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경제부총리 사표 소동과 ‘포퓰리즘’ 정치
[이병도의 時代架橋] 경제부총리 사표 소동과 ‘포퓰리즘’ 정치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0.11.07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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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청 독주 정책표류로 국민 폐해
엇박자 경제정책 난맥상 심화
관료 전문성 훼손 무력감 洪 부총리
주식 양도세·재산세 기준 혼란
오락가락하면 시장 신뢰 잃는다
'아르헨티나의 비극' 교훈 새겨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근 사표 소동은 여러 차원의 문제들을 남겼다. 국가 운영상의 과제를 등장시켰다. 

코로나 사태라는 미증유의 위기 속에 중간계투로 나서, 나름대로 선방한 홍 부총리의 공이 적지는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투성이가 됐다. 관료의 전문성이 정권의 포퓰리즘에 밀려 수시로 훼손된 것이 심각한 문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정책 일관성까지 갉아먹는 건 정책이 아니라 정치다. 시장 논리로 풀어야 할 문제를 정치로 접근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경제정책을 짜면서 표심부터 계산하는 여권의 태도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 여당에 밀려 오락가락하는 정부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은 선거를 겨냥하거나 당장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선심성 단기처방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 또 시장 흐름을 무시하고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의 공약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표’퓰리즘에 빠져 추진하면 큰 후유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문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던 홍 부총리가 사표 운운하기에 이른 것은 그 폐해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결국, 개각과 인사 개혁을 한다해도, 포퓰리즘과 코드 인사 기조(基調)를 안 바꾸는 한 무의미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근 사표 소동은 여러 차원의 문제들을 남겼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근 사표 소동은 여러 차원의 문제들을 남겼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근본적 정책 전환 나서야 

국민으로서는, 반복되는 당정(黨政)간 대립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의문이다. 정당이 여론을 수렴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에 너무 민감하게 움직이는 것이 문제다. 

이제라도 세금만능주의를 뒤로하고 근본적인 정책 전환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초슈퍼 예산이라는 512조 원을 넘어 내년에 무려 555조 원짜리 예산안을 내밀었다. 올해 적자 국채 규모가 100조 원을 넘어선다. 2019년까지 흑자였던 통합재정수지는 올해 30조 원, 내년 72조 원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 37.7%에서 올해 네 차례 추경으로 43.9%로 올랐고, 내년엔 47.1%로 오를 것으로 추산된다. 포퓰리즘 망국(亡國) 우려가 나올 정도다. 

역사의 교훈은 중요하다.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디폴트(채무불이행) 기로에 섰다. 2019년 대선에선 다시 기존의 페론주의 정부를 택했고, 지금 또다시 디폴트 위기에 처한 것이다. 포퓰리즘에 중독되면 어떤 미래가 열리는지 오늘의 아르헨티나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론 흐름도 문제 

홍 부총리는 주식 양도세 논란으로 야기돼온 시장 혼란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사의를 반려했으나, 당정 간 정책 갈등이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계속돼선 안 될 일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홍 부총리는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경제를 보는 눈이 정치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더불어민주당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관료들을 둘러싼 여론 흐름도 문제였다. 정치권의 압박에 입장을 바꾸면 ‘소신 없다’는 비판을 듣고, 경제관료로서 소신을 내세우면 이번에는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으로부터까지 해임 압박을 받는 식이었다. 홍 부총리가 사표를 제출한 것은 이 같은 상황과 무력감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정 관계만 놓고 보면 홍 부총리는 당에 맞서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여론은 그런 홍 부총리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이른바 임대차 3법은 전세대란을 불렀다. 임대인도 임차인도 모두 화가 났다. 이 마당에 한 나라의 경제수장이 전세 입주자에게 퇴거 위로금을 지급했다는 소식은 웃음거리가 됐다. 이른바 동학개미(개인투자자)들은 청와대에 홍 부총리 해임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경제팀장으로선 수모가 아닐 수 없다. 

일관성 결여 관건 

정책적 신뢰여부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이번 홍 부총리 사퇴 소동과 관련, 문제가 된 주식양도세 기준 변경은 2018년 시행령 개정으로 내년부터 3억원으로 낮추기로 돼 있는 것을 뒤늦게 개인 투자자들에게 미칠 여파를 고려해 없던 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문제다. 

