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왜 기본소득 아닌 ‘기본자산’인가
[주간필담] 왜 기본소득 아닌 ‘기본자산’인가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10.18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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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능력의 격차는 ‘만들어진’ 불평등
기본자산이 청년들의 공정한 출발선이 될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당신의 능력은 만들어졌다


당신의 능력은 타고난(being born) 것인가, 만들어진(being made) 것인가.ⓒ뉴시스
당신의 능력은 타고난(being born) 것인가, 만들어진(being made) 것인가.ⓒ뉴시스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에 따른 자원 배분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에 따른 소득이나 자산 격차 역시 당연한 귀결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껏 용인해온 능력주의를 공정한 기준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날 능력은 부모의 소득‧자산에 비례해 만들어진다.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대물림된 부를 바탕으로, 교육 혜택과 인적‧문화 자본을 향유하고 있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 17배의 사교육 격차는 높은 특목고‧명문대 합격률로, 이는 전문직‧대기업 등의 고소득 일자리로 이어졌다.

과연 능력에 따른 소득 격차를, 단순히 노력의 결과로만 볼 수 있을까. 이는 개인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상속과 세습으로 당연하게 주어지고 만들어지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런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는 “상위 10%에 속하는 세습 중산층은 그 격차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하며,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층 지위를 물려주고자 노력한다”고 꼬집었다.

부모의 능력이 자식의 능력을 낳는 사회는 건강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능력의 차이가 결국 세습으로 고착‧심화된 소득 격차에서 비롯됐다면, 이는 ‘능력주의 불평등’이다. 다니엘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능력주의는 불평등 확대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불평등이 자라난 뿌리”라고 지적했다.

 

“기본자산은 모두를 위한 공정한 출발 제도”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은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기본적으로 두 해법 모두 불평등을 완화할, 부의 재분배 수단으로 나왔다. 그러나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은 지급 방식에 있어 차별점이 있다. 월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기본소득과 달리, 기본자산 혹은 기초자산은 일생에 한 번 목돈을 지급하는 제도다.

기본소득 주창자로 알려진,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두 해법의 관계를 ‘사촌관계’에 빗댔다. 그는 “기본소득이 평생에 걸쳐서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하는 반면, 기본자산은 성인이 되려는 출발점에서 청년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이 관심을 가진 건 기본소득이었다. 여야(與野) 모두 올해 상반기 기본소득 논쟁에 가담했다. 도입 유무뿐만 아니라 금액 규모, 지원 대상, 자금 확보 방안 등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그에 반해 기본자산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제도다. 그렇다면 왜 일부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이 아닌 기본자산을 주장할까. 기본자산이 불평등의 출발점을 바꿀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정치권에서 기본자산(기초자산)을 꺼내든 건 정의당이었다.ⓒ뉴시스
가장 먼저 정치권에서 기본자산(기초자산)을 꺼내든 건 정의당이었다.ⓒ뉴시스

가장 먼저 정치권에서 기본자산(기초자산)을 꺼내든 건 정의당이었다. 정의당은 지난 1월 첫 번째 총선 공약으로 ‘청년기초자산제도’를 내세웠다. 이는 만 20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3천만 원의 출발자산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양육 시설 퇴소자 등 부모가 없는 청년에게는 최고 5천만 원의 기초자산 지급을 목표로 한다. 반면 일정 금액 이상 상속‧증여를 받는 자에겐 클로백(상위층 세금환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기본 설계다.

정의당은 3~5천만 원의 기초자산 규모를 “청년들이 부모의 도움이 없더라도 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종자돈의 규모”라고 설명했다. 정의당이 기초자산을 도입하는 배경엔 ‘청년’이 있다. 태어난 배경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는 ‘전근대적 세습사회’로, 청년에게 사회진입을 위한 자체적 잠재능력을 높일 기회의 최소 선을 원천적으로 높여주자는 것이다.

김두관 의원은 신생아 계좌에 2천만 원을 지급해 성인 이후에 4~5천만 원을 수령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김두관 의원 '카드뉴스' 갈무리
김두관 의원은 신생아 계좌에 2천만 원을 지급해 성인 이후에 4~5천만 원을 수령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김두관 의원 ‘카드뉴스’ 갈무리

정의당에 이어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기본자산의 목소리가 생겨났다. 김두관 의원은 지난 5일 기본자산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바꾸기 위한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상속이란 개념을 일부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신생아 계좌에 2천만 원을 지급해 성인 이후에 4~5천만 원을 수령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소득 vs 기본자산


그렇다면 기본자산이 기본소득에 비해 갖는 장점은 무엇일까. 두 해법 모두 불평등이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지급 방식에서 관점의 차이가 드러난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3천만 원의 청년기초자산을 ‘일확천금’ 내지 ‘도박’으로 표현했다. 용 의원은 “기초자산제도는 불안정한 청년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우리에겐 3천만 원짜리 도박보다는, 오늘의 도전을 기반으로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정기적인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본소득의 ‘생애 전반에 걸친 불안감 해소 및 안정성’에서 강점을 찾은 셈이다.

그러나 기본자산(기초자산)론자들은 기본소득의 ‘푼 돈’으로는 자립적으로 삶의 전망을 열어갈 ‘밑천’이 되지 못한다고 봤다. 정의당은 대학 교육비, 주거 임대보증금, 창업활동 등을 예로 들며 3~5천만 원은 ‘일확천금’이 아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을 ‘안정적 규모의 종잣돈’이라 설명했다.

정의당이 청년기초자산을 3~5천만 원으로 설계한 이유ⓒ정의당 공약 세부설명 자료 갈무리
정의당이 청년기초자산을 3~5천만 원으로 설계한 이유ⓒ정의당 공약 세부설명 자료 갈무리

한편 김종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기본소득은 틀렸다(대안은 기본자산제다)>에서 ‘기본소득은 실현 가능성도 없고, 자산 재분배 효과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YTN 라디오 <생생경제>에 출연해 “기본소득제는 사이비 공산주의”라며 “자본주의 시장 개혁 없이, 공산주의 이념이 담긴 공평한 배당제도가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기성이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의 ‘푼 돈’이 기존의 사회복지제도를 위축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같은 재원을 쓴다면 효과적인 곳에 쓰여야 된다”며 “양극화 해소, 사각지대 해소, 그리고 소득재분배 효과가 큰 사회복지제도에 쓰는 것이 효과적이지, 기본소득에 쓰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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