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기업경제 민족경제…이건희 함수(函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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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기업경제 민족경제…이건희 함수(函數)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0.10.3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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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경제의 극명성
대기업 선전(善戰)과 국민경제 변수
故 이건희 '신경영 철학', 다시 펼쳐져야
리스크 검증대에 오를 북한체제
기업 줄고, 선순환 무너지는 남한 현실
'초(超)일류 향한 열정과 도전’ 절실
독일통일 교훈…저력은 서독 경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경제살리기에 대한 논의가 각계에서 한창이다. 정치권의 회오리속에서 올해와 내년 경제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많은 걱정들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절대다수인 서민경제가 꽁꽁 얼어붙고 있어서, 총체적 경제상황이 더욱 불투명의 수렁속으로 빠져들지 않겠느냐는 불안감과 국민적 우려가 커져가는 상태다.

그 핵심에는 역시 '기업경제'가 가장 큰 변수로 자리한다. 성장과 고용이 기업경제와 경기의 향배에 달려있기 떄문이다. 이번 칼럼에서 필자는 국민적 우려와 관련, 기업경제의 중요성과 민족경제 전체의 운명까지 떠올리게 된다. 특히, '한국 경제 도약의 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건희 삼성 회장이 최근 유명을 달리한 것을 계기로, 민족경제 미래를 위한 한국 기업문화의 명암(明暗)과 재창달 방안을 실질적으로 조명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준은 실사구시(實事求是)다.

모처럼 형성된 이 회장에 대한 국민적 추모 열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를 녹여내고,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국가경제력 순위변동 시사점

한때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회의의장 그레고리 맨큐는 “잘사는 나라들이 계속해서 부자 나라로 남아 있거나, 가난한 나라들이 영원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것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그가 약 100년 동안의 세계 13개국 ‘경제 성적표’를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1870년 세계 최강의 국력, 가장 부유한 국가로 꼽히던 영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826달러로 당시 미국의 1인당 GDP보다 20% 정도 높았고, 캐나다의 1인당 GDP의 2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한 끝에 1997년에는 1인당 GDP가 미국과 캐나다에 밀리고야 마는 수모를 당했다.

또 일본은 영국과 정반대의 사례로, 지난 1890년 일본의 1인당 GDP는 1196달러로 멕시코보다 약간 높고 아르헨티나에 비하면 훨씬 낮았지만,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1890∼1997년까지의 1백년동안 연 평균 2.82%의 줄기찬 성장률을 기록,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 부재로 오랜 기간 세계 최빈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례로는, 1900년 495달러이던 1인당 GDP가 1백년가까이의 세월이 흐른 1997년까지 불과 1050달러로 증가하는데 그친 방글라데시로 제시되었다. 이는 1백여년 전인 1890년의 일본보다도 낮은 수치로 방글라데시는 1백년의 세월동안 연 평균 불과 0.78%의 ‘거북성장’밖에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남·북, 경제 분야 대역전

우리 한반도 사정도 유사 선상에서 비교해 볼 수 있다. 통계청은 국내외 북한 관련 통계를 모아 분석한 ‘2018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를 발간한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남북한의 국민총소득(GNI)은 각 1730조4614억원과 36조6310억원이다.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의 약 47배인 셈. 국민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1인당 GNI도 남한(3364만원)이 북한(146만원)의 23배에 이른다.