모든 사안을 대중의 선호에 따라 결정하려 하니, 꼭 필요한 정책이 실행되지 않거나 일관성을 잃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잇따른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집값이나 전세 시장 등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국민 불신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일관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데는 아파트 공시가격 반영률에 대한 여당과의 이견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2030년까지 90%로 올린다는 방침을 밝혔는데, 여당이 80%로 속도 조절을 주문하자 이것마저 본인의 의지가 관철되기 어렵다고 보고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정부가 공시가격 반영률을 당초 계획대로 90%로 유지키로 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의 책임은 역시 크다. 현 정부 들어 경제부총리는 물론 대부분의 장관들은 ‘청와대 2중대’ 소리를 들어왔다. 청와대와 여당이 주요 정책 결정을 주도하고 전문관료들은 ‘들러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너무도 잦기 때문이다. 이념을 앞세운 정치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문가의 경험과 식견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끊이지 않은 마찰 

이런 구조 속에서 이번 일은 홍 부총리가 경제수장으로서의 리더십에 한계가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사실 홍 부총리가 주요 정책과 관련, 청와대나 여당의 반대로 소신을 접거나 원래 입장에서 후퇴한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대상, 재정준칙 제정 여부, 증권거래세 인하 등 여권과 의견이 갈렸던 일곱 번의 주요 사례에서 모두 자신의 소신을 접거나 물러서야 했다. 

지난 3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때 민주당은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을 6조원 이상 증액하려 했으나 홍 부총리가 재정건전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이때부터 당에선 “홍 부총리를 해임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4월 지급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기재부가 소득 하위 70% 지급을 주장했으나 민주당이 전국민 지급을 밀어붙였고, 6월 3차 추경 편성 때도 당정 간에 대학등록금 반환 지원금 포함을 놓고 이견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그때마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해달라”며 홍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이번에도 즉각 사표 반려로 사태를 무마했다. 

당정 마찰은 실로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엔 기재부가 재정준칙안을 내놓자 당에서 너무 깐깐하다며 태클을 걸었다. 

'포퓰리즘' 반향(反響)과 역사

문제의 핵심은 '포퓰리즘'의 반향(反響)과 역사다. 전 국민을 상대로 세금을 올려놓고 선거의 유불리를 따져 ‘선별적’으로 깎아주겠다는 것은 편가르기식 ‘표퓰리즘’이며, 표를 얻는 일은 무엇이건 하는 집권세력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미국 대선이라는 불확실한 변수와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라는 점은 이해된다. 그렇더라도 3년 전 세법 개정을 통해 대주주 기준을 내년까지 단계적으로 3억원으로 낮추겠다며 시행령까지 개정한 사안이 정치 앞에선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10년에 걸쳐 공시지가 현실화율을 시세의 90%까지 맞추는 로드맵까지 확정하자 민심이 싸늘해지고 있다. ‘꼼수 증세’라는 비난의 목소리와 함께 조세저항 움직임까지 가시화되고 있다. 이대로 가선 안 된다. 

역사를 되돌아 봐야 한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만 해도 자원부국이면서 곡물·육류 수출강국으로 세계 5대 경제대국이었다. 그랬던 나라가 IMF 구제금융만 22회나 받고 경제위기 때마다 가장 먼저 디폴트 가능성이 거론되는 처지가 됐다.

아르헨티나가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은 대중인기영합 정치와 선심정책, 즉 포퓰리즘의 폐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후안 페론 집권 이래 70여 년간 이 나라를 지배한 페론주의는 급격한 임금 인상, 복지제도 확대, 세금 인상 등으로 이어졌다. 악순환이 끝 모르고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혼란 자초 말아야 

'포퓰리즘'은 항상 경계돼야 한다. 정책 엇박자가 백일하에 드러나면 시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그 손실은 국민에게 전가된다. 현행 경제팀은 기존 정책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경제정책을 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경제부총리의 행보가 국정 철학과 맞지 않다고 여긴다면 차라리 부총리를 교체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경제 수장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정책을 협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와대와 여당의 ‘정책 폭주’가 멈추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홍남기’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문 정부는 앞으로 1년 반 이상 남았다. 경제에도 요령 있게 5년을 마무리할 마무리 구원투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시장 흐름이나 경제 여건을 제대로 감안한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더 이상 혼란을 자초하지 않길 기대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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