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정치권이 주목한 책은?
스크롤 이동 상태바
2020년 정치권이 주목한 책은?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12.25 1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계장 이야기〉, 한 경비원의 죽음이 드러낸 현실
〈시선으로부터,〉, 故 박원순 죽음의 의미
〈한번도경험해보지못한 나라〉vs 〈검찰개혁과 촛불시민〉, 다시 조국 대전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추미애가 꿈꾸는 검찰개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2020년 한 해 정치권이 주목한 책은 무엇일까. 시대의 아픔을 담아낸 도서가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우회적인 비판을 위해 오래된 책이 등장하기도 했다. 책은 정책의 방향을 알려줬으며, 동시에 정치권의 시각을 대신했다. <시사오늘>이 2020년 정치권이 주목한 책을 선정했다. 시간 순으로 나열했다.

 

<임계장 이야기>, 한 경비원의 죽음이 드러낸 현실


ⓒ출판사 후마니타스
ⓒ출판사 후마니타스

지난 5월,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 최 씨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꾹꾹 눌러 쓴 유서에는 “저어 억울해요. 저 도와주셔서 감사함이다. 제 결백 발끼세요”란 내용이 담겼다. 그는 한 주민으로부터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7일 입주민에게 징역 9년을 구형한 상태다.

사건은 ‘저희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졌다. 44만여 명의 동의를 얻자, 정부는 ‘갑질 피해 신고센터’를 통해 갑질 신고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1호 법안으로, 경비원에 대한 부당한 업무지시나 명령을 금지하는 ‘공동주택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사건을 마주하며 주목받은 책이 바로 <임계장 이야기>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이 사건은 착했던 고인이 폭력 성향의 악마를 잘못 만나 벌어진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며 “구조적으로,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책을 소개했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이다. 저자 조정진은 공기업 은퇴 후 버스 회사 배차 관리, 아파트 경비원 등 계약직으로 일하며 겪은 일들을 묶어냈다. 그는 “임계장은 내 부모 형제의 이름일 수도 있고, 또 퇴직을 앞둔 많은 분들이 은퇴 후 얻게 될 이름일 수도 있다(8쪽)”고 설명했다.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운 ‘고·다·자’, 임계장.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이다. 5월 한 죽음과 함께, 경비원의 열악한 현실은 책 속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게 됐다.

 

<시선으로부터,>, 故 박원순 죽음의 의미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사 문학동네

지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의 선택 뒤엔 수많은 논란이 이어졌다. 조문 여부부터 피해자와 피해호소인 명칭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이 뒤따랐다. 죽음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료시켰다. 성비위 의혹 역시 무죄추정의 원칙 하 묻어두려고만 했다.

‘미투가 사람을 죽였다’고, ‘피해자의 증언이 아닌 고소인의 주장’이라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 피해자를 향한 수많은 공격은 그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있었다. 7월 한국 그 어디에서도 ‘피해자 중심주의’를 찾을 수 없었다.

논쟁이 한창이던 그때, KBS는 한 소설을 인용했다. 이소정 앵커는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 나오는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178쪽)”는 구절을 언급했다. 이는 죽음으로 성범죄 의혹을 책임졌다는 이들에게 전하는 일침이었다.

곧이어 이소정 앵커에 대한 하차 청원이 올라왔다. 2만여 명의 동의를 받은 채 종료됐다. 청원자는 “현재 경찰에서 확인중인 사안을 소설의 한 문구로 시청자를 확증편향에 이르도록 해 방송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말의 맥락을 무시한 채 한 문구만을 드러내 사용해 마치 모든 사안이 결론 난 것처럼 시청자가 생각하도록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작가는 이 책을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334쪽)”이라 소개했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어떤 이에겐 피해자를 향한 연대의 서사가 됐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이들에겐 시청자들을 확증편향에 이르게 한 문구를 담은 소설에 불과했다.

 

<한번도경험해보지못한 나라> vs <검찰개혁과 촛불시민>, 다시 조국 대전(對戰)


ⓒ각 출판사
ⓒ각 출판사

지난해 한국을 뜨겁게 달군 조국 사태가 재현됐다. 올해는 일명 ‘조국 흑서’인 <한번도경험해보지못한 나라>와 ‘조국 백서’인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이 맞붙었다. 8월에 출간된 두 책은 나란히 서점에 배치됐다.

두 책의 내용 역시 나란히 평행선을 달렸다. 같은 시대와 사건을 다루더라도, 두 책은 판이하게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조국 백서 추진위원회의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은 ‘조국 사태로 본 정치검찰과 언론’을 다루고 있다. 반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비롯해 5인이 참여한 <한번도경험해보지못한 나라>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를 설명했다.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이들이 문제 삼는 대상은 사뭇 다르다. 백서는 ‘정치검찰’과 ‘언론’을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했지만, 흑서는 ‘586세대’의 모순점을 지적한다. 인식하는 적폐 대상의 차이가 사태에 대한 해석을 달리 만든 것이다.

두 책은 우리 사회의 균열을 잘 보여준다. 조국 사태 이후 보수와 진보 사이 생각의 간극이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증명한다. 그러나 두 권의 책이 정치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책이 분열의 아픔으로 다가와야만 한다.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추미애가 꿈꾸는 검찰개혁


ⓒ출판사
ⓒ출판사 포르체

검찰개혁을 둘러싼 충돌이 가시화된 12월이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은 8일 법제사법위원회를 7분 만에 통과했다. 야당은 필리버스터로 맞섰으나, 임시회가 열린 10일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87명의 찬성과 99명의 반대, 1명의 기권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충돌도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윤 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재가했으며, 같은 날 추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의 추진력과 결단이 아니었다면 공수처와 수사권 개혁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시대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준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다”고 전했다.

추 장관의 시각은 그가 읽는 책에서도 드러난다. 9일 본회의장에서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를 읽었다. 책에는 이연주 검사가 검찰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민이 담겨있다. 저자는 조직의 불합리부터 스폰, 검언유착, 무소불위 권력 등 검찰의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냈다.

이후에도 추 장관은 14일 본인의 SNS를 통해 또 한 번 책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아직 검찰이 일그러진 자화상 보기를 회피하는 한, 갈 길이 멀다는 아득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웬만한 용기 없이 쓰기도 쉽지 않은 검찰의 환부에 대한 고발성 글이기에 저자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각 출판사
ⓒ각 출판사

한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난 7월 여름휴가를 앞두고, 세 권의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그가 추천한 책은 <임계장 이야기>를 비롯해 <동물농장>과 <팩트풀니스>다. 그는 1945년 작품인 <동물농장>에 대해 “국내 정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들이 많다”며, 우회적으로 문 정권을 비판했다. 또 <팩트풀니스>와 관련해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속 수많은 사고의 편향 오류를 바로잡아 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제21대 국회의 연구단체에는 ‘책 읽는 의원 모임’이 있다. ‘흔들리며 피는 꽃’을 지은 시인, 도종환 의원이 대표의원을 맡은 단체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우리 사회의 화두를 고민하고, 이를 의정활동에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간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팩트풀니스> 등을 읽은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