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다수결은 정의로운가
[취재일기] 다수결은 정의로운가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12.14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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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횡포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어느 회사의 최종 실무평가 날이었다. 일주일간 긴 평가의 마지막은 식사 자리였다. 고기집의 하이라이트는 탄수화물. 차례로 된장찌개에 밥을 시키는 분위기였다. 그때 한 지원자가 국수를 외쳤다. 그러자 그 회사의 부장쯤 되는 사람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더럽게 눈치 없네.” (물론 이 사건이 판단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 지원자는 결국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기자의 지인 A씨가 전해준 이야기다.

‘된장찌개’를 택한 다수는 힘이 있다. 다수의 결정은 얼마든지 소수 의견(국수)을 짓밟을 수 있다. 하지만 다수는 그들이 가진 힘으로 충분히 다른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느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중국집 배달을 시키려 한다. 으레 그렇듯 높은 직급부터 차례로 주문할 것이다. 그가 “난 짜장”이라고 답하는 순간, 사실상 직원들의 선택지는 없다. 모두가 6천 원짜리 짜장면을 먹게 될 테니 말이다. 여기서 막내가 5배 비싼 양장피나, 약 6배 비싼 깐쇼새우를 시킨다면? 모두가 아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직원들이 막내의 의견을 들어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맞아요, 깐쇼새우 하나 시키시죠.” 그때부터 ‘깐쇼새우’는 묵살될 소수 의견에 그치지 않는다. 적어도 이를 주문할지 말지 논의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어느 쪽인가. 모두가 된장찌개 혹은 짜장면을 주문할 때,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쪽인가. 아니면 국수나 깐쇼새우를 제기할 수 있는 쪽인가.

 

보장받지 못한 야당의 반론권


최근 국회에서 보여주는 민주주의는 ‘국수’나 ‘깐쇼새우’와 같은 소수 의견을 묵살하는 쪽에 가깝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13일 찬성 180표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종결을 선언했다.ⓒ뉴시스(공동취재사진)

13일 야당의 반론권은 끝내 보장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종결동의안을 냈고, 재적의원 5분의 3(180석)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곧이어 국가정보원(국정원)법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에 이어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법안에 대해 충분한 의사표시를 보장해달라는 야당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는 입장은 3일 만에 뒤바뀌었다. 국민의힘 반론권은 ‘시간끌기’이자 ‘국력낭비’로 정의됐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국민의힘은 최소한의 논리를 갖춘 반대토론을 하기 보단, 주제와는 무관한 시간끌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것은 무제한 토론이 아니라, 무제한 국력낭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야당은 반발했다. 정의당은 “본회의 안건에 대한 반대 의견 또는 소수 의견을 표현할 권리는 충분히 존중돼야 한다”며 표결에 불참하기로 최종 결론 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여당이 의석의 힘으로 야당의 입까지 틀어막는 난폭한 일을 했다”며 “청와대의 2중대일 뿐 도저히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 정당”이라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에 돌입했으나, 민주당 역시 필리버스터 종결동의안을 제출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멈추다


다수가 선택했다는 이유로, 모두가 ‘된장찌개’나 ‘짜장면’을 먹는 상황은 옳은가. 민주당이 보여주는 민주주의는, ‘국수’를 주문한 지원자에게 “눈치 없다”고 비난하는 부장과 다르지 않다.

다수의 결정을 따르는 것은 효율적이며 합리적일 수 있다. 조리하는 입장에서는 시간이 절약되고,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비용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식사자리가 건강한가는 다른 문제다. 효율성에 기댄 다수결의 횡포는 건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국가정보원법은 찬성 187인(100%)로 통과됐다. 단 한 명의 반대나 기권도 없다.ⓒ뉴시스(공동취재사진)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이뤄낸 직선제로, 국민은 직접 정치인을 선출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국민을 대신해 정책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한다. 따라서 국민이 준 180석(現 174석)은 민주당이 내리는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거대한 의석수로 필리버스터를 종결하는 것도(재적의원 5분의 3),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도(재적 과반) 모두 합법이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것은 맞지만, 다수결의 원칙이 곧 민주주의는 아니다. 한 사안에 대한 반대 의견도, 소수 의견도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수학자이자 철학가였던 파스칼은 저서 <팡세>에서 “왜 사람들은 다수에 복종하는가? 더 많은 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라며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졌기 때문”이라 말했다.

“헌법이 끝끝내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민주주의 이해는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데 멈춰있다.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주의 운영원리가 되는 것은 대표가 소속 정당과 출신 지역과 계층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절차에 따른 토론을 통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유로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국회의원들이 청와대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상황에서 다수결은 더 이상 민주주의 원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2010년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 후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왔는가. 민주당 역시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데 이해가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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