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을이 다녀간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칼럼] 가을이 다녀간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0.10.19 14:5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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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설악의 가을, 아름다움을 넘은 숭고함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험난한 봉우리가 줄기차게 솟아 이어져 있는 설악산 공룡능선의 모습. 공룡의 기괴한 등뼈를 연상시킨다. ⓒ 최기영
험난한 봉우리가 줄기차게 솟아 이어져 있는 설악산 공룡능선의 모습. 공룡의 기괴한 등뼈를 연상시킨다. ⓒ 최기영

국립공원공단이 지난 2011년 우리나라 국립공원 대표경관 100경을 선정했다. 그중 제1경은 어디일까? 바로 '설악산 공룡능선'이다. 험난한 봉우리가 줄기차게 솟아 이어진 모습이 공룡의 기괴한 등뼈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기이하고 뾰족한 봉우리들이 퍼레이드를 하듯 펼쳐진 모습은 우리나라 모든 산의 등산로 중 가장 화려하다. 그러나 그곳에 올라가 능선을 걷는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봉우리 사이 요철이 너무도 극심하다. 그곳까지 오르기도 쉽지 않지만 일단 능선 길에 들어서서 오르고 내리기를 예닐곱 번 정도 반복하다 보면 기진맥진하기 일쑤다. 

대청봉을 위시한 설악산 봉우리들은 10월 첫 주가 단풍 절정기다. 올해는 한가위 연휴와 그 시기가 겹쳤다. 고향을 다녀온 뒤 왠지 급해진 마음에 지난 주말, 설악의 단풍을 보기 위해 속초로 향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자 국립공 대피소도 여전히 폐쇄돼 있다. 대피소를 열었다면 중청이나 소청에서 1박을 하고 조금은 여유롭게 공룡능선 길을 걸을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새벽 네 시경 설악산 소공원을 출발해 비선대로 향하며 산행을 시작했다. 

마등령 바로 아래에 있는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해돋이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이윽고 동해의 해무를 뚫고 태양이 떠올랐다. 왼쪽의 뾰족한 바위가 세존봉이다. ⓒ 최기영
마등령 바로 아래에 있는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해돋이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이윽고 동해의 해무를 뚫고 태양이 떠올랐다. 왼쪽의 뾰족한 바위가 세존봉이다. ⓒ 최기영
해가 떠오르자 사나운 공룡능선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청봉을 배경으로 내가 이날 지나야 할 1275봉, 큰새봉, 나한봉 등이 보인다. ⓒ 최기영
해가 떠오르자 사나운 공룡능선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청봉을 배경으로 내가 이날 지나야 할 1275봉, 큰새봉, 나한봉 등이 보인다. ⓒ 최기영

소공원에서 신흥사를 지나 비선대까지의 거리가 약 3km 정도 된다. 기분 좋은 산길이다. 비선대를 지나면서 마등령 삼거리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면서부터 고행은 시작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랜턴 불빛을 따라가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서서히 동이 터 올랐다. 마등령 바로 아래에 있는 널찍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해돋이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이윽고 동해의 해무를 뚫고 태양이 떠오르자 공룡능선의 산세가 너울을 치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세존봉이 보였고 오른쪽으로는 내가 이날 지나가야 할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렇게 아침 햇살을 머금은 공룡의 붉은 자태에 나는 한참 동안 넋이 빠졌다.

마등령에서 나한봉을 왼쪽에 두고 돌면서 드디어 공룡능선으로 들어선다. 예상대로 단풍의 절정기는 이미 지났다. 나뭇가지에는 마른 잎이 위태롭게 하늘거렸고 산길에는 낙엽이 쌓여가고 있었다. 아침바람이 하도 차가워서 곧 겨울이 올 것만 같았다. 도시의 가을은 이제야 완연한데 이곳에는 벌써 가을이 다녀간 모양이다. 

오른쪽 거대한 바위산이 큰새봉이다 ⓒ 최기영
오른쪽 거대한 바위산이 1275봉이다 ⓒ 최기영

공룡능선은 외설악과 내설악의 경계이자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산줄기다. 방금 해가 떠오른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길이는 5.1km다.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멀쩡한 성인 남자도 4~5시간이 걸린다. 1km를 걷는데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 셈이다. 체력 안배를 하지 못하면 그 이상 훨씬 더 걸린다. 거기에다가 일단 능선에 들어서면 중간에 빠져나갈 길이 없다. 능선을 벗어나야만 하산길이 나온다. 몸과 마음 그리고 장비까지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 거친 능선과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비경은 어디에도 견줄 데가 없을 만큼 정말 아름답다. 주봉인 대청봉(1708m)에서 보는 설악의 모습은 이곳에서 보는 모습과 비교하면 오히려 밋밋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대청봉보다 500여m 아래에 있는 공룡능선을 오르고 내리며 바라보는 속초항과 바다, 울산바위, 천불동계곡, 용아장성, 서북능선과 어우러진 모습은 설악산 최고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룡능선 1275봉이다. 일단 1275봉에 올랐다면 정말 큰 고비를 넘긴 것이다 ⓒ 최기영
공룡능선 1275봉이다. 일단 1275봉에 올랐다면 정말 큰 고비를 넘긴 것이다 ⓒ 최기영
1275봉에서 내려와 신선봉으로 가는 길. 촛대바위를 지나고 있다 ⓒ 최기영
1275봉에서 내려와 신선봉으로 가는 길. 촛대바위를 지나고 있다 ⓒ 최기영

