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선조와 히틀러 그리고 정치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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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선조와 히틀러 그리고 정치논리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12.13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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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칠천량 해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배워야 할 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가 앞서면 경제는 망가지기 마련이다. 사진제공=뉴시스
경제적 칠천량 해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우리에게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진제공=뉴시스

선조와 히틀러는 사뭇 차이점이 있으면서도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선조는 무능한데 이순신, 류성룡, 권율과 같은 충신과 애국심이 넘치는 백성들을 만나 천우신조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반면 히틀러는 롬멜과 같은 명장과 세계 최강의 독일군을 보유하고도 망국의 길을 걸었다.

두 지도자의 치명적인 공통점은 무엇일까. 부하들을 믿지 않아서 무리하게 전쟁에 개입해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다만 앞서 밝힌대로 선조는 천우신조로 망국의 길을 피했지만, 히틀러는 독일을 패망으로 몰고 갔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두 사람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군사 전문지식보다 자신의 정치 논리를 우선시했다.

선조와 조정 중신들은 정유재란 직전 일본의 간계에 넘어가 조선 수군 최고사령관 이순신 장군을 전격 해임했고, 심지어 역모죄로 몰아 고문까지 자행했다. 당시 선조와 중신들은 전선 최고사령관의 판단을 무시하면서 일본 첩자의 말만 믿고 부산 공격이라는 무리한 작전을 지시하는 우(愚)를 저질렀다. 적정도 잘 모르고 전장이 아닌 구중궁궐에서 내린 공격 명령은 일본군의 최고 도우미가 됐다.

그 결과, 이순신 장군이 무려 7년간 양성한 조선 수군은 일본군의 덫에 걸려 칠천량 해전에서 궤멸됐다. 임진왜란 개전 이래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무적의 조선 수군은 일본 첩자의 세 치 혀에 무너졌다. 결국 조선 수군의 참패는 병법에 무지한 선조와 문신들이 자초한 비극이었다.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선전선동술에는 능했지만 군사 전략에는 무지했다. 반면 독일군 수뇌부는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만약 독일군에 히틀러와 같은 최고 지도자가 없고, 미국과 같은 막강한 군수 물자가 있었다면 세계 역사를 다시 써졌을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소련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철수를 주장하는 현지 사령관의 보고를 묵살하고 사수(死守)를 명령했다. 히틀러의 허황된 명령에 수십만 명의 독일군은 소련군에 포위된 채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당했다. 결국 독일군은 치욕스러운 패배와 모욕적인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히틀러의 광기에 희생당한 수백만 명의 독일군과 소련군들이었다. 한 사람의 그릇된 광기가 빚은 비극이 바로 스탈린그라드 전투다. 후일 양측의 남겨진 당시 기록에 따르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반면 소련의 스탈린은 소련군 최고의 명장 주코프 장군에게 최대한 전선 지휘 권한을 부여해 전쟁의 판도를 뒤집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소련군은 승기를 잡았고, 독일은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독소전의 승패는 양국 지도자의 역량에 의해 결정됐다.

2020년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민생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정부의 경제정책의 책임이 더 크다. 갈수록 태산인 부동산 정책,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력을 무너뜨린 탈원전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는 경제 전문가에게 맡기고, 시장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정책을 이끌었다. 선조와 히틀러처럼 전선 지휘관들의 의견보다 정치적 판단과 논리에 충실한 정치인들이 경제를 다룬 건 아닐까싶다. 정치 논리가 앞서면 경제는 망가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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