하지만, 원래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살았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히려 북한이 남한을 앞섰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유엔 등 국제기구에 따르면 ‘8·15광복’ 이후 상당기간 GNI나 1인당 GNI가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패망 이전 중국 침략을 위해 지하자원이 풍부한 한반도 북부 지역에 각종 공장이나 발전 시설을 집중시켰다. 이 때문에 북한은 변변한 산업시설이 거의 없었던 남한보다 초기 경제 개발 여건이 훨씬 유리했다. 실제로 북한은 6·25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54년에서 1960년까지 매년 20∼30%씩 경제 성장을 했다. 1960년대 들어서도 북한은 매년 10%대 정도의 성장률을 보여 뒤늦게 경제개발 경쟁에 뛰어든 남한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남북한 경제력은 1970년대 중반경 역전된다. 북한은 당초의 유리한 여건에도 불구, ‘주체사상’을 내세워 자급자족형계획경제 체제에 치중하면서 국제경제 흐름에서 고립됐기 때문이다. 국제교류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기보다 대남 적화(赤化)나 권력세습 같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민들을 외부와 단절시키는 비효율성을 선택하면서 추락해 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남한은 외국 자본을 적극 끌어들이고 기업가 정신을 부추기는 등 국제경제환경에 신속히 부응하는 활발한 개방 정책을 꾸준히 펼쳐, 드디어 북한에 뒤졌던 경제 분야에서 대역전을 하게 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국가의 흥망이 이렇게 쉽게 뒤집어 질 수 있다는 극명한 경우를,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한반도땅에서 생생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반(反) 대기업 정서 왜 왔나

그 핵심에는 바로 기업이 있다. 주요 그룹 창업주들과 회장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계, 학계 등의 쟁쟁한 인물을 뒤로 하고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그들이 오늘날 기업을 세계수준의 명성으로 키워왔고, 어쨌든 지금의 한국경제를 만들어 낸 견인차, 사실상의 ‘주력’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얼굴’. ‘코리아 브랜드’로 자리잡았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사회에는 그동안 반(反)기업정서가 만연돼 왔다. 사실상의 ‘반(反) 대기업(大企業)’ ‘반(反) 재벌(財閥)’정서를 의미한다. 왜 이런 결과가 왔는지, 그 결과에 따른 국가적 역기능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재계가 국가산업의 원동력이라는 모습은 간과된 채 과거 부정적 행태만 부각되다 보니 일정부문 대기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흐르고 있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중등교사 경제교실 프로그램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재벌들이 정권의 힘에 휘둘렸던 과거의 모습에 응답자들이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인 교사의 54.7%가 대기업에 대해 ‘반(反)대기업정서’를 나타냈고, 이어지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장 잘못하고 있는 점’을 묻는 질문에도 정경유착(54.7%)을 가장 많이 꼽아, 과거에 횡행한 정치자금 등 정경유착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투자 환경 구조적 장애

이같은 여론흐름이 오랫동안 계속되다 보니, 여론을 중시하는 오랜 민주화 정권기를 거치면서 재벌규제가 강화되고, 오히려 엄격해지는 정책흐름을 보여왔음은 어쩔수 없는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재벌규제 정책흐름은 날로 치열해지는 국경없는 ‘무한 경제전쟁(經濟戰爭)’속에서, 한때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평판까지 얻었던 한국 대기업군, 좀 더 직접적으로 좁히면 총수오너 개인의 세계를 향한 불굴의 도전정신과 창의력 및 국부창출 사명감의 의욕을 꺾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 한국경제 구조에 핵심적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업의 활발한 국내투자 환경을 저해하는 구조적 장애가 형성되어 왔음을 부정할 길 없다.

민주화정권기의 그런 오랜 정책흐름은, 한마디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아무리 수출과 이익창출을 많이 해도, 대기업주도의 한국경제구조에서 악화되는 민생경제(民生經濟)의 본질적 처방책과 연결되지 못하는 정치.사회적 배경이 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등 한국의 많은 주력기업들이 '나라가 자꾸 이런 식으로 가다간, 공장과 본사까지 해외로 빠져나가야겠다'는 최후의 복안을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과연 이런 기류가 계속되어도 되는 것인가. 최근 정부가 반재벌에서, 친(親)재벌로 전환하겠다는 말을 아무리 자주 강조해도, 탁상공론식 정책노선이 근본적으로 개혁되고 발상의 환골탈태가 이뤄지지 못하는 한, ‘한국호’의 장래가 과연 밝다고 볼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중적 감축현상 발생

