜정부 때의 2.5배인 417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올해는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며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43.9%까지 치솟는다. 문재인 정권 직전 3개 정부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0%대를 유지해 왔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GDP 대비 6.1%로 사상 최대치다. 

나랏빚 못지않게 가계 빚도 위험 수위다. 지난해 16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올해 2분기에 1637조원까지 급증했다. 기업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기업부채는 2018년 100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1118조원, 올해 2분기는 1233조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경제 주체 모두가 빚더미에 올라선 형국이다.

이와 관련,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국가채무가 10년 뒤에는 1819조원으로 두 배 이상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채무 비율도 2040년 100%를 돌파한 뒤 2050년에는 131.1%로 치솟을 것이라고 했다. 재정파탄을 경고하는 분석이다.

재정부실 실상 희석 의혹 

제대로 된 재정준칙의 법제화와 시행이 시급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가재정법 개정 검토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159개국은 이미 재정준칙을 갖고 있다. 이 중 법률에 근거를 둔 국가는 103개국, 아예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14개국에 이른다. 그만큼 강한 구속성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독일은 2009년 헌법에 ‘부채 브레이크’를 도입해 2016년부터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0.35% 이내로 관리하고 있다. 강력한 준칙에 기반을 둔 든든한 재정이 유럽에서 가장 앞선 코로나 대책의 힘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우리 정부 안은 재정 실상을 잘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에서 빼고, 통합재정수지만 기준으로 삼은 것을 보면 재정 부실의 실상을 희석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통합재정수지는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이고,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것이다.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관리재정수지이지만, 이것의 적자 폭이 더 크기 때문에 여당의 요구대로 통합재정수지를 기준 지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위기' 규정 논란 불가피…'시행령'도 문제

예외 허용 상황도 논란이다. 경기 둔화로 판단될 때는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3%에서 -4%로 완화하는 데다, 예외 기준마저 ‘전문가 협의 등을 거처 마련한다’고 막연하게 규정해 정부가 쉽게 재정준칙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재정준칙의 수량적 한도는 시행령에 위임해 5년마다 재검토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되면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고무줄 준칙이 될 수 있다. 국가적 위기 시 재정준칙의 예외로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상황을 위기로 규정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정부는 예외 규정과 관련, 전쟁이나 글로벌 경제위기, 대규모 재해를 맞았을 때는 확장 재정을 펼 수 있도록 준칙 적용이 면제되며 경기 둔화 상황에선 기준 완화가 가능토록 했다. 

최소한의 예외 규정을 두는 것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 근거만 국가재정법에 담고 준칙의 수량적 한도는 시행령에 넣기로 한 것이 문제다. 시행령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정부가 마음대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 있고 지속가능한 국가를

국가 채무에 관한 암울한 전망을 간과해선 결코 안된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달 말 내놓은 전망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예산정책처는 현재의 각종 재정 정책과 제도를 더 늘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기만 해도 2070년이면 나랏빚이 6789조원에 이르고 GDP(국내총생산)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85.7%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159%로 기재부 추정치 81%의 2배다.

예정처는 비당파적이고 중립적으로 전문적인 연구· 분석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국가채무비율이 2045년 99%로 정점을 찍은 뒤 하향 추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재부의 지난달 초 진단과 정반대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앞으로 남은 논의 과정에서 재정준칙다운 준칙이 마련되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 여당의 선심성 재정 지출을 막고 고삐 풀린 국가채무를 다잡으려면 실효성 있는 재정준칙이 필요하다. 국회에서 꼼꼼히 따져 실질적 구속력이 있는 재정건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의 경제 여건이나 복지 수준 등을 감안하되 실효성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는 재정준칙을 조속히 도입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여당의 주장처럼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는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 경기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효과에 대한 검증 없이 예산을 퍼붓다가는 경기는 못 살리고 빚만 늘어나 정작 필요할 때 재정을 쓰지 못하게 됨을 유의해야 한다. 

재정준칙을 두는 이유는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내고 책임 있고 지속가능한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유연성보다는 구속성에 방점이 찍힌 준칙이 필요한 이유다. 

엄격한 준칙 즉각 입법 시행해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을 미래세대에 떠넘기지 않으려면 엄격한 재정준칙을 입법화해서 즉각 시행해야 한다. 

개방경제 아래서 국가의 재정 상태는 국제신인도와도 직결된다. 꼭 필요할 땐 빚을 내서라도 과감하게 돈을 풀어야 하지만, 평시엔 재정 방파제를 견고하게 구축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늙은 국가'를 지탱하느라 허리가 휠 미래세대에 빚더미까지 떠넘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건전한 재정은 국가의 최후 보루다. 실효성을 갖춘 재정준칙이 도입될 수 있도록 향후 국회에서 꼼꼼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재정준칙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젊은 세대는 빚의 굴레를 뒤집어쓴 채 희망을 잃게 될 것임을 경고해 둔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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