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친문에게서 느껴지는 친박의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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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친문에게서 느껴지는 친박의 데자뷔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11.18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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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렬 지지층 좇다 중도층 잃은 친박…친문은 다를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친박은 극렬 지지층을 좇다가 중도층을 잃는 우를 범했다. ⓒ뉴시스
친박은 극렬 지지층을 좇다가 중도층을 잃는 우를 범했다. ⓒ뉴시스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에서는 ‘친박(親朴) 표심 잡기’ 레이스가 펼쳐졌습니다. 비박(非朴)이 바른정당으로 분리되면서 친박이 한국당 주도권을 장악했고, 자연히 대권주자들은 ‘후보 간택권’을 지닌 친박 앞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제 전 최고위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나, 홍준표 전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시사한 것은 모두 이런 이유였습니다.

문제는 ‘친박의 후보’로 선택되려면 국민의 민심에서 더욱 멀어져야 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이 알려진 이후,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여론은 꾸준히 80%수준을 유지했습니다. 탄핵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15%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본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당내 경선 통과가 급했던 한국당 후보들은 하나 같이 ‘탄핵 반대’를 외쳤고, 그 결과는 본선에서의 완패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이와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얼마 전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답변 태도를 질타했다가 친문(親文)의 융단폭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도 지난 12일 연세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워크숍’ 온라인 강연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각각 교육입국과 산업입국을 이뤘다.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호평했다가 비슷한 신세가 됐습니다.

이러다 보니 민주당 정치인들은 친문 눈치 보기에 바쁩니다.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에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아도, 미증유(未曾有)의 전세난에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는 한숨 소리가 가득해도, 정부여당 인사들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공정과 정의는 어디로 갔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와도 민주당 정치인들은 정부 방어에 급급합니다. 모두가 탄핵이 옳다고 말해도, ‘탄핵 무효’를 외쳐야 했던 한국당 정치인들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여론조사를 봤을 때, 중도층 가운데 현 정부여당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리얼미터>가 YTN 의외로 9일부터 13일까지 실시해 16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44.3%, 부정 평가는 51.0%였습니다. 10명 중 5명 이상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정부여당에 조금만 ‘쓴소리’를 해도 ‘배신자’가 되는 상황에서, 중도층을 대변할 수 있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친박의 후보’가 되려면 태극기 부대의 뜻에 따라야 했던 한국당 정치인들처럼, ‘친문의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친문 극렬 지지층에게 발을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극렬 지지층에 대한 ‘화답’은 중도층의 ‘외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과연 민주당은 이 ‘극렬 지지층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현 상황에서, 민주당의 모습에서 한국당의 과거를 연상하는 사람이 비단 기자만은 아닐 겁니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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