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경제] 대동법의 역습과 월세 4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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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경제] 대동법의 역습과 월세 400만 원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12.0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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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시장 모르는 정부 만나면 비극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예나 지금이나 시장 모르는 정부 만나면 비극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예나 지금이나 시장 모르는 정부 만나면 비극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임진왜란이 끝나자 조선은 만신창이가 됐다. 온 국토가 황폐화됐고,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됐다. 무엇보다도 조세의 근간인 토지와 인구의 감소는 국가 재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선조는 전란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전후복구보다는 자신의 후사에 더 몰두했다. 전란 중 자신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조정을 이끌었던 광해군이 싫었다. 백성이 자신보다 광해군을 더 좋아하고 신뢰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기 끔찍했다. 

선조는 광해군의 치명적인 약점인 후궁소생이라는 점을 악용해 어린 영창군을 내세워 세자 자리를 뺏으려고 했다. 하지만 영민한 광해군은 북인의 힘을 빌어 노쇠한 선조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정권을 장악했다.

광해군은 선조와 달랐다. 전후복구가 급선무였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양전사업과 호적부터 정리했다. 토지복구와 성곽 수리 등 요즘으로 치면 도시 재생 사업도 펼쳤다.

광해군은 이번 기회에 조세제도도 개혁하기로 했다. 조선 백성에게  악몽과 같던 방납의 폐단을 해결하고자 개국 이래 조세에서 자유로웠던 지주층에게도 조세를 부과키로 했다. 이른바 대동법을 실시했다.

당연히 지주층의 반발은 거셌다. 원래 안 주던 것을 주면 그저 그렇지만 줬던 것을 빼앗으면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기득권의 상실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물론 재산상의 손실도 감내할 수 없었다.

광해군은 지주층의 반발에도 북구하고 대동법을 거세게 밀어 붙였다. 일단 경기도부터 시행했고, 점차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의 대응은 조정의 의도와는 정반대였다. 나라는 임금이 주인이지만, 토지는 지주가 주인이었다. 이들이 갖고 있던 토지 소유권은 막강했다. 조정은 이걸 간과했다. 정책 시행자들인 관리들도 지주라는 현실을 너무 무시했다.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지주들의 반격은 교묘했다.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조세를 소작농에게 전가했다. 소작농은 ‘을 중의 을’이다. 결국 지주가 부담해야 할 조세는 소작농의 몫이 됐다. 대동법이 확대되자 민생은 해결되지 않고 더 혼란스러워졌다.

최근 강북에 400만 원짜리 월세가 등장했다고 한다 현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정책의 남발과 실패로 종부세 부담이 커진 집 주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세입자에게 월세 인상의 짐을 떠안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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