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종인과 보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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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종인과 보수의 길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12.0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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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길’ 안 보이고 ‘김종인의 길’만 보여…당내 설득 우선시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도 확장을 꾀하고 있지만, ‘보수의 노력’이 아닌 ‘김종인의 노력’만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오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도 확장을 꾀하고 있지만, ‘보수의 노력’이 아닌 ‘김종인의 노력’만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오늘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보수정당은 두 가지 가치를 추종해 왔습니다. 이념적으로는 반공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주의가 그것입니다.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색깔론’과 진보 정권에 대한 주된 비판 소재였던 ‘사회주의적 정책’은 보수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반공주의와 시장주의는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은커녕 군부독재정권조차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월드컵둥이’들이 투표권을 갖게 되면서 반공이라는 단어는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됐습니다.

또 IMF 외환위기 이후 불어온 신자유주의 바람이 역대 최악의 양극화를 낳자,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죄악시하는 시장 만능주의도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에 직면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결정타’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그 전부터 보수의 주장은 젊은층에게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게 사실입니다.

이렇게 보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김 위원장은 정강정책 첫머리에 기본소득을 명시하고,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는 등 보수정당에게 씌워진 ‘수구적’ 이미지를 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전일보육제와 전일학교제와 같은 실용적인 정책을 제시하면서 중도층의 호감을 사기도 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대국민 사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행보가 ‘국민의힘’이 아닌 ‘김종인’의 판단으로 비친다는 겁니다. 당내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나오는데도, 김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기본소득도, 공정경제3법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도 ‘국민의힘이 달라졌다’는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그저 ‘김종인의 생각이 그렇구나’라고 짐작할 따름입니다.

김 위원장이 ‘보수가 가야할 길’로 ‘중도 확장’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산토끼’를 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좀처럼 중도층이 마음을 돌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국민의힘 내에서는 극우 반공주의와 시장 만능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으니까요. 김 위원장이 떠나도 ‘변화된 국민의힘’이 유지될 것이라는 신뢰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서, 김 위원장이 직접 사과하겠다는 뜻은 좋습니다. 하지만 당내 소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사과가 ‘국민의힘이 변했다’는 이미지로 이어질리 만무합니다. 그저 ‘김종인의 사과’가 될 뿐이죠. 지금 김 위원장이 걸어가는 길을 ‘김종인의 길’이 아닌 ‘보수의길’로 만들려면, 제일 먼저 국민의힘 구성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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