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5·18 왜곡 처벌법…왜 국민을 믿지 못하나
[주간필담] 5·18 왜곡 처벌법…왜 국민을 믿지 못하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12.12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시민 “표현의 자유 보장하면 국민은 그 속에서 올바른 길 찾아간다”…우리 사회 자정능력 믿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최근 국회에서는 5·18 왜곡 처벌법이 통과됐다. ⓒ뉴시스
최근 국회에서는 5·18 왜곡 처벌법이 통과됐다. ⓒ뉴시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100명 중 99명이 ‘A가 옳다’고 말해도, 나머지 한 명은 ‘B 또는 C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국가라고 해서 함부로 개인의 생각과 표현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 같은 표현의 자유 탓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한국전쟁 북침설이나,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폄하하는 시각 등은 모두 표현의 자유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억압하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절대적 가치만 보존된다면 누구나 반론을 펼 수 있고,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사실과는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도 있는 까닭입니다. 개별 피해자가 실체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뒀지만, 특정 사건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폭넓은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말처럼, “국민 위에 군림해서 국민들에게 특정한 사상을 강요하지 말고, 폭넓게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 주면 국민들은 그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정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는 지금껏 그런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는 5·18 왜곡 처벌법이라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5·18 왜곡 처벌법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비방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그러니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폭동이라거나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겁니다.

기자는 5·18 민주화운동이 폭동이라거나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등의 주장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런 역사 왜곡이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배가시킨다는 점에서, 5·18의 왜곡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5·18을 왜곡한다면, 그에 대해 반론을 하면 됩니다. 공론의 장으로 나와, 치열하게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하면 됩니다. 실제로 5·18은 그런 과정을 거쳤고, 우리 사회는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 당시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5·18을 왜곡하는 발언이 나오자, 우리 국민이 ‘여론’과 ‘표’로 그에 대해 심판했던 건 우리 사회의 자정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법을 통해 입을 막는다면, 장기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5·18 왜곡 처벌법이 통과됐으니 한국전쟁 북침설 처벌법도 제정되지 못할 이유가 없고,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왜곡도 법으로 틀어막을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국가권력이 자의적으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 놓고 거짓을 처벌한다고 해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논리가 한 번 만들어지면, 그 논리를 적용해 제2, 제3의 5·18 왜곡 처벌법을 만드는 건 매우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변희재 씨가 ‘나는 광주사태라고 말하는 게 옳다고 본다’라고 생각하는 걸 받아들인다. 저는 광주민주항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견해의 차이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는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기로 했고 국회에서의 법률을 통해 사회적 합의도 이뤄졌지만, 그와 다른 견해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다만 그것에 대해 토론할 수 있을 따름이다.

또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는 글들을 올린다는 이유로 그 사이트를 폐쇄하자는 주장은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자유가 있어야 대한민국이 진짜 자유사회라는 글을 싣는다는 이유로 어떤 사이트를 폐쇄하자는 주장과 똑같다. 저는 일베에서 올라오는 그런 글을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제가 일베 이용자와 같은 사람들에게까지 표현의 자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표현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될 때 모든 선량한 시민들에게 완벽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3년 부산 한국해양대학교 특강 중에 한 말입니다. 현 정부여당이 찬찬히 읽어보면서 깊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