나는 해돋이 복은 없어도 운무 복은 많다고 생각하며 산을 탄다. 그런데 이날은 해돋이를 제대로 봐서인지 운무가 없어 아쉬웠다. 설악의 가을이야 어디든 다 좋지만, 공룡능선의 진수는 뭐니 뭐니 해도 구름과 어우러진 암봉의 모습인데 말이다. 그러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설악의 가을은 더욱더 또렷하고 선명하기만 했다. 

큰새봉을 지나 1275봉으로 오르는 길이 가장 길고 힘들다. 일단 1275봉에 올랐다면 정말 큰 고비를 넘긴 것이다. 그 뒤에도 몇 번의 고개를 치고 올라갔다 내려오길 반복하다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인 신선봉에 도착했다. 신선봉에서는 내가 걸었던 공룡능선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진짜 아름답다. 왜 여기가 신선봉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이 사는 세계가 아닌 선계(仙界)에 온 듯하다. 

어금니 모양의 암봉이 이어져있는 산줄기가 바로 설악산 용아장성이다. 그 뒤로 보이는 능선이 설악산 서북능선이다. ⓒ 최기영
어금니 모양의 암봉이 이어져있는 산줄기가 바로 설악산 용아장성이다. 그 뒤로 보이는 능선이 설악산 서북능선이다. ⓒ 최기영
신선봉에서는 공룡능선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람이 사는 세계가 아닌 선계(仙界)에 온 듯하다 ⓒ 최기영
신선봉에서는 공룡능선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람이 사는 세계가 아닌 선계(仙界)에 온 듯하다 ⓒ 최기영

18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버크'(Edmund Burke)는 자연의 숭고함을 거세되지 않은 황소에 비유했다. 거세된 수소의 힘은 대단히 세다. 그러나 순진하고 매우 쓸모 있으며 전혀 위험하지 않다. 농장, 과수원, 유원지, 정원, 공원 등에서 느끼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거세되지 않은 황소의 힘은 차원이 다르다. 때로는 매우 파괴적일 수도 있다. 광대하고 공허하고 종종 어둡고 두렵고, 그것들이 연속되어서 무한해 보이는 모습, 공룡능선과 거기에서 보는 설악산처럼 말이다. 버크는 그것을 아름다움을 넘은 숭고함이라고 했다.

난 공룡능선에 오를 때마다 그 비유가 생각난다. 늘 긴장되고 힘들고 기진맥진하지만 또다시 이곳에 오르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의 숭고함을 온몸으로 직접 느껴보기 위함은 아닐까?

천불동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공룡능선을 다녀간 단풍은 이곳에 모두 내려와 있었다. 설악의 단풍은 계곡을 따라 그렇게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 최기영
천불동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공룡능선을 다녀간 단풍은 이곳에 모두 내려와 있었다. 설악의 단풍은 계곡을 따라 그렇게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 최기영

드디어 무너미고개를 넘어 공룡능선을 벗어났다. 그리고 천불동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공룡능선을 다녀간 단풍은 이곳에 모두 내려와 있었다. 설악의 단풍은 계곡을 따라 그렇게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다시 비선대를 만났고 소공원으로 걸으며 산행도 끝이 났다. 그런데 이날 새벽에는 그리도 기분 좋게 걸었던 3km의 그 정겨웠던 숲길이 어찌나 길고 고통스러운지….

함께 하산하던 일행 중 하나가 다리를 절며 곡소리를 내더니 하는 말에 모두가 웃었다. 

"아이고~~ 누가 맷돌로 내 무르팍을 갈아버리는 것 같구먼~."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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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하 2020-10-22 10:16:17
네번째 사진 설명에서 오른쪽 거대한 산은 큰새봉이 아니라 1275봉 같습니다만~^^
내용 중에서 동쪽 마등령, 서쪽 무너미고개도...무너미고개가 마등령보단 동남쪽입니다

이창남 2020-10-19 15:20:01
아이코 무릅팍위에다 라면을 끼려두 되겄네~~~
하는소릴들었는데, 비유가 되는구먼.
자알 감상했네.
난,이젠 무까거써.7년전인가 함가썻는디~~~
엄두가 안나는구먼.
좋은글 자주읽을수있어 고맙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