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량 레미콘 단지명, 반드시 공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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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불량 레미콘 단지명, 반드시 공개해야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11.13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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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2년 전 일이다. 당시 본지는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사가 시공한 한 아파트에서 대규모 부실시공으로 의심되는 부분들이 대량 발견됐고, 향후 입주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는 기사를 냈다. 곧장 해당 업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자로 볼 여지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입주민들이 집값에 민감하니 단지명이라도 이니셜 처리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부동산에 울고 웃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요청이다. 그러나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가능성이 낮더라도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고, 손바뀜 시 2차 피해도 우려됐기 때문이다. 공익을 위해서는 단지명을 알리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불량 레미콘 사태가 발생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경찰과 업계 등에 따르면 신성콘크리트공업은 2017년 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규격 미달 레미콘을 만들어 수도권에 위치한 건설현장 422곳에 납품했다. 또한 건설사 관계자들은 불량 레미콘임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대가로 신성콘크리트공업으로부터 뒷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시가 약 900억 원(124만㎡)에 이르는 불량 레미콘이 수도권 일대 아파트, 오피스텔, 공장 등을 짓는 데에 무분별하게 사용됐다. 각 건설현장이 모두 아파트 또는 오피스텔이라고 가정하고, 각 현장당 공급물량 500세대, 세대별 3인 가구로 계산하면 적어도 6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대규모 하자, 재난 등에 따른 피해에 노출된 셈이다.

하지만 이들 60만 국민은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자신들이 먹고 쉬는 집이 부실하게 시공됐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안전사각지대에 놓인 실정이다.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사건인 만큼, 피의사실공표라는 명분을 들어 어떤 건설사들이 불량 레미콘을 사용했고, 이 레미콘이 어느 단지에 납품됐는지를 검경이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일산 집값 5억 원 발언' 논란과 같은 일이 생길까 두려워 수사당국이 업체 이름과 단지명 공개를 꺼리는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지난해 성신양회는 불량 레미콘을 270개 건축현장에 공급해 900억 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까지 받았으나, 불량 레미콘이 사용된 단지명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유통 정황은 언론과 몇몇 피해 주민들의 노력에 의해 일반에 밝혀졌다. 성신양회발(發) 불량 레미콘은 '힐스테이트 운정'·'고덕 아르테온'(현대건설), '역북 지웰 푸르지오'(대우건설·신영), 운정 아이파크'(HDC현대산업개발), '하나 유보라스테이'(반도건설), '용인 고림지구2차 양우내안애 에듀퍼스트'(양우건설), 'LG디스플레이 P10 파주공장'(GS건설), '구리~포천 간 고속도로 2공구'(대우건설) 등 현장에서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중에 제일은 생명이다. 건축물 부실시공의 대가는 너무나 크다. 괜한 걱정이라는 핀잔과 집값 하락 가능성에 따른 불만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재난은 항상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검경, 국토교통부 등 관계당국은 계획적·조직적으로 국민들을 안전 사각지대로 몰아넣은 불량한 범죄기업, 힘들게 내 집을 마련한 국민들을 우롱한 범죄자들을 엄벌해 본보기로 삼고, 수사·조사 결과를 낱낱이 공개해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고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한다. 국민들도 안전불감증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집값 지키겠다는 욕심 때문에 나 자신과 내 가족, 주변 이웃들의 생명이 위협받을 가능성을 단 0.001%라도 높여서야 되겠는가. 누군가의 입을 빌리자면 그것이야말로 '천박한' 것이다.

이번에는 불량 레미콘이 들어간 건설현장이 어디인지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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