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회장, 사면 복권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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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회장, 사면 복권 안된다
  • 김재한 대기자
  • 승인 2009.12.0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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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주장이 여과 없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8월 1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했다. 3개월도 지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 사면 복권 운운할 정도로 뻔뻔한 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공동유치위원장인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간담회를 열고 이 전 회장의 사면 복권을 촉구했고, 조양호 공동위원장(한진그룹 회장)도 지난 19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을 위해 국제스포츠계에서 영향력이 큰 이건희 IOC 위원의 사면과 복권을 국익 차원에서 건의하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20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IOC 위원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백용호 국세청장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이 전 회장이 국가에 기여할 길을 열어줘야 하는 만큼 다른 경제단체들과 상의해 연내 사면을 건의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건희 전 회장의 장조카인 이재현 CJ 회장의 외숙부인 손 회장이 공개적으로 사면을 주장하는 데 대해서, 비판적인 보도도 없이, 마치 사면이 당연한 것처럼 보도하는 작금의 언론보도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평창 올림픽 유치를 내세워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복권을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어서는 안된다.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체육인을 가장한 기업인들의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복권 논의가 이명박 대통령과 주고 받기식의 사면복권을 위한 애드벌룬 띄우기 전략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가진 자들의 법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면 복권 주장은 유전무죄 라는 비판적인 국민 법 감정을 더 자극할 수도 있다.

강원도의회도 이건희 IOC위원 사면 탄원서에서 "비록 법적으로 물의가 있어 상응하는 제재가 있어야 하지만 국격을 높이는데 기여한 공적과 개전의 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록 법적 물의가 있어 상응하는 제재가 있어야 하지만’, ‘국격을 높이는데 기여한 공적과 개전의 정’ 운운하는 도의원들의 수준은 실로 한심하다. 조세포탈로 국가 법질서를 문란케 한 이건희 전 회장의 범법행위에 대해 비록 법적 물의가 있더라도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적과 개전의 정을 감안해 사면복권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적을 운운할 수 있는 가. 오히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국가의 명예를 실추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지금 우리 사회는 법 질서를 헤치는 위험한 주장이 여과없이 보도되고, 언론 또한 이에 편승해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재벌에 대한 무분별한 사면복권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펴왔다. 이 전 회장 문제는 국익 차원에서 접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박용성 전 IOC 위원을 사면복권시킨 전례도 있다. 이건희 복권론은 국민적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이건희 역할론’에서 출발한다.』(서울신문 사설 2009. 11.19)

『IOC는 내년 2월 평창에 대한 실사에 들어간다. 밴쿠버 동계올림픽도 이때 열린다. 이를 계기로 유치전이 본격화된다. 이같이 중요한 시기에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 전 회장이 유치 활동에 나서지 못 한다면 가뜩이나 취약한 우리 스포츠 외교 역량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것과 같다.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국민일보 사설 2009. 11.20)

『이 위원은 이미 국내 사법절차가 끝났기 때문에 조만간 IOC가 이 위원의 자격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특단의 조치로 이 위원의 복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격 박탈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맞게 된다. IOC 위원의 표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건희 위원마저 자격을 상실하게 되면 한국이 그야말로 국제무대의 스포츠외교에서 고립될 것은 불 보듯 하다.』(강원일보 사설 2009. 11.19)

언론에 묻고 싶다. 국익이 무언가, 법 질서를 무너뜨려가면서 스포츠게임을 유치하는 것이 국익인가? 국익 차원에서 사면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어찌 동계 올림픽 유치만이 국익이겠는가. 신뢰받는 법질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국익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법 기강 질서 회복이며, 준법정신이다.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건희 전 회장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준법정신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체육인 이건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법을 지키는 자연인 이건희’가 더 필요하다.

이 전 회장이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기업인으로서의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도덕성과 책임감을 갖고 준법정신을 갖춘 건전한 상식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외국 같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범죄 수위라면 선진국에서는 종신형 감이다. 기업인 부패문제에 우리나라처럼 관대한 국가가 있을까?

“집행유예 5년 선고”도 모자라 이제 사면까지 추진하고 있는 체육계와 이에 편승해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 복권을 촉구하는 기업인들과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강원도의회 의원들의 자질과 수준이 한심해 보인다.

경제를 일으킨 사람은 기업오너만 있는가. 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이 기업을 만들었고, 국가경제를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닌가? IOC 위원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으로서의 준법정신과 도덕성이다.

원칙과 명분을 무시한 유치활동은 또 한 번의 패배의 아픔을 안길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가 이건희 위원에 대한 사면복권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그 자체로 원칙에 어긋난 조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평창 유치를 위해 뛴다고 해서 평창 유치가 가능하다는 보장 또한 없다. 이 전 회장은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 지난 번 두 번에 걸쳐 실패한 평창 유치과정에서도 IOC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난 두 차례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이건희 위원은 전과자가 아니었지만 지금 그는 국내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명백한 범죄자 신분이다. 그런 그가 단순히 사면을 받아 IOC 위원으로 복귀, 외국의 유력 인사들을 만나고 다닐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런 유력 인사들의 눈에 이건희 위원은 이미 '과거의 이건희'가 아니다.

평창은 이건희 위원 한 사람에게 동계올림픽 유치의 사활을 걸고 있는가? 분명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평창이 가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 유치활동을 펼쳐 나가길 바란다. 지금 가진 것들로 유치에 성공할 자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포기할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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