문제의 심각성은 더 깊은 곳에 자리한다. 우리경제에서 기업의 선순환구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1960년대, 거의 아무것도 없던 불모지에 많은 새로운 기업이 태어났고, 이들이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자라고 성숙하고 발전하여 지금 한국경제를 책임지는 중견기업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 경제가 4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엄청난 규모로 신화적 성장을 한 데는 이런 기업 생태계의 작동메커니즘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의 대기업 중견기업들도 태어날 때는 모두 중소기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시점에도 많은 기업들이 태어나고 자라 가야만 앞으로 우리 경제가 더욱 발전할 수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지금 이런 선순환 구조는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새로 태어나는 기업의 숫자가 줄고 있다. 기업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기존기업에 대한 신규투자도 줄어들고 있다. 자녀 출산을 줄이면서 있는 자녀에 대한 투자비마저 줄이는 식의 이중적 감축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도 국가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하겠는가. 신설법인이 줄어드는 이유도 비슷하다. 규제는 심하고, 땅값은 비싸고, 임금과 세금도 높고, 게다가 OECD 최고 수준의 반기업정서까지 감안하면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키워나가기는커녕 있는 기업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라는게 많은 기업인들의 토로다. 따라서 지금 우리경제에 나타나고 있는 광범위한 ‘저출산 현상’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부재와 불확실성의 증대에 대한 반증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북한체제 불확실성 중대 변수

특히 우리의 경제환경적 리스크 요인으로서, 북한체제의 불확실성을 중대 변수로 꼽지 않을 수 없다.

2021년은 북한체제의 향방이 결정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그것은 외부 세계의 대북 압박이 핵문제뿐 아니라 인권과 탈북자문제 등 북한체제의 전반을 향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 저변의 자유화 바람, 통제체제의 이완 등에 따른 북한 내부로부터의 변화 압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견해도 높다. 북한 정권이 이런 안팎의 도전과 시련에 적절히 대응하고 적응해 나갈 역량과 유연성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임은 냉정한 국제적 현실이다.

그럼에도 북한 정권은 최근 극비문건을 통해 보도된 대로,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채 아직도 어처구니 없는 ‘강성대국’ ‘전쟁준비’에만 모든 국력을 쏟아 붓고 있다. 국제적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태세가 현재로선 전혀 아니다.

그래서 북한 경제의 장래는 더욱 암담할 뿐 아니라, 우리의 경제환경적 리스크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등을 통해 남북경제협력의 돌파구를 열겠다고 하지만, 북한 정치체제의 불안요인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북핵(北核)의 투명한 포기등 국제적 요구가 완전 해소되지 못하는 한, 협력기반의 취약화는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내년은 그렇게 남한경제도, 북한경제도 또다른 시련의 큰 전환점을 맞게될 공산이 짙다.

세계 선도 일류기업 이상의 의미

이런 대전환기에 우리는 이건희 삼성회장의 서거가 남긴 실질적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이 회장의 서거는 확고부동한 재계 1위 그룹의 총수, 반도체와 모바일 등 분야에서 세계 선도 일류기업의 토대를 닦은 경영인이 생을 마감한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는 양보다 질에 승부를 걸었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말라"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어록에서 이 회장의 결기를 느낄 수 있다. "정치는 4류, 정부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솔직한 평가는 제 발 저린 정치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 회장은 지난 33년간 삼성의 눈부신 성장을 견인해 냈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라는 슬로건 아래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면서 '세계의 삼성'을 일궈냈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 개 품목에서 그룹을 글로벌 1위로 키워낸 주인공이었다. 

지난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더니 미국 애플까지 따라잡으며 스마트폰 시장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재임기간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1987년 9000억원에서 2014년 318조원으로 348배나 늘었다. 이 회장이 만든 토대 위에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글로벌 5위까지 올랐다.

그의 삶은 기적의 한국경제와 궤를 같이한다. 인생 역정과 그가 경영한 기업의 행로가 명과 암으로 새겨진 한 시대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지만, 삼성전자를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고 앞서 나가는 기업의 하나로 키워낸 일등 공로자가 이 회장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초일류 기업 삼성을 일군 고인의 도전과 혁신 정신은 기억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삼성이란 기업을 넘어 우리 재계 전체로 확산돼 추락하는 한국 경제를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그가 남긴 '신경영 철학'이 빛을 잃지 않고 다시 한번 활짝 펴지길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를 세계 중심 무대로 

이 회장이 1987년 삼성그룹의 총수로 취임한 후 세계적 기업인으로 올라서는 과정과 시기는 한국의 기업들, 나아가 한국의 경제가 미국 일본 유럽의 변방에서 세계 경제의 중심 무대에 올라서는 맥락과 일치한다. 

