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인규 “YS, 초등학생 손주에게 여론 청취하던 할아버지”
[인터뷰] 김인규 “YS, 초등학생 손주에게 여론 청취하던 할아버지”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11.13 18: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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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YS) 손자, 김인규
“YS…내가 넘어야 할 산이자, 넘을 수 없는 산”
“IMF에 가려진 YS 재평가 위해 정치 시작했다”
“文, YS 유훈 ‘통합과 화합’ 정신에 맞지 않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YS 5주기를 앞둔 9일, 의원회관에서 김인규를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YS 서거 5주기를 앞둔 9일, 의원회관에서 김인규를 만났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이야기가 아니다. 할아버지께 사랑을 듬뿍 받은 손자인 동시에, ‘YS 손자’란 수식어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32세 청년의 이야기다.

청와대를 뛰놀던 어린 손자가 어느덧 할아버지가 정치에 입문한 만 26세를 훌쩍 넘겼다. 김인규는 YS의 차남, 김현철 동국대학교 교수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YS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해 만 세 살이었다. 그에게 대통령 YS는 20대와 30대가 기억하는 모습과도 비슷했다. 손자인 그에겐 따뜻한 할아버지였지만, 동시에 젊은 세대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IMF 대통령’의 이미지가 존재했다.

“YS는 여느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았어요. 손주들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AB형이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해요. 승부욕도 있는 게 할아버지와 닮았다면서요. 솔직히 크면서는 좋은 기억이 많이 없어요. 임기 말 IMF를 거치면서, 초등학생 때는 몇몇 친구들에게 맞기도 했었거든요. 대통령으로서 YS의 호감도는 낮았어요.”

하지만 김인규는 정치를 택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듣고 배운 게 정치라서. 다른 하나는 IMF에 가려진 YS 재평가를 위해서다.

“할아버지는 IMF 때문에 공(功)에 비해 과(過)가 부각돼 있어요. 금융실명제, 하나회 청산, 공직자 재산공개, 지방자치제 도입 등 좋은 정책을 많이 시행했는데도 말이죠. 이런 개혁적 성과를 정치권 안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 재평가와 동시에, 유훈인 ‘통합과 화합’을 받들기 위해 정치를 택했어요.”

YS 서거 5주기를 앞둔 9일, 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현재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의 정책비서로 일하고 있다. 2017년 정병국 의원실에서 대학생 무급 인턴으로 시작한 그는, 차근차근 정치를 배워나가고 있다.

 

할아버지 YS


YS 손자 김인규 비서는 “할아버지가 퇴임 이후에도 고작해야 초중생인 손주들의 여론을 귀담아 들으셨다.”고 회고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YS 손자 김인규 비서는 “할아버지가 퇴임 이후에도 고작해야 초중생인 손주들의 여론을 귀담아 들으셨다”고 회고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할아버지 YS에 대한 기억은 언제부터인가.

“초등학생 때다. 당선되던 92년도엔 3살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재임 중 기억나는 건 없나.

“그때의 기억은 있다. 젊은 세대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와 내 기억의 출발점도 비슷하다. 어릴 적 주일에 예배도 드리고, 할아버지를 뵐 겸 청와대에 들어가면 칼국수가 자주 나와서 어린 마음에 싫증이 났다(웃음).”

YS는 칼국수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민정부 당시 청와대의 각종 회의와 회담 자리에는 어김없이 칼국수가 올라왔다. 이는 단순히 그의 식성을 상징하지 않는다. 서민 음식을 즐기던 YS의 소탈함과 검소함이 담겨있다.

- 청와대에서의 추억이 있다면.

“일반인들은 청와대를 웅장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 내가 마주한 청와대는 일종의 집과 같았다. 형과 식탁 아래를 기어 다니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나무라지 않고, 마냥 예뻐해 줬다.”

- 할아버지와의 특별한 일화를 소개해 달라.

“할아버지가 소통을 잘 하시는 걸로 알려져 있지 않나. 초등학생인 나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내게 ‘학교생활 어떻냐’는 일반적인 안부가 아닌, ‘학교에서는 할아버지에 대해 무슨 얘기가 있냐’고 물었다. 당시에는 왜 이런 걸 여쭤보나 했는데, 크고 나서 생각해보니 일종의 여론 청취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임 후에도 초중생인 손주들의 여론을 귀담아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내가 캐나다에서 6~7년 유학 생활을 했다. 기념품으로 산 캐나다 국기가 그려진 옷을 보더니, 할아버지께서는 다른 나라 국기가 그려진 옷을 밖에서 입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팔에 붙은 작은 캐나다 국기를 매직으로 까맣게 색칠해서 다녔다. 그만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던 분이다.”