이 회장의 업적은 기록적이다. 삼성이 ‘세계 초일류’로 도약한 시기에 대한민국 경제도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1992년 D램 반도체가 세계 1위에 올랐고, 여전히 시장을 주도한다. 2006년 디지털 신기술과 새로운 디자인으로 무장한 평판 TV를 출시한 이후 세계 가전 시장에서 일본·독일 제품을 능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진정한 극일(克日)이 무엇인지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하거나 눈동냥으로 시작했던 삼성전자는 2018년 일본 10대 전자회사 영업이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가 넘는 이익을 거두었다. 

오늘의 현실도 그렇다. 최근에도 사방이 꽉 막힌 경제여건에서 올 3·4분기 반도체·자동차를 앞세운 수출이 전분기 대비 무려 15.6%나 늘었다. 위기 때마다 등불이 돼준 존재는 역시 기업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특히, 반도체 강국 한국 기업의 선전은 지금도 대단하다. 세계적으로 공장이 멈춰 서는 등 차질을 빚는 일이 속출했지만, 우리 기업들은 놀라운 대응력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후 매출은 10조원에서 339조원으로 34배나 늘었다. 10만명이던 임직원은 국내외 합쳐 42만명으로 늘었다. 이 회장은 취임사에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초일류기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발언은 의례적인 취임사 정도로 여겨졌지만 그는 실제로 꿈을 이뤄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싸구려 전자제품이나 만들던 삼성을 전자 분야의 거인으로 탈바꿈시켰다”고 이 회장의 타계를 애도했다. 그는 불굴의 집념과 혁신경영으로 첨단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행동으로 실천한 기업인이다.

정치와 행정은 뒷걸음

그러나, 아직도 국내 경제환경은 간단치 않다.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 같은 글로벌 기업을 빼면 1류 기업이 얼마나 되는가. 정권 눈치만 보는 행정 관료는 3류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는 4류도 못 된다.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더 많이 나오게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코로나19 등 국내외 여러 악조건으로 경제 침체 위기감에 빠져 있다. 구태의연한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을 떠난 이 회장의 가장 큰 메시지인 '혁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환골탈태의 노력으로 세계 일류로 일부 도약하는 동안 우리 정치와 행정은 발전 대신 뒷걸음질 쳤다. 이 회장의 “정치는 4류” 발언 이후 정권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국민 통합과 협치의 정치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정치권의 진영 논리는 더 심각해졌다. 

당장 4·4분기 글로벌 시장 환경은 어둡다. 냉혹한 현실을 헤쳐나가야 하는 기업들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발목만 잡고 있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정작 성과를 내는 곳은 기업밖에 없는데도 현실은 온통 규제투성이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라던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따끔한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의 최저임금 상승을 필두로 적폐 청산 및 코로나 쇼크 와중에서 기업인을 때리고 기업을 옥죄는 일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제·개정안은 '공정경제 3법'이 아니라 '기업규제 3법'이란 비판이 무성하다. 

세계시장에서 뛰는 일류 기업의 발목을 잡고, 중소 중견기업들을 해외로 내몰아 한국은 갈수록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향해 가고 있다. 고용·노동 법규는 친노조 일변도다. 기업은 생사의 절벽에서 발버둥 치는데 정치는 기업을 옥죄는 일만 자꾸 만들어낸다.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은 삼성 반도체 송전선 연결에만 5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율 탓에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필수적인 이건희 회장 지분을 상속하는 데만 10조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 한다. 

삼성도 녹록지 않은 환경에 맞닥뜨렸다. 핵심 사업인 반도체는 중국이 국운을 걸고 추격하고 있다. 반도체를 뒤이을 미래 사업은 확실치 않다. 기업의 윤리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3년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이 회장이 설파했던 ‘1등의 위기’가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다. 당시 이 회장은 해답을 제시했다. 키워드는 그가 실천해 왔던 도전과 혁신, 창조 경영이었다. 삼성뿐 아니라 이 시대 한국의 기업인들이 되새겨야 할 금과옥조(金科玉條)다. 

반(反)기업 정서와 규제 털어내야 

마침 국내 4대 그룹 총수가 4050세대 중심으로 바뀌며 재계에 젊은 리더십의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로 인한 위기 상황이지만 초일류 기업을 향한 열정 넘치는 도전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초일류에 대한 도전과 열정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기말적 대격변의 시대를 맞은 지금도 변치 않는 것은 초일류만이 살아남는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진리다. 이 회장이 남긴 도전과 혁신(革新)의 정신은 국가적으로 계속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대한민국 기업은 세계 초일류인데 정치 행정은 아직 그 모양이냐는 말을 들을 것인가. 결국 우리 경제와 기업이 초일류로 확고한 성장을 다지기 위해서는 정치나 행정에도 기업 못지않은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미국·중국 등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업 지원에 나서는 것은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 정권은 정치 논리에 빠져 기업·기업인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가장 비효율적이고 저급하다는 평가를 받는 4류 정치가 1·2류 기업을 핍박하면 한국 경제는 망할 수밖에 없다.

이건희는 한국 경제와 사회, 기업의 앞날을 늘 깊이 고민했다. 그러면서 안으로는 "우리 역시 그동안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이웃 사회와 상생의 길을 걷는 데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봐야 할 것"이라며 겸허한 성찰을 주문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와 기업을 옭아매는 규제를 털어내야 기업도, 사회도, 국가도 초일류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이 회장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이기도 하다. 우리 경제의 제2도약을 가능하게 하려면 기업에 족쇄를 채우기보다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정치·사회 환경 조성이 필요한 때다.

불퇴전의 산업영웅들 다시 키우자

그렇다면, 민족경제 차원의 처방은 무엇이 돼야 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우리경제 사정으로 보거나, 민족경제 전체적 차원에서 보거나, 당장 현실적으로 돌파구의 묘약(妙藥)은 매우 어려운 상태다. 설령, 일각의 진보적 세력권에서 주창 되는대로 통일논의에 탄력이 붙는다 하더라도, 민족자존과 생존의 핵심 기반인 ‘경제’에 대한 전망은 남북 모두 불확실성 투성이다.

독일통일의 예에서 보더라도, 그 실질적 저력은 서독의 경제였다. 그것은 국제사회의 냉엄한 교훈으로, 오늘의 한반도 경제 체질과 구조로서는 민족경제와 7천만 구성원전체의 장래도, 진정한 통일도 결코 담보될 수 없음이 더욱 선명해진다. 

민족전체를 살리는 길은 그래도 우리의 기업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한국경제와 민족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길은, 세계적 고도성장 신화 창출에 성공했던, 우리의 기업가 정신을 다시 어떻게 일으켜 세우느냐에 있다.

이제라도 기업인에게 더 적극적인 국가적, 사회적 애정을 집중하고 이를 저해하는 제도 개혁을 과감히 함으로써, '산업영웅'을 많이 나오게 하는 것만이 경제회생, 더 나아가 우리의 소득 달성을 앞당기는 길이 될 것이다.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을 펼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는 정부의 각종 규제, 전투적인 노동운동, 지나친 분배주의 등이 지양돼야 하는 것도 그 방법중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문제의 요체는 정부의 자세이고, 국민의 마음이다. ‘산업영웅 시대’의 재탄생으로 경제회생, 국력 재도약의 대전환을 일궈내기 위한 국가적, 국민적 응집이 지금만큼 절실한 때가 또 있었을까.

이를 위해선 물론 기업가들도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 선진 윤리경영을 더욱 강화하고, 스스로의 도덕성 제고 및 전문성 함양과 관련, 사업보국의 차원에서 각별한 자발적 노력이 있어야 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 ‘신화’에 도전해야 한다. 후손들이 영원히 살아가야 할 금수강산 이 땅, 시대는 변해도 민족은 영원하다. 넘치는 기업사랑으로, 불퇴전의 산업영웅들을 다시 만들어 키워내자.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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