김인규 비서(윗줄 가운데)의 어린 시절 사진이다. 그를 안고 있는 사람이 YS 차남 김현철 동국대 교수, 아랫줄에 YS가 있다. 김 비서는 “전반적으로 3대가 엄청 닮았다”고 설명했다.ⓒ김인규 제공
김인규 비서(윗줄 가운데)의 어린 시절 사진이다. 그를 안고 있는 사람이 YS 차남 김현철 동국대 교수, 아랫줄에 YS가 있다. 김 비서는 “전반적으로 3대가 엄청 닮았다”고 설명했다. ⓒ김인규 제공

- 3대(할아버지-아버지-본인)가 닮은 점이 있다면.

“외모가 아니겠나. 나는 외탁이라는 말도 있지만, 보시다시피 3대가 엄청 닮았다. 또 식성도 그렇다. 3대가 가리는 것 없이 전부 다 잘 먹는다. 할아버지가 예전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러 소련에 갔을 때, 수행하시던 분들은 현지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고생할 때도 혼자 잘 드셨다고 했다.”

YS는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1989년 6월 소련을 방문했다. 8일간의 방문을 통해 한·소 국교 정상화를 위한 돌파구를 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1990년 6월 노태우는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을 통해 한·소 수교를 이뤘다.

“또 할아버지께서 인사만사(人事萬事)란 말씀을 많이 했다. 그때 발탁한 분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중량급 정치인으로 성장해있지 않나. 보수 쪽에는 김덕룡·김무성·정병국·홍준표·김문수, 진보 쪽에도 노무현·김영춘·박재호 등. 나 역시 그런 가르침 덕분인지 주변 친구들의 지역, 연령, 이념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대통령 YS 그리고 김인규 비서


김인규 비서는 “할아버지를 재평가함과 동시에, 유훈인 ‘통합과 화합’을 받들기 위해 정치를 택했다”고 설명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인규 비서는 “할아버지를 재평가함과 동시에, 유훈인 ‘통합과 화합’을 받들기 위해 정치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할아버지로서와 대통령으로서 YS는 다를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내게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였다. 임기 말 IMF 때문에 어렵게 퇴임하면서, 몇몇 친구들에게 맞기도 했다. 왕따까지는 아니었지만, 그걸로 애들이 시비를 종종 걸곤 했다. 지지율도 뒤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인식이 워낙 안 좋았다.”

- 그런데 결국 정치의 길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치에 노출돼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두 번째는 할아버지 재평가를 위해서다. IMF에 가려진 할아버지를 재조명함과 동시에, 유훈인 ‘통합과 화합’을 받들고 싶다.”

- 지역구를 받지 않고, 보좌진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있나.

“할아버지께서도 장택상 총리의 비서로 처음 정치를 시작했다. 아버지께도 비서로 시작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실력이 부족한데 출마했다면, YS의 후광으로 정치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을 거다. 나는 국회의원으로 직행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다른 청년들처럼 똑같이 지원해서 배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좌진 역시 특혜라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또 ‘YS 손자’라는 수식어에서 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다.

“보좌진도 특혜가 아니냐는 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학생 때 정병국 의원실에서 무급 인턴으로 시작해, 문희상 국회의장실을 거쳐 지금까지 단계별로 급수를 높여가고 있다. 특혜 얘기를 듣지 않도록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 출마할 생각은 있나.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현실 정치에 뛰어들 때도, 쉬운 곳에서 시작할 생각은 없다. 의미 있는 곳에서 도전하며 부딪치고 싶다.”

- 할아버지이자 대통령 YS는 어떤 존재인가.

“YS는 넘어야 할 산이자, 넘을 수 없는 산이다. 워낙 큰일을 많이 한 분이라 쉽게 넘을 순 없겠지만, 극복해야 할 산이 아닐까 싶다.”

김인규 비서는 YS 정신으로 “유훈인 통합과 화합”을 꼽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기억할 때”라고 강조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인규 비서는 YS 정신으로 “유훈인 통합과 화합”을 꼽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기억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YS 정신을 정의한다면.

“유훈인 통합과 화합이다.”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답하고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금은 YS 정신이 없어진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고 국민이 둘로 분열됐다는 얘긴 비단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호사와 의사…. 갈라진 지금의 한국은 YS 정신에 맞지 않다. 당대표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할아버지 문상에서 ‘YS 정신과 철학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그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기억할 때가 아닐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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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 2020-11-14 13:21:29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